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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 작성일2014/12/30 11:42
  • 조회 3,355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48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15년 1월 1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형제자매입니다
 

1.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은총과 선물로 주시는 새해를 맞이하여, 저는 모든 이, 세계의 모든 국민과 민족들, 국가와 정부의 지도자들, 여러 종교 지도자들에게 진심어린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는 전쟁과 분쟁이 종식되고, 인간이 자초한 고통, 온갖 전염병과 엄청난 자연 재해에 따른 고통이 사라지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저는, 세계의 화합과 평화를 증진하기 위하여 하느님과 선의의 모든 사람과 협력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소명에 따라 우리가 인간 본성을 거슬러 행동하려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해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충만한 삶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이들과 우애를 나누며 그들을 적이나 경쟁 상대로 보지 않고 형제자매로 받아들여 끌어안도록 해 주는 형제애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바람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인간은 관계적 존재로, 정의와 사랑에 힘입은 인간관계를 통하여 완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 자유, 자율의 인정과 존중이 인간 발전의 기초가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라는 한층 더 확산된 참상은 존중과 정의와 사랑으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우리의 소명과 친교의 삶에 심각한 해악을 끼칩니다. 이러한 끔찍한 현상은 타인의 기본권 유린과 그들의 자유와 존엄의 말살을 초래하며, 이는 다양한 형태로 드러납니다. 저는 이러한 형태들을 살펴보아,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가 모든 사람을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형제자매로 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류를 위한 하느님 계획에 귀 기울이기
 
2. 올해 담화의 주제는 바오로 성인이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의 구절에서 선택하였습니다. 그 서간에서 사도는 그의 협력자 필레몬에게 오네시모스를 환대하여 줄 것을 부탁합니다. 오네시모스는 전에는 필레몬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바오로에 따르면 형제라고 여겨질 자격이 있습니다. 이민족들의 사도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필레 1,15-16). 오네시모스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필레몬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로 돌아서는 것, 곧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은 새로운 탄생(2코린 5,17; 1베드 1,3 참조)을 의미합니다. 이는 가정생활에 바탕이 되는 유대와 사회생활의 토대인 형제애를 낳습니다.
 
창세기(1,27-28 참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어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모가 되도록 하신 아담과 하와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라는 축복에 맞갖게 살아 최초의 형제 관계, 카인과 아벨의 형제 관계를 낳았습니다. 카인과 아벨은 한 배에서 나왔기에 형제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그들의 부모와 같은 혈통과 본성과 존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애는 또한 형제자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차이를 보여줍니다. 형제자매가 출생으로 맺어지고 동일한 본성과 존엄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형제자매로서 본질적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혈통과 본성과 존엄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형제애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류 가정을 키워나가는 데에 근본이 되는 관계망을 형성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창조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탄생 사이에는 죄의 부정적인 현실이 존재합니다. 이 새로운 탄생으로 믿는 이들은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로마 8,29)이신 분의 형제자매가 됩니다. 죄의 부정적인 현실은 인류의 형제애를 번번이 끊어버리고, 한 인류 가정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는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끊임없이 훼손시킵니다. 카인은 아벨을 몹시 꺼려했을 뿐만 아니라 질투에 눈이 멀어 아벨을 죽여 최초의 형제 살해를 저지르고 맙니다.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것은 형제가 되어야 하는 그들의 소명을 근본적으로 거부한 비극적인 증거입니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창세 4,1-16 참조)는 모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과제, 곧 하나 되어 살아가며 서로를 돌보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상기시킵니다.” 2)
 
또한 노아와 그 아들들의 가족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창세 9,18-27 참조). 함이 아버지 노아에게 불충하여 노아는 무례한 아들을 저주하고 아버지를 공경하는 다른 아들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 사이의 불평등이 빚어졌습니다.
 
인류 가정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에서 하느님과 아버지 상과 형제에게서 멀어지는 죄는 친교에 대한 거부의 표현이 됩니다. 이는 노예살이의 문화(창세 9,25-27 참조)를 만들어 내어 그에 따른 영향들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집니다. 여기에는 타인에 대한 거부, 인간 학대, 존엄과 기본권의 침해, 그리고 불평등의 제도화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죄가 많아진 그곳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총이 충만히 내린다”(로마 5,20-21 참조)는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완성된 계약으로 끊임없이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마태 3,17 참조)께서는 인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복음을 듣고 회개하라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이는 누구나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마태 12,50)가 되어  아버지의 자녀가 됩니다(에페 1,5 참조).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행사하지 않고 다시 말해 자유롭게 그리스도께로 돌아서지 않고, 권위주의적인 성스러운 명령에 따른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 곧 아버지의 자녀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베드로의 이 요청에 신앙과 자신들의 삶으로 응답한 모든 이는 첫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형제 관계를 맺었습니다(1베드 2,17; 사도 1,15-16; 6,3; 15,23 참조). 이들은 유다인과 그리스인, 종과 자유인(1코린 12,13; 갈라 3,28 참조)으로, 출신과 사회적 지위가 다양했음에도 저마다의 존엄이 손상되지 않았고, 그 누구도 하느님 백성에서 배제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형제자매가 사랑 속에서 친교를 나누는 자리입니다(로마 12,10; 1테살 4,9; 히브 13,1; 1베드 1,22; 2베드 1,7 참조).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종과 주인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 관계도 회복시켜 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롭게”(묵시 21,5) 만드십니다.3)  복음은 종과 주인의 공통점을 밝혀줍니다. 곧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애의 유대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그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
 
어제와 오늘의 노예살이의 여러 모습
 
3. 유사 이전부터 여러 사회에는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삼는 현상이 있어왔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노예 제도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법제화 되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 법은 태생적인 자유인과 노예를 규정하였고, 또한 자유인이 그 자유를 상실하거나 다시 얻을 수 있는 조건도 명시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법 자체가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소유물로 여겨질 수 있거나 그렇게 여겨져야만 하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노예는 물건처럼 사고팔거나, 소유물처럼 넘겨주거나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인류의 의식이 긍정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인간성을 거스르는 범죄4)로 여겨지는 노예제도가 전세계적으로 공식 폐지되었습니다. 국제법에서 노예나 예속 상태에 있지 말아야 하는 모든 사람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는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국제 공동체가 온갖 형태의 노예살이를 없애기 위하여 수많은 협약을 맺었고, 이러한 현상과 맞서 싸우기 위하여 다양한 전략들을 실행하였음에도, 오늘날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 어린이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살이와 다름없는 상황으로 내어 몰리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분야에서 노예 노동을 하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가사 노동, 농업, 제조업이나 광업에서 노예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예 노동은, 노동 관계법이 국제적인 규범과 최소한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나라들에서 벌어질 뿐만 아니라, 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나라에서조차도 불법적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수많은 이민의 삶의 처지를 생각합니다. 그들은 고달픈 여정 속에서 굶주림을 겪고 자유를 박탈당하며 재산을 빼앗기고 육체적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그들 가운데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리며 혹독한 여정을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하여서도 종종 비인간적인 상황 속에 억류된 이들을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 때문에 불법 체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도 생각합니다. 또한 합법적으로 체류하기 위하여 비인간적인 생활과 노동의 조건을 감내하고 있는 이들도 생각합니다. 특히 이주 노동자들이 고용주에 구조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국내법이 조장하거나 허용하는 경우에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합법적인 체류가 노동 계약에 좌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노예 노동’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 매매를 강요당하는 이들과 성 노예들을 생각합니다. 특히 수많은 미성년자들이 성 매매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제 혼인에 내몰린 여성들, 정략결혼을 위해 팔린 여성들, 남편의 사망으로 그들 스스로 동의를 하거나 거부할 권리 없이 사망한 남편의 친척들에게 상속된 여성들을 생각합니다.
 
저는 또한 장기 적출, 강제 징집, 구걸, 마약의 생산과 판매와 같은 불법 행위, 국제적인 위장 입양을 위한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는 모든 미성년자와 성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으로 저는 테러 집단에 납치되고 구금되어 이용당하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테러 요원이나, 특히 여성들의 경우 성 노예로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행방불명되고, 어떤 이들은 여러 차례 되팔려지며 고문을 당하고 불구가 되거나 살해됩니다.
 

노예살이의 몇 가지 근본 원인
 
4.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노예살이는 인간을 물건처럼 다룰 여지가 있는 인간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죄가 인간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우리를 창조주와 이웃에게서 멀어지게 할 때 우리의 이웃은 더 이상 우리와 동일한 존엄을 지닌 존재로, 곧 똑같은 인간성을 지닌 형제자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물건으로 취급받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힘이나 속임수, 또는 신체적 정신적 억압으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타인의 소유물로 전락되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 곧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거부하는 것 말고도 현대의 노예살이의 형태에는 또 다른 원인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는 무엇보다 빈곤과 저개발과 배척, 특히 여기에 교육 기회의 부재, 또는 드물거나 아예 없는 일자리가 더해지는 경우를 들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인신매매와 노예살이의 피해자들은 극빈의 상황을 벗어나려다가 일자리를 주겠다는 거짓 약속에 속아 오히려 인신매매 조직에 넘어가는 이들입니다. 이 범죄 조직들은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을 현혹시키고자 최신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이들의 부패를 노예살이의 원인으로 꼽고자 합니다. 사실 노예 노동과 인신매매는 반드시 중개 역할을 하는 이들의 부패를 통한 공모로 이루어집니다. 이들 가운데는 일부 사법 당국자, 공무원, 또는 국가 기관이나 군기관의 관계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경제 제도의 중심에 있을 때 발생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책임이 있는 인간이 모든 사회 제도나 경제 제도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물신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할 때 가치의 전복이 일어납니다.”5)
 
노예살이의 또 다른 원인들로는 무력 분쟁, 폭력, 범죄, 테러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납치되어 팔려가거나 테러 요원으로 강제 징집 되거나, 또는 성적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한편 어떤 이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 고향, 집, 재산, 가족까지도 남겨 둔 채 강제 이주를 당하고 있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그들의 존엄과 생명을 잃을 위협을 받으며 이 끔찍한 상황에서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빈곤과 부패와 그 해로운 결과들에 희생되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노예살이 극복을 위한 공동 노력
 
5. 인신매매와 불법 이민 거래의 실상과 알게 모르게 노예제의 모습을 한 여러 현상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 벌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는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저는 수도회들, 특히 수녀회들이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묵묵히 기울여 온 대단한 노력들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 수도회들은 때때로 폭력이 지배하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활동하며, 피해자들을 인신매매범과 착취자들에게 매어있게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사슬은 피해자들이 착취자들에게 매어있게 만드는 교묘한 심리적 책략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고리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책략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친지들에게 가하는 공갈과 협박만이 아니라, 신분증의 압수와 신체적 폭행과 같은 물리적 방법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수도회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곧 피해자들을 돕고, 그들의 심리적 교육적 재활을 위해 일하며,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사회 또는 떠나온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용기와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 이 대단한 노력은 온 교회와 사회의 칭찬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인간 착취의 참상을 없애지 못합니다. 제도적 차원에서 예방, 피해자 보호, 가해자에 대한 사법 처리라는 삼중의 노력 또한 필요합니다. 또한 범죄 조직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국제적 연계망을 활용하고 있으므로, 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 각계 인사들의 세계적 차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국가들은 이주, 취업, 채용, 기업의 해외이전, 노예 노동 상품의 판매에 관한 국내법들이 인간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존중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인권을 수호하며, 인권이 유린된 경우 이를 회복시키는 올바른 법들이 필요합니다. 이 법들은 또한 피해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고 그들의 신변 안전을 보장해야 합니다. 또한 이 법들이 올바로 적용될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통제 장치를 마련하여 부패와 부정의 여지를 조금도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 또한 인정받아야 하며, 이를 위한 여건이 특히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조성되어야 합니다.
 
정부간 기구들은 인신매매와 불법 이민 거래를 총괄하는 조직범죄의 초국가적 연계망과 맞서 싸우기 위하여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협력해야 합니다. 다양한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국내외 기구와 국제기구, 시민사회단체와 재계가 포함됩니다.
 
기업들6)은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근로 조건과 적정 임금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노예 노동이나 인신매매의 형태들이 유통 과정 안에서 나타나지 않도록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과 함께 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구매는 단순히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인 행위임을” 7)  인식해야 합니다.
 
시민 사회단체들은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워 노예살이 문화에 맞서 싸우고 이를 근절하기 위하여 필요한 행동을 독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황청은 최근에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고통과 이들이 자유의 길을 가도록 돕는 수도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이 참상을 없애기 위하여 각계 기관들이 협조와 협력을 하도록 국제 공동체에 거듭 호소해 왔습니다. 8)  또한 인신매매 현상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면서 각계 주요 관계자들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회의를 마련해 왔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학계와 국제기구의 전문가들, 이민의 출발지, 경유지, 도착지 나라의 치안 담당자들, 그리고 피해자들 편에서 일하는 교회 단체 대표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노력들이 앞으로 계속 확대되고 강화되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노예살이도 무관심도 아닌 형제애의 세계화
 
6.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진리를 선포” 9)하면서 교회는 인간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 사랑의 활동을 끊임없이 펼쳐왔습니다. 교회는 모든 이에게 이웃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도록 이끄는 회개의 길을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회개는 이웃이 누구이든 그를 인류 가정 안에서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진리와 자유 안에서 그의 내적인 존엄을 인정하도록 이끕니다. 이를 우리는 수단 다르푸르의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의 이야기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성녀는 아홉 살 때 노예상인에게 납치되어 잔인한 주인들에게 여러 차례 팔렸습니다. 갖은 고통을 겪은 뒤, 마침내 수도회에 입회하여 다른 사람들, 특히 가장 작고 약한 이들을 섬기면서 신앙의 힘으로 “하느님의 자유로운 자녀”가 되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걸쳐 살았던 이 성녀는 오늘날에도 노예살이의 많은 희생자들에게 희망의 모범적인 증인입니다.10)  또한 “오늘날 인류에 몸에 난 상처, 그리스도의 몸에 난 상처”인 인신매매에 맞서 싸우는 데에 헌신하는 모든 이는 이 성녀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11)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여러분 모두 노예살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역할과 책임 안에서 형제애를 보여주는 행동을 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인신매매의 피해자일 수도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상대할 때, 또는 타인을 착취하여 생산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상품의 구매를 망설일 때, 개인이나 공동체로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까?
 
우리 가운데 더러는 무관심에서, 또는 경제적 이유로, 일상의 걱정거리에 사로잡혀 눈을 감아 버립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가운데 더러는 적극적인 행동을 할 것을 결심합니다. 곧 시민단체에 참여하거나 일상의 작은 몸짓들, 예를 들어 따뜻한 말 한 마디나 인사나 미소를 건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은 몸짓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이는 돈 한 푼 안 들면서도 희망을 주고 길을 열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사각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이 현실에 맞서도록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공동체나 국가의 능력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에 버금가는 규모의 동원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저는 선의의 모든 사람과 고위 당국자를 포함하여 가까이에서나 멀리에서나 노예살이의 참상을 목격하는 사람에게 호소합니다. 곧, 이 악의 공범이 되지 말고, 한 인류 가정 안의 형제자매로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자유와 존엄을 빼앗긴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당신의 “가장 작은 형제들”(마태 25,40.45 참조)이라고 부르신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고통 받는 몸12)을 어루만져줄 용기를 낼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는 네 형제에게 무슨 짓을 하였느냐?”(창세 4,10 참조) 하고 물으실 것임을 압니다. 오늘날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삶을 짓누르는 무관심의 세계화에 맞서, 우리 모두 연대와 형제애의 세계화를 위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연대와 형제애의 세계화는 그 형제자매들에게 희망을 되찾아 주고, 그들이 용기 있게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헤쳐 나아가며, 새로운 전망을 얻게 해 줍니다. 그런데 그들이 여는 이 새로운 전망은 하느님께서 바로 우리 손에 맡기신 것입니다.
 

바티칸에서
2014년 12월 8일
프란치스코
주)
1) 2014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항.
2) 2014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항.
3)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11항 참조.
4)  프란치스코, 국제형법협회의 대표들에게 하신 연설, 2014.10.23., 『로세르바토르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영어판, 2014.10.24., 4면 참조.
5)  프란치스코, 세계 민중운동 회의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014.10.28.,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2014.10.29., 7면.
6)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기업가들의 소명 - 성찰」(2013, 밀라노, 로마) 참조.
7) 베네딕토 16세,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66항.
8) 프란치스코, 제103차 국제노동기구 총회에 즈음하여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가이 라이더에게 보낸 메시지, 2014.5.22.,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2014.5.29., 7면 참조.
9) 「진리 안의 사랑」, 5항.
10) “이러한 희망을 알게 되어 그녀는 ‘구원’되었습니다.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로운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녀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고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없기에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 Salvi), 3항).
11) 프란치스코, 교회와 사법당국의 협력을 주제로 한 제2차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국제회의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014.4.10.,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2014.4.11., 7면; 참조: 「복음의 기쁨」, 270항.
12)  「복음의 기쁨」, 24. 270항 참조.
<원문 Message of His Holiness Francis for the Celebration of the World Day of Peace 2015: No Longer Slaves, but Brothers and Sisters, 2014.12.8.,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