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
- 작성일2015/01/2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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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23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2015년 2월 11일)
제23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2015년 2월 11일)
마음의 지혜(Sapientia cordis)
“나는 눈먼 이에게 눈이 되고 다리 저는 이에게 다리가 되어 주었지”(욥 29,15)
“나는 눈먼 이에게 눈이 되고 다리 저는 이에게 다리가 되어 주었지”(욥 29,1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 제정하신 제23차 세계 병자의 날을 맞이하여, 질병의 짐을 짊어지고, 고통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여러모로 하나가 되신 모든 병자 여러분, 그리고 의료계 종사자와 자원봉사자들께 인사드립니다.
올해 세계 병자의 날 주제로 저는 “나는 눈먼 이에게 눈이 되고 다리 저는 이에게 다리가 되어주었지.”(욥 29,15)라는 욥기의 구절을 묵상하며, 이를 마음의 지혜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 지혜는 이론적 추상적인 인식, 추론의 산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야고보 성인이 서한에서 설명하신 대로, 이 지혜는 “순수하고, 그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야고 3,17). 이 마음의 지혜는 형제자매의 고통에 열려 있고 그들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알아보는 사람들 안에 성령께서 불어넣어주시는 생각과 마음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시편의 기도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읍시다.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시편 90[89],12). 세계 병자의 날의 의의는 하느님의 선물인 이 마음의 지혜로 요약됩니다.
2. 마음의 지혜는 형제자매를 섬기는 것입니다. “나는 눈먼 이에게 눈이 되고 다리 저는 이에게 다리가 되어주었지.”라는 욥의 말에서, 고을의 원로들 가운데 어느 정도 권위가 있고 높은 자리에 있던 이 의로운 사람이 곤경에 처한 이들을 어떻게 섬겼는지가 확실히 드러납니다. 그의 높은 도덕적 경지는 하소연하는 가련한 이와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욥 29,12-13 참조).
오늘날에도 말이 아니라 참된 신앙에 뿌리를 둔 삶으로 “눈먼 이에게 눈”이 되고 “다리 저는 이에게 다리”가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곧 몸을 씻고 옷을 입고 식사를 하는 데에 도움이 필요한 병자들 곁에 그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봉사는 특히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치고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며칠 돌보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여러 달이나 여러 해 동안 그렇게 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환자가 더 이상 감사 표현을 할 수 없게 될 경우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위대한 성화의 길입니까! 그렇게 어려운 때에 우리는 주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계심을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며 교회 사명의 버팀목이 됩니다.
3. 마음의 지혜는 형제자매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픈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거룩한 시간입니다. 이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러 오신 아드님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드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입니다(마태 20,28 참조).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22,27).
아픈 형제자매와 묵묵히 함께하는 동행의 가치를 깨닫는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살아있는 신앙으로 성령께 청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곁에 머물면서 우리의 사랑을 전할 때 아픈 형제자매는 사랑과 위로를 더욱 받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삶의 질’을 들먹이면서 중병에 시달리는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믿게 만드는 말들 뒤에는 얼마나 큰 거짓이 감춰져 있습니까!
4. 마음의 지혜는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형제자매를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아픈 이들의 곁에서 보내는 시간의 특별한 가치를 잊고 삽니다. 우리는 언제나 바쁘고, 정신없이 일하고 활동하느라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고 다른 이들을 돌보며 책임지는 것의 가치를 잊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태도 뒤에는 종종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믿음, 곧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형제자매를 향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우선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는 모든 도덕 규범의 바탕이 되는 두 가지 으뜸 계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는 또한 하느님께서 완전히 거저 주시는 은총에 응답하며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을 식별하는 가장 분명한 표지입니다”(「복음의 기쁨」, 179항). 교회가 지닌 선교적 본성에서 “이웃을 향한 실질적인 사랑, 이해하고 돕고 격려하는 공감이 솟아납니다”(「복음의 기쁨」, 179항).
5. 마음의 지혜는 형제자매를 심판하지 않고 그들과 연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픈 이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찾아가 만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욥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 곁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이레 동안 밤낮으로 그와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고통이 너무도 큰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욥 2,13).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내심 그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욥의 불행을 그의 잘못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참사랑은 심판하지 않는 나눔, 다른 이들의 회개를 요구하지 않는 나눔입니다. 짐짓 남이 칭찬해 주기를 바라고 좋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그러한 거짓 겸손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참사랑입니다.
욥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비로소 그 진정한 해답을 찾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온전히 무상으로 지극한 자비에서 우리와 맺으시는 연대라는 지고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참담한 고통, 특히 무고한 고통에 대한 이 사랑의 응답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상처는 신앙의 걸림돌이면서 신앙의 증거이기도 합니다(2014년 4월 27일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시성식 강론 참조).
우리가 질병과 외로움과 무능력으로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기가 힘들 때에도, 고통의 경험은 은총을 전하는 탁월한 자리이며 마음의 지혜를 얻고 키우기 위한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욥이 모든 일을 겪고 난 뒤 하느님께 드린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 42,5). 고통과 아픔의 신비에 잠긴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이를 받아들일 때 신앙의 산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인간이 자신의 머리로 고통의 의미를 깊이 이해할 수 없더라도 이를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6. 사람이 되신 지혜,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낳으신 어머니 마리아의 보호에 이번 세계 병자의 날을 맡겨드립니다.
오! 상지의 옥좌이신 마리아님, 우리 어머니로서 모든 병자와 그들을 보살피는 이들을 위하여 전구해 주소서. 저희가 고통 받는 이웃을 섬기고, 고통의 경험을 통하여 마음의 참된 지혜를 받아들이고 키워나갈 수 있게 하소서.
저는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이 기도를 바치며 교황 강복을 보내드립니다.
바티칸에서
2014년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2014년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프란치스코
<원문: Message of Pope Francis for XXIII World Day of the Sick 2015, 2014.12.3., 독일어,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판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