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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독서 감상문 공모전 ‘우수상’
  • 작성일2021/10/1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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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께 드리는 편지

 
홍순옥 안나 / 안흥성당

 
 
예수 마리아 요셉!
신부님,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인 올해 저는 신부님의 삶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신앙을 본받기 위해 신부님이 쓰신 편지를 읽고 필사하는 한편, 신부님과 관련된 성지들을 순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부님의 삶을 공부하면서 제 마음속에 그려진 당신은 참으로 온유하신 분, 겸손하신 분, 오로지 순명으로 사셨던 분, 인내와 절제가 대단하셨던 분, 주님에 대한 희망으로 사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제 마음을 시리게 했던 것은 신부님의 외로움입니다.
부모님 슬하를 떠나 그 먼 길을 걷고 또 걸어서 도착한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하면서 느꼈을 16살 소년의 외로움, 2년 뒤 같은 신학생이었던 최방제의 죽음 앞에서 느꼈을 청년의 외로움, 최초의 신학생이었으나, 친구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보다 늦게 서품을 받아야 했던 외로움, 친구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먼저 조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소팔가자에 남아 있을 때 느꼈을 외로움, 또 친구 신부가 순교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 신학생 중 홀로 남았다는 성직자의 외로움, 그렇게 존경하고 의지하던 스승신부님과의 이별 앞에서 느꼈을 외로움 등…….
이 외로움을 당신은 귀양살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인간적으로 얼마나 힘든 삶이었을까요? 그래도 그 인간적인 모든 외로움을 오로지 주님께 맡기고 항상 주님만을 바라고 의지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참고 인내하셨던 신부님의 겸덕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특히 열일곱 번째 편지에서는 신부님의 기쁜 마음이 전해져 제 마음도 설레었습니다. 185782명에 대한 교황성하의 가경자 선포 소식은 슬픈 현실 속에서 기쁨과 위로가 되었던 아주 큰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순교자들도 성인 반열에 오르시어 세계의 모든 교회에서 공적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기쁘고 영광되겠습니까? 예전에 그들의 충성심을 통하여 공경을 받으셨듯이 그들의 공적 예배를 통하여 모든 이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순교자들을 공경하는 우리의 정성이 미약하고, 우리가 순교자들에게 전구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또한 그것을 우리 신자들에게 계몽하는 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라고 하신 그 말씀은 현재 가경자로 계시는 최양업 신부님을 복자와 성인품에 올려 드리지 못한 저희의 부족함을 깨우치게 하시는 것 같아 신부님께 너무나 죄송스럽고 부끄럽습니다.
 
할아버지 최인주와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 그리고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신심을 신부님의 열한 번째 편지를 통해 들으며 저는 깊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종들에게까지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게 하셨던 할아버님, 그리고 신앙을 위해 고향과 친척과 재산을 버리고 이사를 했던 아버님, 또 감옥에서 굶어죽은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교를 했다가 다시 신학생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붙잡혔을 때 신학생인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 당당하게 순교의 칼을 받았던 어머님. 그분들의 사랑과 신앙이 신부님을 땀의 증거자 사제로 살아가실 수 있게 만드셨나 봅니다.
제 아들도 사제로 지금 중국에서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몇 년 몇 달을 걸려서 갔을 중국이건만, 오늘날에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가까운 곳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아들신부를 만날 수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러기에 신학생 아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싶어 했던 이성례 마리아 어머니의 마음을 더욱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부님께서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느끼셨기에 온 삶을 그 사랑의 힘으로 사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 년에 7천리, 11년 사제의 삶 동안 구만리를 짚신을 신으시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험한 산골길을 걸으셨던 당신의 삶, 오로지 하느님과 신자들만을 사랑하며 걸으셨던 당신의 삶은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가르침 주시고 죽기까지 하셨던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사신 모습 그대로임에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올해 배론 성지를 여러 차례 가고 오면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 배론에서 편지를 쓰셨던 1855108일의 일들을 상상해봅니다. 아름다운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을 가을날, 하느님의 놀라운 솜씨를 찬미하며 기쁨에 충만해계셨을 신부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신부님께서는 그때 배론 어디에서 편지를 쓰셨나요? 황사영이 비단에 편지를 써내려갔던 그 토굴에서 황사영의 마음을 느끼며 쓰셨을까요? 아니면 그해에 신설된 배론 신학당에서 입학한 아들 같은 신학생들을 보며 벅차오르는 마음을 쓸어내리며 쓰셨을까요?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존경하는 르그레주아 스승 신부님처럼 후배 신학생들에게 아버지처럼 많은 것을 베풀어주고 싶으셨을 신부님의 따스한 마음까지도 그려집니다. 또 어머니와 아버지가 순교하신 후, 깊은 슬픔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삼키시면서 남의 말을 전하듯 스승 신부님께 담담하게 전하시는 신부님의 절제력에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픕니다.
밤낮없이 걸으시고, 교리문답을 만드시고, 제대로 잠도 못 주무시며 남의 눈을 피해 사목지를 향해 걷고 또 걸으시다 하느님 품으로 가신 후, 신부님 육신은 배론으로 모셔져 배론성지를 지키며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당신이 가신 지 160년이 지난 지금 이곳 배론에는 이름에 걸맞게 배의 모양으로 대성당과 소성당이 지어져 있습니다.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도 세워져서 당신의 삶을 본받기 위한 뜻깊은 피정도 매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편지에서 쓰셨듯이 신부님께서는 통역관으로 선발되어 조국을 향해 오다가 고군산도에 좌초되어 고국을 눈앞에 두고 상해의 귀양살이로 돌아가야만 하셨고, 그 아쉬움에 신부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까요? 그 모습이 너무나 가슴에 아프게 와 닿습니다. 달려가서 울고 있는 당신을 꼬옥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으나 실패하셨지만 그래도 상해에서 서품을 받으셨으니, 참으로 기쁘고 축복된 일이었습니다. 서품 후 처음으로 쓰신 이 편지에서는 늘 예수 마리아 요셉인사말이 아닌 요한복음 말씀으로 인사를 하셨네요.
 
제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찾아 얻을 수 있겠습니까”(요한17,23)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장상이 명하시는 것만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며, 온 삶을 순명과 겸손의 삶으로 오로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셨던 신부님, 이 성구는 아마도 신부님의 서품성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11년의 사제생활 동안 오로지 하느님 마음만을 생각하면서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는 일에만 신경을 쓰셨겠지요. 수많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쓰고 싶으셨을 터임에도, 주례 신부님과의 약속을 지키신 당신은 인내의 신부님이십니다.
열아홉째 편지에서 마지막 하직인사가 될 듯하다고 하신 신부님 말씀을 음미해보면, 신부님께서는 어디를 가든지 추적하는 포졸들 때문에 이미 순교를 생각하고 계셨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결국 길 위에서 주님 곁으로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피로에 지치고 약해지신 몸에 장티푸스까지 겹쳐 결국 주님 곁으로 가셨지만 그 또한 주님의 깊으신 뜻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일곱 번째 편지는 서품을 받으시고 조국에 돌아와 처음 드리는 편지라서 그런지 매우 사연이 많으셨습니다. 특히 바르바라 자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많이 아프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동정을 지키려고 차라리 아파서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르바라의 생각이 이루어짐을 보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야훼께 맡기면 생각하는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공동번역 잠언16,3)는 저희 집 성구가 은혜로이 살아 움직임을 느꼈습니다.
저는 열두 번째 편지에 쓰인 최해성 요한의 신앙을 본받겠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져 창자가 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절대로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용기 있게 고백하는 모습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천국으로 개선하는 날이 밝아 오자 기쁨의 표시로 자기와 옥사쟁이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던 그의 굳은 믿음을 보면서 죽음을 생각만 해도 약해지는 저의 믿음과 대비되어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 그에게 욕설과 매질을 하던 포졸들까지도 그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게 만든 최해성 요한의 신앙을 깊이 묵상해보며 그동안 두렵게만 생각했던 죽음을 앞으로는 요한처럼 죽음 맞이 잔치, 아니 천국으로 향하는 잔치를 할 수 있는 깊은 믿음의 삶을 소망해봅니다.
신부님께서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편지로 남겨 주셨기에 많은 분들이 성인품과 복자품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당사자인 신부님은 아직까지 가경자로 계신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그러나 이 또한 주님의 다른 계획이 있으시리라 생각하며, 신부님께서 복자와 성인품에 오르시기를 소망합니다. 중국에서 사목하고 있는 제 아들 신부도 당신의 삶을 본받아 겸손하고 온유하며 하느님과 신자들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제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부님께서 쓰신 편지글을 그대로 당신께 돌려 드립니다.
당신께서 성인품에 오르시어
세계의 모든 교회에서 공적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기쁘고 영광되겠습니까?
 
 
2021615일 당신의 160주년 선종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