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담화] 2020년 제28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
  • 작성일2020/01/21 14:52
  • 조회 2,003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28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2020년 2월 11일)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 11,28)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신비로운 은총의 여정을 가리킵니다. 이 여정은 순박한 이들에게 드러나며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여정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환난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 앞에서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연대를 드러내 보여 줍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나에게 오너라.” 예수님께서는 모두 당신께 오라고 부르시며 위안과 안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그분 눈앞에는 날마다 갈릴래아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순박한 사람들,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죄인들, 율법의 굴레와 억압적인 사회 체제 때문에 소외당한 이들 ……. 이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을 들으려고, 희망을 준 그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을 늘 따라다녔습니다”(삼종기도, 2014.7.6.).

이번 제28차 세계 병자의 날에, 예수님께서는 병든 이들, 억압받는 이들, 가난한 이들을 다시 한번 부르십니다. 그들은 자신이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알고, 시련의 무게에 짓눌려 상처 입고 치유가 필요한 이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쇠약하고 고통받고 힘없는 상황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율법을 강요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곧, 당신 현존으로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상처 입은 인류를 바라보십니다. 그분께서는 개개인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고 헤아리는 눈을 지닌 분이십니다. 그분의 시선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눈여겨보시고 그의 건강 상태를 살피십니다. 그리고 모든 이가 당신 생명에 동참하여 당신의 온유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이러한 감정을 느끼시겠습니까? 이는 바로 그분께서 몸소 약해지셔서 인간의 고통을 체험하시고 당신도 아버지에게서 위로를 얻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직접 고통을 겪어 본 사람만이 다른 이들을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불치병, 만성질환, 정신질환, 재활이나 고통 완화 치료가 필요한 질환, 온갖 장애, 소아 질환이나 노인 질환 등 여러 심각한 형태의 고통이 있습니다. 이따금 우리는 인간적 온정 없이 이러한 고통들에 접근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병자 개개인의 필요에 맞추어 다가가는 것입니다. 전인적 치유를 위해서는 치료만이 아니라 보살핌이 있어야 합니다. 병고를 겪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육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여길 뿐만 아니라, 자기 삶의 관계적 지적 정서적 정신적 차원들도 흔들린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병자가 기대하는 것은 치료와 간호만이 아니라 배려와 관심입니다. 한마디로, 사랑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모든 환우 옆에는 그 가족이 있습니다. 환우 가족도 그 자체로 고통받고 있으며 지지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3. 사랑하는 형제자매 환우 여러분, 질병은 특별한 방식으로 여러분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이들, 바로 예수님의 눈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들 가운데 자리하게 해 줍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분의 칠흑같이 어두운 순간들을 환히 비추는 빛과 여러분의 시름을 덜어 주는 희망이 솟아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오라고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 “오너라.” 실제로 그분 안에서, 몸과 마음의 이 ‘어두운 밤’ 내내 여러분을 괴롭히는 온갖 불안과 의문을 떨쳐 버릴 힘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처방전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악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여러분은 분명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더욱더 착한 사마리아인의 그 ‘여관’이 되고자 합니다. 그 착한 사마리아인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10,34 참조). 다시 말해서, 교회는 여러분이 친교와 환대와 위안으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만날 수 있는 집이 되고자 합니다. 이 집에서 여러분은 하느님 자비로 자신의 약함을 극복하고 치유받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분이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자신의 고통을 통하여 새로운 전망에 눈뜰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자신의 질병을 뛰어넘어 더 큰 지평을 바라보고 삶을 위한 빛과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의사, 간호사, 보건 행정 전문가, 의료 조력자, 자원 봉사자와 같은 의료인들은 환우 형제자매에게 안식을 제공하려는 이러한 노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의료인들은 전문 지식을 활용하여 환자들에게, 병자들을 위로하시고 돌보시며 모든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료인들도 마찬가지로 나약함과 심지어 질병을 지닌 인간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은 특히 의료인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리스도의 위로와 안식을 받은 이상, 우리도 스승님을 본받아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위로와 안식이 되어 주도록 부름받고 있는 것입니다”(삼종기도, 2014.7.6.).

4. 사랑하는 의료인 여러분, 모든 진단, 예방, 치료, 연구, 간호, 재활은 언제나 아픈 사람들을 위한 봉사임을 늘 기억합시다. 실제로 ‘아픈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언제나 명사인 ‘사람’이 형용사인 ‘아픈’보다 우선입니다. 여러분은 일터에서 개개인의 존엄과 생명을 증진하고자 늘 노력해야 하며, 심지어 불치병의 경우에도 안락사와 조력 자살이나 생명 억제로 이끄는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여야 합니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임상 사례나 절망적인 진단 앞에서, 여러분은 의료 과학의 한계와 심지어 실패를 경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여러분 직업의 궁극적 의미를 드러내는 초월적 차원에 열려 있도록 부름받습니다. 생명은 신성하고 하느님께 속하는 것이기에 불가침성을 지니며 어느 누구도 생명을 마음대로 파괴할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교황청 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 5항;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29-53항 참조). 우리는 생명을 그 시작부터 마침에 이르기까지 환대하고 보호하며 존중하고 보살펴야 합니다. 인간의 이성이 그리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이를 요구합니다. 여러분이 생명과 인간에 대하여 일관되게 “예”라고 응답하려면, 어떠한 경우에는 단호한 양심적인 거부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 애덕으로 뒷받침될 때에, 여러분의 직업은 가장 참된 인권인 생명권의 수호에 기여하는 최상의 봉사가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병을 치유할 수 없을 때에도, 여러분은 병자들에게 위안과 안정을 주는 행동과 조처를 통해 여전히 그들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전쟁과 폭력 분쟁의 일부 상황에서 병자들을 환대하고 돕는 의료인들과 시설들이 공격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정치 권위자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의료 지원을 조정하여 의료직의 합법적 자율성을 제한하려고 듭니다. 그러나 고통받는 사회 구성원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5. 제28차 세계 병자의 날을 맞이하여, 저는 가난해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전 세계 많은 형제자매를 생각합니다. 이에 저는 전 세계 의료 기관과 정부 지도자들에게 재정적 문제에 사로잡혀 사회 정의를 등한시하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모든 이가 건강 유지와 회복을 위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대와 보조성의 원칙에 따르는 협력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병자들을 돌보는 모든 자원 봉사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흔히 구조적 결함을 보완하며, 온유한 사랑과 친교의 몸짓으로 착한 사마리아인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병자의 치유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질병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모든 이와 그들의 가정 그리고 모든 의료인을 맡겨 드립니다.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할 것을 약속드리며, 저의 진심 어린 교황 강복을 보냅니다.

바티칸에서
2020년 1월 3일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명 기념일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