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서한
- 작성일2018/09/1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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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1코린 12,26). 바오로 성인의 이 말씀이 제 마음속에 강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저는 상당수의 성직자들과 봉헌된 이들의 성적 학대, 권력 남용, 양심을 저버린 행위로 많은 미성년자들이 겪는 고통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이는 누구보다도 그 피해자들에게, 또한 그 가족들에게, 나아가 믿는 이든 아니든 공동체 모두에게, 고통과 무력감이라는 깊은 상처를 입히는 범죄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 어떠한 노력도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상처를 준 데 대한 용서를 청하고 이 상처를 치유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면, 그러한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황을 은폐하거나 지속시킬 가능성도 예방할 수 있는 문화를 창출하고자 온갖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은 또한 우리의 고통입니다. 따라서 미성년자와 취약한 성인들에 대한 보호를 보장하여야 하는 우리의 임무를 다시 한번 재천명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1.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 최근 발표된 보도를 통해, 대략 70년의 세월에 걸쳐 사제들이 양심을 저버리고 위력으로 자행한 적어도 천여 명에 달하는 성적 학대 피해자들의 사례가 자세히 다루어졌습니다. 이러한 피해 사례 대부분이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많은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처들은 결코 아물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고 있습니다. 또한 이 상처들은 우리에게 이 잔혹한 행위들을 단죄하고 이 죽음의 문화를 뿌리 뽑는 데에 힘을 보탤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처들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는 이 피해자들의 가슴 미어지는 고통은 오랫동안 간과되어 왔고 은폐되거나 묵인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울부짖음은 이를 침묵시키려 한 그 어떤 수단들보다도 더욱 강력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울부짖음은, 공모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심각성만 키워 버린 그 어떤 결정들보다도 훨씬 강력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당신께서 어느 편에 서 계신지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역사를 통해 어김없이 계속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게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우리가 입으로 되뇌는 말씀들과 우리 생활 방식이 지금까지 그리고 계속하여 일치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끄럽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교회 공동체로서 다음과 같이 인정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많은 삶에 심각하고 중대한 피해를 입힌 사실을 깨닫고서도 시의적절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작은 이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저버렸습니다. 2005년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당시 라칭거 추기경님이 십자가의 길을 바치며 한 그 말씀을 저도 하고자 합니다. 추기경님은 그토록 많은 피해자들이 부르짖는 고통의 외침에 하나 되어 이렇게 탄식하였습니다. “교회 안에는, 심지어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할 사제들 안에서조차 얼마나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까! 얼마나 많은 교만과 자만이 넘치고 있습니까! …… 제자들의 배반, 주님의 몸과 피를 합당하지 않게 받아 모시는 것은 분명 구세주의 마음을 창에 찔린 듯 아프시게 하는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마음속 깊이 이렇게 외칠 따름입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 주님, 저희를 구해 주소서!’(마태 8,25 참조)”(「베네딕토 16세 교황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 제9처, 2005.3.25.,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07년[제1판], 65면). 2. ……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모든 사태의 범위와 중대성을 고려할 때, 총체적이고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현실에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태의 진실을 깨닫는 것은 모든 회개의 여정에서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육체적 영적 상처를 입은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책임져야 할 과제를 지닙니다. 과거에는 묵과하는 것이 이에 대한 응답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연대가, 가장 깊은 의미에서 그리고 도전이 되는 과제로서, 우리가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일구어 가는 방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고 무엇보다도 온갖 학대 피해자들이 그들을 보호하고 고통에서 구해낼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을 만날 수 있는 연대의 환경을 조성하여야 합니다(「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28항 참조). 그와 같은 연대는 인간의 온전함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규탄하도록 요구합니다. 연대는 우리에게 모든 형태의 타락, 특히 영적 타락에 대항하라고 요청합니다. 영적 타락은 “편한 자기만족의 눈먼 형태입니다. …… 기만, 중상, 이기주의, 다른 미묘한 형태의 자기중심성과 같은 것들이 전부 용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하기’(2코린 11,14) 때문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 165항 참조). 바오로 성인은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을 함께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권고는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라는 카인의 말을 되풀이하고픈 모든 유혹을 없애 주는 최상의 해독제입니다. 어린이와 취약한 어른들의 온전성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이를 은폐하는 모든 사람에게 무관용 정책(zero tolerance)을 시행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데에 필요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세계 각지에서 노력을 기울여 일하고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과 반드시 필요한 제재를 적용하는 데에 우리가 늦기는 했지만, 이러한 노력은 현재와 미래에 더 나은 돌봄의 문화를 보장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세례받은 모든 이가 우리에게 매우 절실히 필요한 교회와 사회 변화에 동참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주님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하는 개인적, 공동체적 회개를 요청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관상을 통하여 진정 새롭게 출발한다면,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고자 하셨던 바로 그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분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49항)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곳에 우리가 있으며, 주님의 현존 안에서 회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도와 참회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모든 거룩하고 충실한 하느님 백성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 기도와 단식의 참회를 수행하도록 초대합니다.1) 이는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고, 모든 형태의 학대에 대해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돌봄의 문화를 만들려는 우리의 연대와 투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가 없다면, 교회로서 우리의 행동 변화는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느님 백성을 대체하거나 침묵시키거나 무시하거나 소수의 엘리트 집단으로 축소시키려 할 때마다, 우리는 근본도 기억도 없고 얼굴도 육체도 없으며 결국 생명도 없는 공동체, 계획, 신학적 접근, 영성, 조직을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2) 이러한 일은 분명히 교회 권위를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이는 성적 학대, 권력 남용, 양심을 저버린 행위가 발생한 모든 공동체에서 매우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입니다. 성직주의가 그러한 경우입니다. 성직주의는 “그리스도인의 특성을 무효화할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 놓으신 세례의 은사를 축소시키고 평가절하하는”3) 시도입니다. 사제 스스로 또는 평신도들이 양산하는 성직주의는 교회의 몸 안에 분열을 초래하고, 오늘날 우리가 규탄하는 수많은 악을 지속시키고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입니다. 학대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형태의 성직주의에 대해 단호히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 역사에서 주님께서는 한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한 백성에 속하지 않고서는 결코 완전하게 우리 자신이 되지 못합니다. 바로 이러한 연유로 아무도 동떨어진 개인으로서 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인간 공동체에 존재하는 복잡한 대인 관계의 맥락을 고려하시어 우리를 당신께 이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백성의 삶과 역사 안으로 들어오시고자 하셨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6항).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언제나 유념해야겠습니다. 따라서 그토록 수많은 삶을 어둠으로 몰아넣은 악에 대항하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 백성인 우리 모두가 지닌 이러한 책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 백성의 일원이며 역사를 함께 일구어 가고 있음을 자각함으로써, 우리는 내적 쇄신을 가능하게 하는 참회의 열린 마음으로 과거의 죄악과 과오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모든 교회 구성원의 적극적 동참 없이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학대의 문화를 근절하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건강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필요한 원동력을 창출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참회의 차원에서 하는 단식과 기도의 도움으로 하느님 백성인 우리는 주님 앞에 그리고 상처 입은 우리 형제자매 앞에서 죄인으로서 용서를 청하고 부끄러워하고 회개하는 은총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복음에 맞갖은 새로운 원동력이 되는 조치를 마련할 것입니다. “우리가 원천으로 돌아가 복음 본연의 참신함을 되찾고자 노력할 때마다 새로운 길들이 드러나고 창조적 방식들이 보이며, 또 다른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오늘날의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이 생겨날 것”(「복음의 기쁨」, 11항)이기 때문입니다. 한 교회인 우리가 봉헌된 이들, 성직자들, 가장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사명을 맡은 모든 이가 저지른 가혹 행위들을 슬프고 부끄럽지만 인정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자신의 잘못과 다른 이들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빕시다. 죄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과오와 범죄와 이로 말미암은 상처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되고, 현재에는 우리가 더욱더 마음을 열고 새로운 회개의 여정에 헌신하게 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참회와 기도는 우리가 다른 이들의 고통에 눈길을 주고 마음을 열게 하며, 흔히 그러한 악들의 뿌리가 되는 권력과 재산을 향한 욕망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단식과 기도를 통해 우리가 어린이와 젊은이와 장애인들의 숨죽인 고통에 우리 귀를 열게 되기를 빕니다. 이 단식은 정의를 향한 주림과 갈망을 우리에게 가져다주고, 진리 안에 걸어가도록 우리를 다그치며, 필요한 모든 법적 대책을 강구하는 데에 이바지합니다. 이 단식은 우리를 흔들어 깨워, 선의를 지닌 모든 이와 사회 전체와 함께 진리와 사랑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온갖 형태의 성적 학대, 권력 남용, 양심을 저버린 행위에 맞서 싸우는 데 헌신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가 되도록 부름받은 우리의 소명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항).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하고 바오로 성인은 말하였습니다. 개인으로 또 공동체로서 우리는 이 권고를 기도와 참회의 자세로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연민과 정의와 예방과 배상의 은총이 우리 안에 자라나게 됩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 아래 서 계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서슴없이 그리 하셨고 예수님 곁에 굳건히 서 계십니다. 이를 통하여 마리아께서는 온 생애로 실천하신 당신의 방식을 보여 주십니다. 이러한 교회 상처들로 우리가 황폐함을 느낄 때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기도에 더욱 매진”하며 더욱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 충실해야 합니다(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영신 수련」, 319항 참조). 첫 번째 제자이신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든 제자에게 변명하거나 비겁해지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고통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참으로 따르는 이의 모범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학대의 범죄 앞에서 우리의 책임을 통감하고 용감하게 그 범죄들과 싸울 결심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에게 통회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 마음에 도유해 주시기를 빕니다.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주> <원문 Letter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to the People of God, 2018.8.20., 이탈리아어도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