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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19년 제56차 성소 주일 교황 담화
  • 작성일2019/03/1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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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56차 성소 주일 담화 (2019년 5월 12일, 부활 제4주일) 하느님의 약속을 위하여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10월 젊은이를 주제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활기차고 풍요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파나마에서 제34차 세계청년대회가 거행되었습니다. 이 커다란 두 행사를 통하여 교회는 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젊은이들의 삶, 그들의 의문과 관심사, 그들의 문제와 희망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파나마에서 가진 젊은이들과의 나눔을 바탕으로 하여 이번 성소 주일에, 어떻게 주님의 부르심이 우리를 약속의 전달자가 되게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부르심이 우리에게 주님과 함께 주님을 위하여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를 요구하는지에 관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두 측면, 곧 약속과 위험에 관하여 여러분과 짧게 묵상해 보려 합니다. 이 약속과 위험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당신의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복음 이야기에서 드러납니다(마르 1,16-20 참조).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어부로서 자신들의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 고된 일을 통하여 그들은 자연의 법칙을 배웠습니다. 때때로 바람이 세차게 불고 파도가 배를 뒤흔드는 폭풍우에 맞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물고기들이 많이 잡혀 그들의 노고를 보상해 주었지만, 또 어떤 날은 밤새 애써도 그물을 채울 만큼 충분히 물고기를 잡지 못해 지치고 실망한 채 뭍으로 되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대부분의 삶이 이러합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깊은 열망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일한 만큼 풍요로운 삶을 이룰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우리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올바른 항로를 찾아 수많은 가능성의 ‘바다’로 나아갑니다. 어떤 때는 많은 물고기를 잡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용감하게 파도에 흔들리는 배를 지켜내야만 합니다. 또는 빈 그물을 보며 절망하기도 합니다.

모든 부르심처럼, 이 복음은 만남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나가다가 어부들을 보고 그들에게 다가가십니다. 우리가 혼인 생활을 함께 하고픈 사람을 만날 때나 처음으로 봉헌된 삶에 매력을 느낄 때에, 바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놀라움을 안겨주는 만남의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해 줄 수 있는 기쁨의 약속을 예견합니다. 이처럼 바로 그날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부들 곁으로 다가가 그들이 “일상의 무기력함”에서 깨어나게 해 주셨습니다(제22차 봉헌 생활의 날 강론, 2018.2.2.). 곧이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주님의 부르심은 하느님께서 우리 자유에 개입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부르심은 ‘감옥’도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짐도 아닙니다. 반대로 그 부르심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어 우리가 원대한 계획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시는 사랑의 이끄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눈앞에 더욱 넓은 바다와 풍성한 고기잡이의 지평을 펼쳐 주십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눈앞에 닥친 일들에 매여 일상의 타성에 젖은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지 않고, 삶의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선택들 앞에서 반응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면서 열정적으로 투신해 볼 만한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항로를 찾으려는 열의를 서서히 잃어가는 것을 주님께서는 바라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따금 우리에게 ‘기적의 고기잡이’를 경험하게 해 주십니다. 이는 우리 각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위대한 무언가로 부름받았다는 사실, 마음을 무뎌지게 하는 권태의 그물에 사로잡혀 살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소는, 그물을 손에 든 채 바닷가에 서 있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 행복과 우리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마련하신 그 길로 나서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약속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당연히 선택의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더욱 원대한 무언가에 동참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첫 사도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18).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자신을 모두 내맡기고 새로운 도전을 마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작은 배에 연연하며 결정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담대하고 단호하게, 우리 삶을 위하여 마련해 두신 하느님의 계획을 찾으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소라는 드넓은 ‘대양’을 눈앞에 두고 안전한 배 안에서 그물이나 손질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저는, 우리가 모두 세례를 통하여 받은 그리스도교 생활에 대한 부르심을 생각해 봅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 생명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선물임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교회라는 커다란 가족 안에 모인,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생활은 바로 교회 공동체, 특히 전례를 통해서 태어나고 자라납니다. 전례는 하느님 말씀과 성사의 은총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초세기부터 우리는 기도와 형제적 나눔의 방법을 배웠습니다. 교회는 어머니입니다. 교회는 바로 우리가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해 주고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심지어 인간적 나약함과 죄로 주름진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될 때에도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더욱 아름답게 빛나도록 하는 데에 힘을 보태, 교회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생활은 선택들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그 선택들은 우리 개개인의 항해에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사회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성장에 이바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혼인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선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직업과 전문 분야들, 사랑과 연대의 길에 대한 헌신,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일과 관련한 또 다른 성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문화를 위하여 선과 사랑과 정의의 약속을 전달하는 이들이 되게 해 줍니다. 여기에는 담대한 그리스도인, 하느님 나라의 참증인이 필요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에서 누군가는 봉헌 생활이나 성품 사제직에 대한 부르심에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열의를 북돋우지만 이와 동시에 두려움도 불러일으키는 발견입니다. 복음과 우리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충실히 봉사해야 하는 사명에 자신을 전적으로 바쳐 교회의 배 안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부르심을 느낄 때 그러합니다. 이를 선택할 때에는, 주님을 따르고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며 주님 사업의 협력자가 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여러 내적 갈등이 이러한 결단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매우 세속화된 상황에서는 하느님과 복음을 위한 자리가 더 이상 없어 보여 사람들이 쉽게 좌절하고 ‘희망의 권태’에 빠져 버리고 맙니다(사제들과 봉헌 생활자들과 평신도 운동 단체들과 함께한 미사 강론, 파나마, 2019.1.26. 참조).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자기 삶을 바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저는 특히 젊은이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귀를 닫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이 길로 여러분을 부르실 때, 배 안에서 노만 젓지 말고 주님께 여러분을 맡기십시오. 두려움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은 주님께서 가리키시는 높디높은 봉우리 앞에서 우리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주님께서는 그물과 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이에게 새 생명의 기쁨을 약속해 주신다는 것을 늘 기억하십시오. 새 생명의 기쁨은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고 우리가 나아가는 여정을 활기차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벗 여러분, 자신의 성소를 식별하고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는 일이 언제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사제, 수도자, 사목 일꾼, 교육자를 비롯하여 온 교회가 다시 한번 새롭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누구보다도 젊은이들에게 경청과 식별의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 기도, 하느님 말씀 묵상, 성체 조배, 영적 동반을 통하여 하느님 계획을 발견하도록 돕는 청년 사목과 성소 증진이 필요합니다.

파나마의 세계청년대회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이, 언제나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젊은 여인의 이야기 안에서도 성소는 약속인 동시에 위험이었습니다. 마리아가 받은 사명은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예.’는 직접 동참하기를 바라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의 ‘예.’였습니다. 자신이 약속의 전달자임을 알게 된 확신 말고는 다른 아무런 보증도 없이,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의 ‘예.’였습니다.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묻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약속의 전달자라고 여깁니까? 여러분이 마음에 품고 앞으로도 계속 가지고 갈 만한 약속은 무엇입니까? 성모 마리아께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어려운 사명을 받으셨지만, 다가올 그 어려움 때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물론 매우 혼란스러우셨겠지만, 그 혼란스러움은 모든 것이 명확하거나 확실하지 않아서 미리 겁을 먹고 아무 것도 못할 때 느끼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젊은이들과 함께한 밤샘 기도, 파나마, 2019.1.26.).

이번 성소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우리 삶을 위한 주님 사랑의 계획을 발견하고,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하여 처음부터 마련해 두신 길로 나아갈 용기를 주시도록, 주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합시다.

바티칸에서
2019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