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 2020년 제54차 홍보 주일 교황 담화
- 작성일2020/03/2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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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이야기가 됩니다
올해 홍보 주일 담화에서는 이야기에 관한 주제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길을 잃지 않으려면, 여러 좋은 이야기에 담겨 있는 진리를 숨 쉬듯 우리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파괴가 아니라 건설하는 이야기, 우리의 뿌리를 되찾고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게 돕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목소리와 메시지의 혼돈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해 주는 휴먼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세상과 세상일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이야기, 우리가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들려주는 이야기, 우리가 서로 연결된 실타래처럼 엮여 있음을 알려 주는 이야기가 그러한 휴먼 스토리입니다.
1. 이야기 엮어가기
인간은 이야기꾼입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듯 이야기를 갈구해 왔습니다. 동화, 소설, 영화, 노래, 뉴스 등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우리가 공감하는 어떤 인물이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 자취를 남기고 우리의 신념과 행동에 영향을 주며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말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인간은 자신의 취약함을 가릴 옷이 필요한 유일한 존재입니다(창세 3,21 참조). 또한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할 필요가 있는, 곧 자기 삶을 보호하려고 이야기로 ‘감쌀’ 필요가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옷만이 아니라 이야기도 엮어 나갑니다. 실제로, 인간의 ‘엮을 수 있는’(texere) 능력은 직물(textile)만이 아니라 글(text)도 만들어 냅니다. 시대는 달라도 모든 이야기는 공통된 ‘베틀’로 짜입니다. 이 베틀에서, 꿈을 좇아 어려운 상황들에 맞서고 악과 싸우는 ‘영웅들’이 탄생합니다. 여기에는 일상의 영웅들도 포함됩니다. 그들을 용기 있게 만드는 힘, 바로 사랑의 힘이 그들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우리는 삶의 도전들에 영웅적으로 맞서 싸울 동기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늘 성장하는 여정에 있기에 이야기꾼입니다. 인간은 일상의 삶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풍요로워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는 그 시작부터 위협받아 왔습니다. 악이 역사 안에서 뱀처럼 활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모든 이야기가 다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는 …… 하느님처럼 될 것이다’(창세 3,4 참조). 뱀의 이 유혹은 풀기 힘든 엉킨 매듭을 역사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가져라. 그러면 너는 ……이 될 것이다. ……에 이를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뭔가를 이용할 속셈으로 이른바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이 속삭이는 말입니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우리를 현혹하며, 행복해지려면 계속 더 많이 가지고 소유하고 소비해야 한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심어 주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잡담과 소문에 열광하고 수많은 폭력과 거짓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흔히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는, 사회적 유대와 문화적 기반을 굳게 다지는 건설적인 이야기들 대신에, 미약하게나마 이어져 있던 공존의 끈들을 약화시키고 끊어버리는 파괴적이고 선동적인 이야기들이 지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입증되지 않은 정보들을 짜깁기하고 진부하거나 현혹시키는 논쟁을 되풀이하며 증오의 말들로 공격하는 것은, 휴먼 스토리를 엮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존엄을 빼앗는 행위입니다.
착취하거나 권력을 휘두르려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이야기들은 수명이 짧습니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는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수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시의적절합니다. 삶에 자양분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딥페이크(deepfake)와 같은 조작술이 기하급수적으로 점점 더 교묘해지는 이 시대에, 아름답고 참되고 좋은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고 창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거짓되고 사악한 이야기를 거부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고충들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이어 주는 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이야기를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인내와 식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일상의 알려지지 않은 영웅적인 삶 속에서도 참된 우리 자신을 밝혀 주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이야기들 가운데에 으뜸 이야기
성경은 이야기들 가운데에 으뜸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우리 앞에 수없이 많은 사건과 민족과 인물을 보여 줍니다! 성경은 그 시작부터 창조주이시며 이야기꾼이신 하느님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자 만물이 생겨납니다(창세기 1장 참조). 이야기꾼이신 하느님께서는 만물이 생겨나게 하시고, 그 정점에서 당신의 자유로운 대화 상대로 당신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십니다. 시편에서 피조물은 창조주께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정녕 당신께서는 제 속을 만드시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습니다.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 제가 남몰래 만들어질 때, 제가 땅 깊은 곳에서 짜일 때, 제 뼈대는 당신께 감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시편 139[138],13-15). 우리는 완성된 상태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짜이고’, ‘엮어져야’만 합니다. 우리가 받은 삶은 우리 존재의 ‘오묘한’ 신비를 계속해서 엮어 가라는 초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과 인류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과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완성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세세대대로 이야기들 가운데 으뜸인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 곧 성경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하는 사건들을 말하고 기억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올해 홍보 주일 담화의 제목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역사에 개입하신 성경 이야기인 탈출기의 한 구절입니다.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께 울부짖자 하느님께서는 이를 들으시고 기억하십니다. “하느님께서 ……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살펴보시고 그 처지를 알게 되셨다”(탈출 2,24-25). 하느님의 기억은 표징들과 기적들을 통하여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모든 표징의 의미를 밝혀 주십니다. “네가 너의 아들과 너의 손자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며, 내가 주님임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10,2). 이 탈출의 경험은, 특히 주님의 항구한 현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주님을 세세대대로 알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생명의 하느님께서는 삶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와 소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비유, 곧 일상의 삶에서 나온 짧은 이야기를 통하여 하느님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삶은 이야기가 되고, 듣는 이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삶이 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그것을 경청하는 사람들의 삶의 일부가 되고 그들을 변화시킵니다.
복음서들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알려 주는 복음서들은 “실천적”1)인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을 닮게 해 줍니다. 복음서는 이를 읽는 이들에게 같은 생명을 나누려면 같은 신앙을 나누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은 탁월한 이야기꾼이신 바로 그 말씀께서 몸소 이야기가 되셨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8). 여기에서 사용된 “알려 주셨다”라는 말의 어원인 엑세게사토(exeghésato)는 ‘계시해 주셨다’ 또는 ‘이야기해 주셨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서로 엮어져 있는 우리 인류 안으로 몸소 들어오시어, 우리의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새로운 방식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셨습니다.
4. 늘 새로워지는 이야기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과거의 유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이야기이며 언제나 시의적절합니다.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인류와 우리 인간 개개인과 역사를 마음에 깊이 담아 두시어 몸소 사람이 되심으로써 인간의 육신을 취하시고 이야기가 되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인간의 어떠한 이야기도 보잘것없거나 하찮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하느님께서 이야기가 되셨기에, 어떠한 의미에서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하느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 내려오신 당신 아드님의 이야기를 모든 사람의 이야기 안에서 다시 보십니다.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억누를 수 없는 존엄을 지닙니다. 이처럼 인류는 예수님께서 드높여 주신 눈부시고 매혹적인 이야기들에 걸맞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우리의 봉사직으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추천서입니다. 그것은 먹물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지고, 돌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 새겨졌습니다”(2코린 3,3). 하느님 사랑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새겨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때에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선을 새겨 주시어 이를 명심하게 해 주십니다. 실제로 명심(銘心, ri-cordare)은 마음에 담고 마음속에 ‘새기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기억 밖으로 밀려났거나 형편없어 보이는 것마저도, 성령의 활동에서 감화를 받고 명작으로 거듭나 복음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Confessiones), 이냐시오 성인의 「순례 이야기」(El Relato del Peregrino),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한 영혼의 이야기」(L’Histoire d'une âme)가 있습니다. 「약혼자들」(I promessi sposi),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도 있습니다. 하느님 자유와 인간 자유의 만남을 오묘하게 엮어 낸 다른 이야기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 각자는 복음의 향기를 풍기는 여러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바로 그 사랑을 증언한 이야기들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모든 언어와 수단을 통하여 모든 시대에 함께 나누고 들려주며 살아 있게 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5. 우리를 새롭게 하는 이야기
모든 위대한 이야기 안에는 우리 각자의 이야기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성경과 성인전, 그 밖에 사람의 마음과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 주는 글을 읽는 동안, 성령께서는 자유로이 우리 마음에 글을 써 내려가시며 하느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을 기억나게 해 주십니다. 우리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그 사랑을 잊지 않을 때에, 일상의 이야기 안에 그 사랑을 품어 안을 때에, 하루하루를 자비로 엮어 나갈 때에, 우리는 이야기의 또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입니다. 더 이상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아픈 기억에 매인 채 후회와 슬픔에 빠져 있지 맙시다. 다른 이들에게 우리 마음을 열 때에, 우리는 위대한 이야기꾼의 눈에도 우리 자신을 열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우리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은 절대 쓸모없는 일이 아닙니다. 곧, 사건의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을지언정 그 의미와 시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주님께 들려드리는 것은, 우리 모두를 향한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의 눈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님께 말씀드리면서 우리는 삶의 상황도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도 그분께 맡겨 드릴 수 있습니다. 해어지고 터진 자리를 기워 가면서, 그분과 함께 삶이라는 직물을 다시 짜 내려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바로 이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모든 이야기의 마침을 보시는 유일하신 분, 그 위대하신 이야기꾼의 눈길로, 우리는 현대사의 무대에서 우리와 함께 열연을 펼치는 또 다른 등장인물인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아무도 세계 무대에서 단역 배우가 아니며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악에 대하여 말할 때조차, 우리는 구원의 여지를 마련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악의 한 가운데에서도 선의 활동을 깨닫고 이를 위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하는 것, 자신을 알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 성령께서 마음에 새겨 주신 것을 증언하는 것, 저마다 놀라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이에게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하여, 인간이 되신 하느님을 당신 품 안에 엮으신 여인께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립시다. 복음에 따르면, 이 여인께서는 당신 삶에 일어난 모든 일을 한데 모아 엮으셨습니다. 실제로 동정 마리아께서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루카 2,19). 삶의 매듭 하나하나를 온유한 사랑의 힘으로 풀어낼 줄 아셨던 성모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오 성모 마리아님, 여인이시며 어머니시여, 당신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당신 품 안에서 엮으셨으며,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당신 삶으로 이야기하셨나이다. 저희 이야기를 귀여겨들으시고 이를 당신 마음속에 간직하시어,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마저 당신 이야기로 삼으소서. 역사를 이끄는 선한 끈을 저희가 알아보게 하소서. 저희 기억을 무뎌지게 만드는 삶의 엉킨 매듭을 바라보시고 부드러운 손길로 가다듬어 주시어, 모든 엉킨 매듭을 풀어 주소서. 거룩한 영의 여인이시여, 믿음의 어머니시여, 저희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시어 저희가 미래를 향한 평화의 이야기를 이룩해 나가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모든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저희에게 보여 주소서.
2020년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프란치스코
- 1) 베네딕토 16세,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 Salvi), 2007.11.3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제1판), 2항. “그리스도교의 소식은 ‘정보 전달적’(informativus)인 것만이 아니라 ‘실천적’(performativus)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복음이 알 수 있는 것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원문 Messaggio del Santo Padre Francesco per la 54ma Giornata Mondiale delle Comunicazioni Sociali, “Perché tu possa raccontare e fissare nella memoria” (Es 10,2). La vita si fa storia, 2020.1.24., 영어와 이탈리아어>
- 영어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messages/communications/documents/papa-francesco_20200124_messaggio-comunicazioni-sociali.html
- 이탈리아어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messages/communications/documents/papa-francesco_20200124_messaggio-comunicazioni-social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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