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회칙 해설
- 작성일2015/06/3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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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보도자료 첨부 3>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 (Laudato Si’) 해설
이 해설은 회칙을 처음 읽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이 해설이 회칙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기본 주제를 확인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개괄에서는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를 종합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장으로 나누어 논지나 요점과 중요한 구절을 요약하였습니다. 괄호 안의 숫자는 회칙의 항 번호를 나타냅니다.
개괄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고 있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떠한 세상을 남겨주고 싶습니까?”(160항) 이 질문이 더불어 사는 집을 돌보는 데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의 핵심입니다. “이 질문은 환경만을 따로 떼어 놓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단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삶의 의미와 사회생활의 근저에 놓인 그 가치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하도록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의 활동과 모든 노력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구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심오한 문제와 싸우지 않는다면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낳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60항).
이 회칙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찬가」(Cantico delle creature)에 나오는 후렴구인 “저의 주님, 찬미를 받으소서.”에서 그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이는 더불어 사는 집인 지구가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1항)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 흙의 먼지”(창세 2,7 참조)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지구의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공기를 마시며 지구의 물로 생명과 생기를 얻습니다”(2항).
이제 이 지구가 착취와 남용으로 신음하며 세상에 모든 버려진 이와 함께 탄식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그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초대하시며 우리 모두, 곧 개인, 가정, 지역 공동체, 국가, 국제 공동체가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이 말씀하신 “생태적 회개”를 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집을 돌보는” 과업의 아름다움과 책임을 느끼며 “방향 전환”을 하도록 초대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사람들이 “우리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참되고 깊은 관심과 더불어 환경 보호에 대하여 더욱 민감해지고 자연보호의 필요성”(19항)을 느끼고 있음을 기쁜 마음으로 확인하십니다. 회칙 전체에서 다음과 같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희망의 빛줄기가 흘러나옵니다. “인류는 더불어 사는 집을 함께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13항). “인간은 아직 긍정적으로 관여할 수 있습니다”(58항).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인류는 최악의 것을 자행할 수 있지만 또한 자신에게서 벗어나 선한 것을 선택하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205항).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을 인용하시며 가톨릭 신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피조물 안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자각하고 자연과 창조주에 대한 의무’가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을 자각합니다”(64항).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특히 “더불어 사는 집에 관하여 모든 이와 대화를 나눌 것”(3항)을 제안하십니다. 이 대화는 회칙 내용 전체에서 언급되고 제5장에서는 문제에 대한 접근과 해결의 방법이 됩니다. 처음부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다른 교회와 교회 공동체와 다른 종교들도” 생태계라는 주제에 관한 “깊은 관심과 소중한 성찰을 해왔음”을 기억하십니다(7항). 확실히 그러한 기여는 “존경하는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님”(7항)과 나눈 대화에서 시작되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대화는 8항과 9항에 많이 인용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러한 노력을 하는 개인과 단체와 협회의 일꾼들에게 여러 차례 감사를 전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많은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 시민 단체가 모두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성찰을 풍요하게 해 주었음”(7항)을 인정하십니다. 교황님께서는 “온전한 생태계와 인류의 충만한 발전을 위한 종교의 풍요한 기여를”(62항) 모든 사람이 인정하여 줄 것도 바라십니다.
15항에 기술되어 있는 대로 이 회칙의 틀은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회칙은 오늘날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과학적 발견에 바탕을 둔 현재 상황을 제시합니다(제1장). 그러고 나서 성경과 유다-그리스도교 전통의 검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제2장). 또한 기술관료제와 인간의 지나친 자기중심주의에 놓인 문제들의 근원을 분석하고 있습니다(제3장). 다음으로 이 회칙은 제4장에서 환경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적 사회적 차원을 분명히 존중하는 온전한 생태학”(137항)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을 구축하도록 사회, 경제, 정치 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솔직한 대화를 시작할 것을 권유하십니다(제5장). 교황님께서는 그 어떤 계획도 잘 길러진 책임 있는 양심으로 촉진되지 않으면 효과를 거둘 수 없음을 상기해주시며, 교육, 영성, 교회, 정치, 신학의 차원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제안을 하십니다(제6장). 교황님께서는 두 기도로 이 회칙을 마무리하십니다. 하나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신 하느님”(246항)을 믿는 모든 신앙인과 함께 드리고자 하는 기도입니다. 또 다른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는 “찬미를 받으소서.”라는 후렴구가 나옵니다. 이 회칙은 이 후렴구로 시작되고 마무리됩니다.
이 회칙에 나오는 여러 주제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나온 것으로 회칙 내용을 관통하여 일관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지구의 취약함의 긴밀한 관계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기술에서 나오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힘에 대한 비판
-경제와 발전에 대한 다른 이해 방식을 찾으라는 요청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
-생태계의 인간적 의미
-숨김없는 솔직한 토론의 필요성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의 중대한 책임
-버리는 문화와 새로운 생활 양식의 제안(16항)
제1장 더불어 사는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제1장은 환경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발견을 피조물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으로 제시합니다. 이는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을 통렬하게 자각하고 기꺼이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 삼아 우리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19항). 그래서 이 장은 “현재의 생태 위기의 여러 측면들”(15항)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염과 기후 변화: “기후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환경, 사회, 경제, 정치, 재화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과제입니다”(25항). 만약 “기후가 모든 이에게 속하고 모든 이를 위한 공공재라면”(23항), 가장 가난한 이들이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많은 자원과 경제적 정치적 힘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문제를 호도하거나 문제의 증상들을 감추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26항). 또한 “우리의 형제자매가 관련된 이 비극에 대한 우리의 부족한 대응은 모든 시민 사회의 기초가 되는, 우리 이웃에 대한 책임감의 상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25항).
물 문제: 교황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보편적인 기본 인권입니다. 물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며, 바로 그래서 다른 인권들을 행사하는 데에 전제 조건이 됩니다.” 가난한 이들이 물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침해할 수 없는 존엄에 맞갖은 생명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30항).
생물다양성의 감소: “해마다 우리는 수천 종의 동물과 식물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것들은 영원히 사라져 버려서 우리가 전혀 모르게 되고 우리 후손들은 전혀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33항). 이것들은 그저 착취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인간이 야기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에 헌신하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소중한 노력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관여가 금융과 소비주의를 위한 것이라면 “이는 사실 우리 지구를 빈곤하고 추하게 만드는 것이며 더욱 제한되고 음울하게 하는 것입니다”(34항).
인간 삶의 질의 저하와 사회 붕괴: 국제 관계 윤리의 틀 안에서 이 회칙은 “실제적인 ‘생태적 빚’”(51항)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특히 남반구에 대하여 북반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를 대하는 데에 “차등적 책임”(52항)이 있으며 선진국의 책임이 더 큰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한 많은 견해차를 인식하시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많은 민족들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 비극에 대한 “미약한 반응”에 깊은 충격을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긍정적인 예들이 없지는 않지만(58항), “자기만족과 커다란 부주의”가 팽배해져 있습니다(59항). 합당한 문화가 결여되어 있고(53항) 생활 양식과 생산과 소비를 바꾸려는 의지도 없습니다(59항).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계를 분명히 정하여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는 법적 틀을 수립하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53항).
제2장 피조물에 관한 복음
제1장에서 기술한 문제에 대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시며 유다-그리스도교 전통의 포괄적인 시각을 제시하시고 피조물에 대한 “엄청난 책임”(90항)을 설명하십니다. 또한 모든 피조물들의 긴밀한 관계와 “자연 환경이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공공재”(95항)라는 사실을 설명하십니다.
성경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하시는 바로 그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 두 활동 방식은 긴밀하고 분리 할 수 없게 연결되어 있습니다”(73항). 창조 이야기는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죄가 창조 질서 전체의 균형을 어떻게 깨뜨렸는지를 성찰하는 데에 핵심이 됩니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관계, 곧 하느님과의 관계, 우리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 세 가지 핵심적인 관계는 이 세상과 우리 안에서 깨어졌습니다. 이러한 불화가 죄입니다”(66항).
이러한 이유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때로는 성경을 잘못 해석한 적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어 땅에 대한 지배를 위임받은 사실이 다른 피조물에 대한 절대적 지배를 정당화한다는 생각을 단호하게 거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67항). 인간은 세상이라는 정원(창세 2,15 참조)을 “가꾸고 돌보아야 하는”(67항)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피조물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히려 모든 피조물은 우리와 더불어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공동의 도착점을 향하여, 곧 하느님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83항).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수준에 있다고 여기게 되어 인간의 고유한 가치가 사라지고 그에 따르는 엄청난 책임이 면제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지구를 신격화하여, 지구를 위하며 그 취약점을 돌보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90항). 이러한 관점에서 “모든 피조물에 대한 모든 잔인한 행위는 ‘인간 존엄에 어긋나는’ 것입니다”(92항). 그러나 “우리 마음에 이웃에 대한 세심함, 연민, 배려가 없다면 자연과의 깊은 친교의 감각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91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편적 친교에 대한 의식입니다. 우리 모두 “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유대로 연결되어 있고 함께 보편 가정을 이루며 우리를 거룩하고 사랑이 넘치며 겸손한 존중으로 채워주는 숭고한 친교를 이룹니다”(89항).
이 장은 그리스도교 계시의 핵심에 관한 글로 마무리됩니다. “지상의 예수님께서는 세상과 실재적인 사랑의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시어 당신의 보편적 주권으로 모든 피조물 안에 현존하십니다”(100항).
제3장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
이 장에서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철학과 인문과학의 대화를 통하여 “그 증상과 심층적 원인들을 성찰하기 위한 것입니다”(15항).
기술에 대한 성찰로 이 장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술이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바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은 “온갖 기술 지식, 특히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경제적 재원을 확보한 이들이 인류 전체와 온 세상을 강력하게 지배할 수 있도록” 합니다(104항). 이것이 바로 기술관료적 지배의 사고방식으로 자연의 파괴와 인간, 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의 착취를 야기합니다.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은 또한 경제생활과 정치생활을 지배하는 경향을 보입니다”(109항). 그리하여 “시장 자체가 온전한 인간 발전과 사회 통합을 보장할 수 없다”(109항)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현대는 지나친 인간중심주의로 얼룩져 있습니다”(116항). 인간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자신의 올바른 자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여 자기 자신과 그 힘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쓰고 버리는 방식”의 논리를 낳아 환경과 인간의 모든 낭비를 정당화하고 타인과 자연을 단순한 대상으로 여기며 무수한 지배 형태를 야기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아동 착취, 노인 유기, 타인의 노예화, 인신 매매, 부모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의 낙태, “피의 다이아몬드”와 멸종 위기 동물 가죽의 매매, 시장의 자율 능력에 대한 지나친 확신을 야기합니다. 이는 또한 마약 매매와 장기 매매에 관여하고 있는 많은 마피아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123항).
이러한 관점에서 이 회칙은 현대 세계의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활동에 앞서서 “인류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온전한 생태학에 대한 모든 접근은 노동의 가치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124항). “단기간에 걸쳐 더 큰 금전적 이익을 얻고자 인적 투자를 중단하는 것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업 행위”(128항)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문제는 명확히 유전자 변형 식품에 관련된 과학 발전의 제약에 관한 것입니다(132-136항). 이는 “복합적인 환경 문제”(135항)입니다. 비록 “일부 지역에서는 유전자 변형 식품이 경제적 발전을 가져와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지만 간과할 수 없는 많은 중요한 문제들이 남아 있습니다”(134항). 이 문제는 “경작지를 소수의 소유주가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134항).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특히 군소 생산자들과 농촌의 일꾼들, 생물다양성, 생태계망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광범위하고 책임 있는 과학적 사회적 토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든 가능한 정보를 고려하고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독립적인 학제적 연구에서”(135항)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4장 온전한 생태학
이 회칙이 제안하는 것의 핵심은 정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온전한 생태학입니다. 이 생태학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우리의 고유한 자리와 우리와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존중하는 것입니다”(15항). 사실 “자연은 우리 자신과 분리되거나 우리가 사는 단순한 배경으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139항). 이는 모든 분야에서 사실입니다. 경제와 정치, 여러 문화, 특히 가장 위협을 받는 문화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온전한 관점은 제도의 생태학도 이용합니다. “모든 것이 관련되는 것이라면 사회 제도의 건전성도 환경과 인간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칩니다”(142항)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많은 구체적인 예를 드시면서 당신의 생각을 확인하십니다. “환경 문제의 분석은 인간, 가정, 직업 관련 도시 상황의 분석, 인간들 자신과의 관계 분석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141항). “우리는 환경과 사회와 관련된 두 가지 별개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한 것입니다”(139항).
“인간 생태학은 공동선의 개념과 분리될 수 없지만”(156항)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불의가 판치고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빼앗기고 소모품처럼 여겨지게 되는”(158항) 오늘날의 상황에서 공동선을 위한 노력은 “우리 형제자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158항)에 기초한 연대를 이루어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이러한 진리를 선포할 뿐 아니라 오늘날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며 미래 세대에게 지속가능한 세상을 물려주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이미 이를 분명히 강조하셨습니다. “더욱 공평한 세대 간 연대 의식에 덧붙여, 세대 안의 연대 의식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도덕적 요구도 절실합니다”(162항).
또한 온전한 생태학은 일상생활과도 관련됩니다. 이 회칙은 도시 환경에 대하여 특별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인간은 뛰어난 적응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의 제약에 반응하는 개인과 집단은 주변 환경의 적대적 영향을 완화하고 무질서와 불확실성 안에서도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놀라운 창의력과 관용을 보여줍니다”(148항). 그렇지만 공적 공간, 주택, 교통을 포함한 인간 삶의 질의 온전한 개선은 여전히 더욱 진전될 필요가 있습니다(150-154항).
또한 “우리의 몸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을 하느님 아버지의 선물이며 우리가 더불어 사는 집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피조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155항).
제5장 접근법과 행동 방식
이 장은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에 관한 문제를 다룹니다. 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국제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이 참여하는 대화와 행동을 위한”(15항) 제안이 필요합니다. 이 제안은 “현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자기 파괴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163항)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실천적인 제안이 이념적으로 피상적이거나 환원주의적인 방식으로 개발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화가 필수적이며 이 단어는 이 장의 모든 절에 나와 있습니다. “폭넓은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부 환경 문제가 있습니다. …… 교회는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정치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특정 이익이나 이념이 공동선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솔직하고 열린 토론을 권장하고 싶습니다”(188항).
이러한 근거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국제적인 움직임을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최근에 있었던 환경에 관한 세계 정상 회담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정치적 의지가 결여 되어 참된 의미가 있는 효과적인 세계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였습니다”(166항). 그리고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습니다. “이 단계에서 긴급하고 필수적인 행동을 취할 수 없는 것으로 기억될 뿐인데도 권력에 집착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57항) 그런데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에서 시작하여 여러 교황님들께서 되풀이하여 말씀하신 대로 필요한 것은 세계 통치의 형태와 수단입니다(175항). “이른바 ‘인류 공공재’ 전체를 다룰 통치 제도에 대한 합의”(174항)가 필요한 것입니다. “환경 보호가 비용과 수익에 관한 금전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해서만 보장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환경은 시장의 힘으로 바르게 보호되거나 증진될 수 없는 재화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90항).
이 제5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솔직하고 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의 수립을 주장하십니다. 이는 어떤 정책과 사업 계획이 “참다운 온전한 발전”을 가져 올 수 있는지를 “식별하기” 위한 것입니다(185항). 특히 “새로운 벤처 사업과 계획”에 관한 올바른 환경 영향 연구는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포함한 투명한 정치적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특혜의 대가로 특정 계획의 실제적인 환경 영향을 은폐하는 부패는 대부분 올바른 정보를 주지 못하고 충분한 논의를 허용하지 않는 허점투성이의 합의만을 낳을 뿐입니다”(182항).
교황님께서는 정치적인 직무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오늘날 매우 만연한 “‘효율’과 ‘즉각’의 사고방식”(181항)을 버릴 것을 간곡히 당부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용기를 낸다면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그들의 존엄을 증언하고 헌신적인 책임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181항).
제6장 생태 교육과 영성
교황님께서는 이 마지막 장에서 모든 이가 생태적 회개의 마음을 지니도록 초대하십니다. 문화적 위기의 뿌리는 깊습니다. 그리고 습관과 행동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육과 훈련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동기 부여와 교육 과정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합니다”(15항). 모든 교육 분야가 참여하여야 하며 무엇보다도 “학교, 가정, 매체, 교리교육과 그 밖의 분야에서”(213항) 이루어져야 합니다.
출발점은 “새로운 생활 양식을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203-208항). 이는 또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힘을 발휘하는 이들에게 건전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206항)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이는 소비자의 선택으로 “기업 운영 방식을 바꾸도록” 할 수 있을 때에 이루어집니다. 이는 “기업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그 생산 방식을 성찰하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206항).
환경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환경 교육은 행동과 일상 습관, 곧 물 절약, 쓰레기 분리 수거, 나아가 “필요 없는 전등의 소등”(211항)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온전한 생태계는 폭력과 착취와 이기주의의 논리를 타파하는 평범한 일상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230항). 모든 것은 신앙에서 나오는 관상적 관점에서 시작될 때 쉬워질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 맺어주시는 유대를 생각하며 세상을 밖이 아니라 안에서 관찰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주신 능력을 발전시킴으로써 생태적 회개는 우리가 더 큰 창의력과 열정을 발휘하도록 해줍니다”(220항).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제안된 것과 같이 “자유롭게 의식적으로 발휘되는 냉철함은 우리를 해방시켜줍니다”(223항). 다시 말해서 “행복은 우리를 해칠 뿐인 일부 욕구를 억제하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이 줄 수 있는 많은 다른 가능성들에 열려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223항).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고 이웃과 세계에 대한 공동 책임이 있으며 선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229항).
성인들은 이러한 여정에 우리와 함께합니다. 이 회칙에서 여러 차례 인용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취약한 이들을 돌보고 온전한 생태학을 기쁘고 참되게 실천한 훌륭한 모범입니다”(10항).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연 보호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와 사회적 헌신과 내적 평화 사이의 불가분의 유대”를 잘 보여줍니다(10항). 이 회칙은 또한 베네딕토 성인,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 샤를 드 푸코 복자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회칙에서 힘을 얻어 정기적인 양심 성찰에 새로운 차원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양심 성찰은 개인의 삶을 주님과의 관계에 비추어 이끌도록 언제나 권고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다른 이들과 자기 자신과 어떤 친교를 이루며 살았는지에 관한 것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자연과 어떻게 친교를 이루고 살았는지를 깊이 성찰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