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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20년 사순 시기 교황 담화
  • 작성일2020/02/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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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0년 사순 시기 담화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코린 5,20)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으로 예수님 죽음과 부활의 위대한 신비를 경축하고자 준비하는 은혜로운 시간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 신비는 개인으로도 공동체로도 우리 그리스도인 생활의 주축을 이룹니다. 우리는 마음과 생각으로 이 신비를 끊임없이 되새겨야 합니다. 예수님 죽음과 부활의 신비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자라나, 우리가 그 영적인 힘에 자신을 맡기고 자유롭고도 너그러운 응답으로 이를 따를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1. 회개의 근본인 파스카 신비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예수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쁜 소식, 곧 복음 선포(Kerygma)에 귀 기울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서 솟아납니다. 이 복음 선포는 사랑의 신비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참으로 생생하고, 참으로 진실하고, 참으로 구체적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열려 있고 풍성한 대화가 넘치는 관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17항). 이 복음 선포를 믿는 모든 이는 자신의 삶이 자기 의지에 달려 있다는 거짓을 멀리합니다. 오히려 생명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우리가 생명을 얻어 넘치게 하려는 그분의 뜻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요한 10,10 참조). 반대로, “거짓의 아비”(요한 8,44)의 달콤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부조리의 심연으로 끌려 들어가 이미 이 지상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위험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개인과 공동체가 경험해 온 온갖 비극적 사건들이 이를 입증해 줍니다.
이번 2020년 사순 시기를 맞이하여 저는, 젊은이들에게 보낸 저의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Christus Vivit)의 한 구절을 모든 그리스도인과 나누고자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활짝 벌리신 두 팔에 여러분의 시선을 고정시키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다시 여러분 자신을 구원하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죄를 고백하러 갈 때에, 여러분을 죄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자비를 굳게 믿으십시오. 그와 같은 위대한 사랑으로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에 대하여 묵상하고 그 피로 깨끗해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다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23항). 예수님의 파스카는 이미 지난 과거 사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파스카는 성령의 권능으로 언제나 현재가 되어, 고통받는 이들 가운데에 계시는 예수님의 몸을 우리가 믿음으로 알아보고 만져볼 수 있게 해 줍니다. 

2. 회개의 시급성
파스카 신비를 더욱 깊이 관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파스카 신비의 은총으로 우리는 하느님 자비를 입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자비의 체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쳐”(갈라 2,20)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관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분과의 대화는 벗끼리 나누는 허심탄회한 대화입니다. 그러하기에 사순 시기에 기도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기도는 의무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보다 먼저 사랑하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닫고 기도합니다. 기도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진정 중요한 것은 우리 속을 꿰뚫고 무디어진 우리 마음을 다듬어 주어, 우리가 더더욱 하느님께 그리고 하느님 뜻으로 돌아서게 해 주는 기도입니다.
이 은혜로운 시기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셨듯이(호세 2,16 참조) 우리를 이끌어 주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깁시다. 그러면 마침내 우리는 우리 신랑이신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고, 그분 목소리가 우리 안에 더욱 깊이 더욱 기꺼이 되울려 퍼지게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더욱 충실히 받아들일수록 우리는 거저 베풀어 주시는 그분 자비를 더욱 깊이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회개의 때와 방식을 우리 멋대로 좌우할 수 있다는 오만한 망상으로 이 은총의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맙시다.

3. 당신 자녀들과의 대화를 열렬히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
주님께서는 우리 회개를 위한 은혜로운 때를 다시 한번 마련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새로운 기회에 고마워하며 우리는 게으름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교회와 세상의 삶과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속에는 이따금 비극적으로 악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삶의 행로를 바꿀 수 있도록 주어지는 이러한 기회는, 끊임없이 우리와 구원의 대화를 나누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강한 뜻을 드러내 줍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죄를 모르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신 분이십니다(2코린 5,21 참조).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나는 성부의 이 구원 의지에 따라, 성자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기까지 하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거슬러”(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2항)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원수마저도 사랑하십니다(마태 5,43-48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자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화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듣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는”(사도 17,21) 고대 아테네인들의 공허한 잡담과는 다릅니다. 실속 없이 가벼운 호기심으로 이루어지는 그러한 잡담은 모든 시대의 특징인 세속성을 나타내고, 우리 시대에는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무분별한 사용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4. 혼자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야 하는 부(富)
파스카 신비를 우리 삶의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이 세상의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들 안에 아로새겨진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상처에 대하여 우리도 같은 아픔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무고한 희생자들을 양산해 내는 원흉으로는, 전쟁, 태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명에 대한 공격, 수많은 형태의 폭력, 환경 재해, 지상 재화의 불공평한 분배, 각종 인신매매, 일종의 우상 숭배인 이윤 추구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선의의 사람들에게 희사(喜捨)를 통하여 그들의 재산을 가장 궁핍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희사는 더 공정한 세상을 이룩해 나가는 데에 개인이 참여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자선의 나눔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해 줍니다. 반면에, 부의 축적은 사람을 이기주의에 가두어 버려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 경제의 구조적 차원들을 숙고할 수 있고 또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2020년 사순 시기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아시시에서 젊은 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과 경제 혁신 주역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이 회의의 목적은 지금보다 더 정의롭고 포용적인 경제를 일구어 나가는 데에 있습니다. 교회의 교도권이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강조한 대로, 정치는 애덕의 탁월한 형태입니다(비오 11세, 이탈리아 가톨릭 대학생 연맹에 한 연설, 1927.12.18. 참조).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생활도 복음 정신, 참행복의 정신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사순 시기를 위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 마리아께 전구를 청합니다. 성모님의 전구를 통하여, 사순 시기를 거행하는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어 하느님과 화해하고, 우리 마음의 눈을 파스카 신비에 고정시키며, 회개하여 하느님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마태 5,13-14 참조).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19년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프란치스코
  • <원문 Message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For Lent 2020, “We implore you on behalf of Christ, be reconciled to God” (2Cor 5,20), 2019.10.7., 영어와 이탈리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