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독서 감상문 공모전 ‘최우수상’
- 작성일2021/09/0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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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를 읽고 나서
조경희 아가다 / 배론본당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라는 제목의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편지 모음집은 지난 4월 27일 선종하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께서 옮기시고 바오로딸에서 출판하였습니다. 제가 신부님의 서한집인 이 책을 처음 만난 곳은 지난 1월 배론 성지 내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 2박3일 피정에서였습니다(기도학교에서는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획 피정으로 2021년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땀의 순교자 길 위의 사도 최양업 신부님의 길을 따라서’를 주제로 1일 및 2박3일 피정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1월 24일 피정을 마친 후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신부님을 향한 그리움과 아직까지 가경자로 계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피정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를 통독하고 필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번의 통독과 한 번의 필사를 마친 지금 돌아보니 지난 사순은 신부님의 도포자락에 숨어 오롯이 신부님과 마주한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나직한 목소리로 일깨워 주시는 유년의 기억 속에서 세월이 데리고 간 자신을 되찾고 잊었던 나의 하느님을 다시 뵙고 “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아뢰며 부활을 맞이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열여덟 통의 편지글을 통하여 당시 조선천주교회의 상황과 자신의 사목활동 및 신앙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전해주십니다(신부님께서는 열아홉 통의 편지를 쓰셨으나 아홉 번째 편지는 분실되어 열여덟 통만 남아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전해주시는 신앙선조들의 삶은 인간으로서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것조차 버리고 박해를 피해 믿음을 찾아 떠도는 고단함 자체였습니다. 즉, 겨우 신앙 공동체를 찾아 들어 비바람 가리고 끼니 여울 방편을 마련하였는가 싶으면 여러 가지 모습을 띄고 나타나는 마귀와 사탄의 방해로 공소집은 파괴되고, 신자들은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날들이 이어지는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중에서도 여교우들은 더욱 열악하고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여러 가지 인습과 유교적 굴레 하에서 불안정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성사에 참례하기 위해 오가는 밤길에 당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과 원치 않는 외교인과의 강제 결혼으로 인한 신앙생활의 기회 상실 및 심지어 여자가 혼자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가족의 반대와 교회 어른들의 엄명으로 인해 하느님께 대한 정결서원마저도 자유롭게 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그들이 그 모든 고단함을 넘어 목숨마저 초개같이 던지는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하느님께로 나아갔음을 전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외교인 및 그들을 잡아들여 문초하던 관리들과 옥졸들마저도 감동시킬 만큼 한마음으로 겸손하면서도 간절한 모습으로 전심전력을 다하여 신앙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음을 전해주십니다.
한편 신부님께서는 첫 편지에서 ‘…… 모든 사람이 제게서 떠나고 또 마침내 저의 유일한 동료 안드레아와도 떨어진 저는 작은 방에 외톨이로 남아있습니다만, 하느님과 홀로 있기가 소원입니다. ……’라고 쓰신 것처럼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과 심정도 편지글 속에 잘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저는 하루라도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신부님을 생각하지 않고 지낸 일은 없다고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 하느님은 우리의 위로시요, 우리의 희망이시며, 우리의 원의이시니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죽습니다.’ 라고 쓰신 것을 볼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장상에 대한 순명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 역시 내려놓으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저의 동포들이 마침내 시온성으로 회두하여 우리의 창조주시오 구세주이신 하느님을 찬송할 날이 언제쯤 올 것 인가요! 만일 우리가 부당하다면 적어도 당신의 사랑하는 성교회의 간곡한 기도의 애원으로,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를 위하여 쏟으신 당신의 피를 기억하시어 가련하고 불쌍한 우리를 굽어보시게 되기를 빕니다.’ 하는 부분을 통해서는 박해 중에 있는 포교지인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조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이처럼 열여덟 통의 편지를 통하여 우리들이 본받아야할 신부님의 면면은 이외에도 많으나 특히 감동을 받은 부분은 당시 극동대표부 대표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순교자들의 치적에 대하여 자세하고도 근거에 입각한 보고를 함으로써 이후 시복ㆍ시성의 근거 자료로 소중히 활용될 수 있도록 한 점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여덟 번째 편지에서 ‘…… 저의 동료들에 대하여 더욱 주의 깊게 고찰하고, 조상들의 순교 사실을 더욱 세심하게 조사하지 아니하고서는 도저히 스스로를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위에 언급한 순교록에 보면 저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매우 정신 차려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 순교자들과 함께 살았던 증인들, 또한 순교자들과 함께 감옥에서나 형벌을 당할 때 함께했던 동료들로부터 들은 증언들, 그리고 순교자들이 순교하기 전에 살았던 생활에 관한 증언들을 가능한대로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충실하게 서술하도록 제 능력껏 힘쓸 작정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더구나 아버지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복녀 이성례 마리아에 대한 보고를 함에 있어서도 예외 없이 일점일획도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보고는 하지 않음으로써 내용에 신빙성을 더하고,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사제로서 성무에 어떤 방식으로 임하였는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다섯 달 남짓의 짧지 않은 시간 내내 곁에서 나직이 일러주시던 신부님의 모습을 다시 새겨봅니다. 그 시간은 참으로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님의 그 긴 사목 여정에 함께 하며 머리로 만났던 신앙 선조들을 가슴으로 만나 그분들의 삶의 현장에 함께 하며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배우는 특별교리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너는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하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는 신앙의 유격훈련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를 잠시 덮습니다. 눈을 감고 하느님과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 받고 확인해 주며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사셨던 신부님과 신앙 선조들을 그려봅니다. 그분들께 하느님께로 가는 길에 발목 잡고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과감히 치울 것을, 마음보다 영혼이 기뻐할 선택으로 제 남은 시간들을 채우겠음을, 하느님께로 날아오르기 위하여 날개를 가벼이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우리 영원히 다시 만날 그 만남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며 살겠습니다.
끝으로 이 엄중한 코로나 19 상황 하에서도 신앙의 끈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좋은 장을 여시어 이렇듯 신부님과의 깊은 만남을 주선해 주신 원주교구 평신도협의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신부님의 세 번째 편지 중의 말씀으로 맺습니다.
‘저의 빈곤과 허약을 의식하고 있는 저는 매우 두렵고 겁이 납니다만 하느님께 바라는 희망으로 굳세어져 방황하지 않으렵니다.’
신부님은 열여덟 통의 편지글을 통하여 당시 조선천주교회의 상황과 자신의 사목활동 및 신앙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전해주십니다(신부님께서는 열아홉 통의 편지를 쓰셨으나 아홉 번째 편지는 분실되어 열여덟 통만 남아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전해주시는 신앙선조들의 삶은 인간으로서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것조차 버리고 박해를 피해 믿음을 찾아 떠도는 고단함 자체였습니다. 즉, 겨우 신앙 공동체를 찾아 들어 비바람 가리고 끼니 여울 방편을 마련하였는가 싶으면 여러 가지 모습을 띄고 나타나는 마귀와 사탄의 방해로 공소집은 파괴되고, 신자들은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날들이 이어지는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중에서도 여교우들은 더욱 열악하고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여러 가지 인습과 유교적 굴레 하에서 불안정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성사에 참례하기 위해 오가는 밤길에 당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과 원치 않는 외교인과의 강제 결혼으로 인한 신앙생활의 기회 상실 및 심지어 여자가 혼자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가족의 반대와 교회 어른들의 엄명으로 인해 하느님께 대한 정결서원마저도 자유롭게 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그들이 그 모든 고단함을 넘어 목숨마저 초개같이 던지는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하느님께로 나아갔음을 전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외교인 및 그들을 잡아들여 문초하던 관리들과 옥졸들마저도 감동시킬 만큼 한마음으로 겸손하면서도 간절한 모습으로 전심전력을 다하여 신앙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음을 전해주십니다.
한편 신부님께서는 첫 편지에서 ‘…… 모든 사람이 제게서 떠나고 또 마침내 저의 유일한 동료 안드레아와도 떨어진 저는 작은 방에 외톨이로 남아있습니다만, 하느님과 홀로 있기가 소원입니다. ……’라고 쓰신 것처럼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과 심정도 편지글 속에 잘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저는 하루라도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신부님을 생각하지 않고 지낸 일은 없다고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 하느님은 우리의 위로시요, 우리의 희망이시며, 우리의 원의이시니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죽습니다.’ 라고 쓰신 것을 볼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장상에 대한 순명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 역시 내려놓으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저의 동포들이 마침내 시온성으로 회두하여 우리의 창조주시오 구세주이신 하느님을 찬송할 날이 언제쯤 올 것 인가요! 만일 우리가 부당하다면 적어도 당신의 사랑하는 성교회의 간곡한 기도의 애원으로,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를 위하여 쏟으신 당신의 피를 기억하시어 가련하고 불쌍한 우리를 굽어보시게 되기를 빕니다.’ 하는 부분을 통해서는 박해 중에 있는 포교지인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조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이처럼 열여덟 통의 편지를 통하여 우리들이 본받아야할 신부님의 면면은 이외에도 많으나 특히 감동을 받은 부분은 당시 극동대표부 대표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순교자들의 치적에 대하여 자세하고도 근거에 입각한 보고를 함으로써 이후 시복ㆍ시성의 근거 자료로 소중히 활용될 수 있도록 한 점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여덟 번째 편지에서 ‘…… 저의 동료들에 대하여 더욱 주의 깊게 고찰하고, 조상들의 순교 사실을 더욱 세심하게 조사하지 아니하고서는 도저히 스스로를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위에 언급한 순교록에 보면 저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매우 정신 차려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 순교자들과 함께 살았던 증인들, 또한 순교자들과 함께 감옥에서나 형벌을 당할 때 함께했던 동료들로부터 들은 증언들, 그리고 순교자들이 순교하기 전에 살았던 생활에 관한 증언들을 가능한대로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충실하게 서술하도록 제 능력껏 힘쓸 작정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더구나 아버지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복녀 이성례 마리아에 대한 보고를 함에 있어서도 예외 없이 일점일획도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보고는 하지 않음으로써 내용에 신빙성을 더하고,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사제로서 성무에 어떤 방식으로 임하였는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다섯 달 남짓의 짧지 않은 시간 내내 곁에서 나직이 일러주시던 신부님의 모습을 다시 새겨봅니다. 그 시간은 참으로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님의 그 긴 사목 여정에 함께 하며 머리로 만났던 신앙 선조들을 가슴으로 만나 그분들의 삶의 현장에 함께 하며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배우는 특별교리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너는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하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는 신앙의 유격훈련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를 잠시 덮습니다. 눈을 감고 하느님과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 받고 확인해 주며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사셨던 신부님과 신앙 선조들을 그려봅니다. 그분들께 하느님께로 가는 길에 발목 잡고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과감히 치울 것을, 마음보다 영혼이 기뻐할 선택으로 제 남은 시간들을 채우겠음을, 하느님께로 날아오르기 위하여 날개를 가벼이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우리 영원히 다시 만날 그 만남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며 살겠습니다.
끝으로 이 엄중한 코로나 19 상황 하에서도 신앙의 끈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좋은 장을 여시어 이렇듯 신부님과의 깊은 만남을 주선해 주신 원주교구 평신도협의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신부님의 세 번째 편지 중의 말씀으로 맺습니다.
‘저의 빈곤과 허약을 의식하고 있는 저는 매우 두렵고 겁이 납니다만 하느님께 바라는 희망으로 굳세어져 방황하지 않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