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 한일 정부 관계의 화해를 향한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 회장 담화
- 작성일2019/08/2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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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 정부 간의 관계가 긴박해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화해를 위해 봉사할 과제를 저희에게 주셨습니다.”(2코린 5,18 참조)라는 말을 위탁받은 교회로서 우리가 소중한 이웃인 한국과의 사이에서 어떻게 화해와 평화가 깊어지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시다.
징용공 배상 판결을 둘러싼 한일 정부 갈등
2019년 7월 4일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반도체 등의 소재 수출 절차를 번거롭게 하는 조치를, 이어서 8월 2일에는 일본으로부터 수출 관리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 조치는 한국에서 보면 지극히 적대적인 처사이며 앞으로 양국 정부의 관계 악화가 장기화될 것이라고도 예상됩니다.1)
이러한 강경 조치의 계기가 된 것은 2018년 10월 이후 선고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일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은 징용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피해에 대한 위자료 지불(배상)을 일본 기업에 명한 것이었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것이고, 이 사법적 판단에 대해 한국 정부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한국 정부의 무작위) 국제법과 국제협약의 원칙에 위반되며 언어도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2)
그렇지만 일본의 변호사나 학자들로부터도,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이 대응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삼권분립 하에 있으므로 행정부가 사법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연하며 한국 정부에 이 판결에 대한 어떤 대응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또 한일정부 및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에서 국가간의 청구권은 소멸했어도 전쟁피해배상에 관련된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일치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습니다.3)
과거 강제징용된 징용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에 대한 개인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그것을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직결된 비인도적 행위에 의한 인권침해로 인정하고, 그들을 직접 고용하고 일을 시킨 일본기업에 그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지불하도록) 명한 것입니다.4)
그런데 현재 한일 간에는 사람과 물류교류가 압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 한일의 수출입 합계는 9조 3430억엔으로, 한국은 일본에 있어서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 무역 상대국이며, 양국 사이에 매년 1000만 명의 인파가 오가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은 여행지로도 인기가 아주 많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음악이나 영화·드라마, 음식물이나 화장품 등을 포함하는 교류의 장이 젊은 세대에까지 넓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한일 가톨릭 교회 주교단도 20년 이상 상호 방문하고 있으며, 양쪽 교회 사이에서는 각종 교류와 협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5)
그러나 지금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로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에서도 “일본군 성노예”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공립 미술관 전시가 수장에 의해 명백한 혐오감 표명을 계기로 해서 중단되는 사태로 몰리고, 각종 교류행사가 중단되는 등 시민들 차원까지 균열이 파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많은 매스미디어는 정부의 말을 크게 전하지만 한국의 주장에 대해서는 무시하기 일쑤여서 그 결과 일본 사회 일반의 시각은 한국 정부 비판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진리를 식별하려면 교류와 선을 촉진하는 것과 그 반대로 고립과 분열과 적대를 가져다주는 것을 가려내야 합니다.”6)라고 깨우쳐 주셨듯이, 우리는 선동에 현혹되지 않고 정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도록 눈을 떠야 합니다.
한일기본조약. 한일청구권협정과 식민지 지배 책임
우리는 현재의 일본과 한국간의 긴장이 심층적으로는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그 청산과정에서 해결되지 않고 남겨진 문제에 원인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의 핵심은 1965년 청구권협정을 근거로 식민지지배 역사에 대한 가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자세와 이에 분노하는 피해국, 한국인들 마음과의 사이 벌어진 틈에 있습니다.
한일 복수의 전문가에 따르면 협정 본문과 체결까지의 협상 과정으로 판단할 때 한일청구권 협정이 대상으로 한 것은, 통상의 합법적인 계약에 근거한 채권.채무관계뿐이며, 거기에 식민지 지배에 의거해서 징용한 때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배상 청구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됩니다.7)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및 청구권협정은 냉전체제 아래에서 한미일의 전략적 구상에 밀려 급하게 체결되었습니다. 일본정부는 그 협상과정에서 일관되게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부정했습니다. 일본정부에 따르면 청구권 협정서에 결정된 일본측 3억달러 상당의 현물공여 및 2억 달러의 유이자 차관에는 과거를 배상하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경제 협력이라고 했습니다. 기본조약도 양국간 역사인식의 근본적 대립을 알면서도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문구가 삽입됨으로써 식민지 지배책임 문제는 보류되었습니다. 양국 관계의 중심에 박혀있는 가시인 식민지지배의 책임에 관한 애초 합의가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에 들어있지 않은 것, 이것이 한일관계 교착의 근원인 것입니다.8)
일본 정부에 의한 수출규제 문제에 대해, 한국국민 사이에서 일본제품의 불매∙ 불매운동이 퍼지는 것의 배경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100년이상 전부터 일본이 간계와 강박으로 조선을 침략했는데, 그 수법이 지금도 같다고 분노해서 그것이 불매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정치가 어떻든 간에, 일본과 한국이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니 정치가 독주해서 사람들의 우호관계를 손상시키게 되어선 안됩니다. 양국 정부는 상대를 '비우호국'으로 간주해 국민들 사이에 위협과 증오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자국 정치의 동력을 얻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또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 과거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를 했던 역사를 가진 나라에 대해서 일본정부의 특히 신중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문제해결에는,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기초로,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대화하는 것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화해를 향하여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초월법'으로 제창하였듯이 국가간의 분쟁은 두 당사국은 양국이 바라는 바가 함께 이루어짐과 동시에 양측이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냄으로써 갈등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한일 양국정부가 함께 지혜를 짜내서 막혀있는 이항대립(二項対立)의 악순환을 벗어나 망가진 관계를 복원해 갈 길을 찾는 것이 요구됩니다.9)
“기본조약”이나 “청구권협정”에 집착해서, 해석의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면,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관계를 쌓아 올리기 위해서, 명확한 “식민지지배의 청산”을 포함하는 새로운 법적인 장치를 만드는 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또한 특히 일본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이웃나라나 그 국민에 대한 역사수정주의, 헤이트 스피치 등의 풍조를 진지하게 시정하여, 정확한 역사인식과 반성 위에서 평화롭고 공정한 국제관계를 구축하는 인류사회의 발걸음에 차세대 사람들에게 길이 되어야 합니다.
징용공재판 원고인 연로한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한일관계의 험악화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은 피해자 개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서로 미워하고 분열하는 우리들 인간의 마음에 사랑의 불을 밝히고 마음의 무장해제를 이루게 하시어 상처를 치유하고 인류 통일과 항구적 평화를 위한 내적 기초를 쌓아 주는 분”(각주10)이십니다. 한일 정치 지도자들은, 긴장을 높일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과거를 마주 하고, 미해결인 채 두어 온 여러가지 문제들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시도가 결실을 맺어 일본과 한국, 일본과 한반도의 신뢰와 우호관계가 발전하고, 그것이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실현으로 이어지도록 평화기간인 지금, 교황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에 따라 제시하신 다음 기도를 마음에 담아 평화의 주님께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를 당신 평화 도구로 써 주소서.
친교를 쌓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에 숨어있는 악을 깨닫게 하시고,
저희의 판단에서 독을 제거하고
형제자매로서 다른 이들의 일들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당신은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오니.
저희들의 말이 이 세상 선함의 씨앗이 되게 하소서.
소음이 있는 곳에서 귀를 기울이고
혼란이 있는 곳에서, 조화를 촉진하고,
애매함에는 명확함을,
배척에는 함께 나눔을,
선정적 흐름에는 냉정함을 가져오는 이 되게 하소서.
깊이가 없는 곳에, 진정한 질문을 하고,
선입견이 있는 곳에, 신뢰를 불러일으키며,
적의가 있는 곳에 경의를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가져올 수 있게 하소서.
아멘.10)
장관 가쓰야 다이지 주교
1) 반도체 재료 3품목의 수출 규제에 대해서는, 지난 7월 1일 경제 산업성이 "한일간 신뢰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하며 "한국과 신뢰관계 하에서 수출 관리하기가 어려워졌다"고 갑자기 밝혔다. 세코오 히로시게 경제산업부 장관은 다음날 기자 회견에서 과거 징용문제에 대해서 "G20(정상 회의)까지 만족하는 해법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과의 신뢰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지적했다. 또 아베 신조 총리는 7월 7일 후지 텔레비전의 당수 토론에서 "강제징용 문제로, 국가 간 조약(한일 청구권 협정)을 지키지 않은 나라라면(안보)무역 관리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2)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 판결을 받고 아베 총리는 같은 날 중의원 본회의에서 과거 징용의 개인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라며 본 판결은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이며" “의연하게 대응해 갈 것”이라고 답변했다. 고노 외상도 “매우 유감스럽고,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명확하게 거슬러서 일본기업에 대한 부당한 불이익을 지우는 것일 뿐 아니라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쌓아 온 한일 우호협력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으로 뒤집는 것이며, 매우 유감이다,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3) 2018년 11월 5일 "전징용노동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변호사들의 성명"(http://justice.skr.jp/koreajudgements/statement.pdf, 한글 https://www.fmkorea.com/1410400878), 야마모토 하루토시 "한일 양국 정부의 한일청구권협정 해석의 변천"(2014년) 참조. 일본 정부의 답변은 1991년 12월 1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1992년 2월 26일 중의원 외무위원회, 1992년 3월 9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의 야나이 슌지 조약국장 답변. 1992년 4월 7일 참의원 내각위원회의 가토 고이치 외무대신 답변, 2007년 4월 27일, 니시마츠 건설의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자 배상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 2018년 11월 14일 고노 타로 외무장관 발언 등 참조.
4) 일본제국이 1910년부터 식민지 지배를 했던 한반도에서의 "징용"은 1938년부터 1945년에 걸쳐 전시체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루어졌다). 사람들을, 그 중 많은 이들은 강제적으로 일본으로 압송해서 다양한 장소에서 노동시켰다. 그것은 "조선인 국내이입 알선요강"(1942년)이나 "국민징용령"(1944년) 등 일본정부가 만든 제도 하에서 실시됐다. 신일본제철주금 주식회사에 대한 소송의 원고인 전징용노동자는, 임금이 지불되지 않고, 감전사 할 위험이 있는 가운데 용광로에 코크스를 투입하는 등의 가혹하고 위험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제공되는 식사도 빈약하고, 외출도 할 수 없고, 도주를 시도하면 체벌을 당하기도 하는 등 극도로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5) 1998년 일본에 온 김대중 당시 한국 대통령은 일본 국회에서 연설(10월 8일)을 하면서, 전후 일본은 의회제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경제 성장을 이루어 아시아에 대한 지원국이 되는 것과 동시에 평화주의를 지켜왔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일본에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려워하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며, 한국은 일본의 달라진 모습을 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 열매인 "한일공동선언: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에 따라 그 이후 한일간의 문화와 시민교류가 압도적인 규모로 전개되어 왔다.
6) 2018년 5월 6일 제52회 ‘세계 홍보의 날’ 교황 담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 가짜 뉴스 그리고 평화를 위한 언론"
7) 요시자와 후미토시(吉澤文寿) 편저 『오십년 한일관계를 바로잡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부터 생각한다』(2016년, 사회평론사), 같은 책 『한일회담 1965 - 전후 한일관계의 원점을 검증한다』(2015년 高文研), 오오타 오사무(太田修)저 『한일협상-청구권 문제 연구』(2015년 클레인) 등 참조.
8)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 교섭 과정에서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1952년부터 시작된 협상이 몇 차례 중단된 것도 일본 정부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회피 자세에 반발한 한국 국민의 민의에 밀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냉전전략에 따른 압박과 한국 군사정권하에서의 경제개발주의, 또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한국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식민지 '시혜'론의 토대 위에서, 기본조약 및 청구권협정은 결국 식민지 지배 책임을 언급하지 않는 형태로 체결되었다. 일본에서 한국에 3억달러 상당의 현물 공여, 2억 달러의 유이자 차관에 따른 경제 원조는 일본 정부에 따르면 "독립 축하금 같은 것"(시나 에쓰사부로 외상 발언, 1965년 11월 19일 제50회 국회 참의원 본 회의)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 올라가면 한일기본조약 제2조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대일본제국과 대한제국 사이에서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미 원천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이 확인될"에 대한 해석도 대립된 상태로 적체되어 있다고 하는 건 (다음과 같이 양측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측의 해석으로는 무효인 것은 1910년 합병조약 및 그 이전에 대한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된 모든 조약으로, 한일 합병은 원래 한국의 동의에 근거하지 않고 불법으로 강요된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일본측은 "이미 원천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는 것은 "어느 시점까지는 유효했다"라는 것을 함축하게 되고, (한일)합병조약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따라 취소되었지만 그 이전엔 합법적으로 유효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 조약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도, 사과도 다루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제2조에 "이미(already)"가 삽입됨에 따라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대한 책임문제는 무시, 보류되었다. 한국인들 대부분은 ‘이 조약과 협정이 양국간 역사인식의 근본대립을 알면서도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가능케 한 담합이었다.’고 본다. 주 7의 참고 도서들을 참조할 것.
9) 분쟁 해결에 경험이 많은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분쟁이 발생했을 때 양측의 바람이 함께 달성되면서 동시에 양측이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냄으로써 (자기 주장에 고착해서 일어나는) 서로의 갈등을 극복하는 초월법이라는 화해의 방법을 제기하고 있다. 분쟁의 양당사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선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 모두의 치유과정이다. 이것은 대립의 외부요인(당사자외의 자연· 사회· 역사적 환경 등)을 공동으로 검토하는 것, 가해 사실의 인정과 사죄, 배상, 그 사실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 등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한, 양자가 과거를 청산하고, 공동의 미래를 건설해 나가는 것, 즉 일어난 불행한 사건을 물에 흘려 보내고 마무리하는 프로세스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특히 교육이 큰 역할을 한다. 서로의 입장을 역할체험(role playing) 하며 서로 이해하고 희생자를 위해서 양측이 함께 머리를 숙이고 슬픔과 치유를 공유하는 체험, 그밖에도 공동의 미래를 향해서 망가진 것을 함께 재건하는 프로젝트 등이 꼽힌다(요한 갈퉁, 『평화를 만드는 발상 ― 분쟁에서 화해로』, 이와나미 소책자, 603 참조). 구체적으로 징용노동자 문제의 본질이 인권침해 문제인 이상 무엇보다 피해자 개인의 피해가 회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정부와 관계기업이 자발적으로 인권침해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그 증거로서 사죄와 배상을 포함해 피해자 및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행동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 강제 연행이 문제가 된 카시마 건설 하나오카 사건(2000년), 니시마츠 건설 사건(2009년), 미츠비시 메트 리얼 사건(2016년) 등의 경우 소송을 계기로 일본 기업이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그 증거로서 기업이 출연하고 기금을 설립해서 피해자 전원의 구제를 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는, 피해자 개인에게 금전이 지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난의 비나 위령비를 건립하고, 매년 중국인 피해자 등을 불러 위령제 등을 여는 등의 대처도 행해지고 있다. 그밖에도, 눈길을 밖으로 돌리면 나치 독일의 강제노역 피해를 입은 약 100개국 166만명 이상에 대한 독일 정부와 6400여 독일 기업들이 2000년, "기억과 책임, 미래"기금을 창설하고 약 44억유로(약 7200엔)의 배상금을 지불해 온 경우도 있다. 이러한 대처에, 지금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이 본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10) 1995년 2월 25일 일본 가톨릭 주교단 교서 『평화로의 결의 : 전후 오십주년을 맞이하여』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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