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교구장 사목교서
- 작성일2015/11/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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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를 사는 가정 공동체
-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해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 요한 4,16).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교구 설정 50주년이라는 축제의 해를 지내며 하느님께서 척박한 이 땅에 당신의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많은 복음적 열매를 맺게 해 주셨음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교구민 모두가 지나가는 한 번의 행사로 교구 설정 50주년을 기념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적 성숙과 교구의 복음화를 위해 준비하고 지낸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 교구는 박해의 상황 안에서 신앙을 지킨 순교의 땅이며, 현대사 안에서 주님의 정의와 평화를 예언자적 목소리로 외친 정의와 평화의 요람이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기쁨을 살아가고자 하는 복음화의 영역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구 설정 50주년의 축제의 해를 마치고, 새로이 100주년을 향해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으며, ‘하느님의 자비를 사는 가정 공동체’라는 사목목표를 가지고 전 교구민이 자비와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해로 지내고자 합니다. 가정 공동체는 복음화의 시작이며 사랑의 중심이고, 생명과 복음화의 터전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라’(마태 28, 19)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과 소통하며 세상 안에 참 생명과 참 사랑을 전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살아가는 우리 가정의 소중함과 사명을 돌아보며, 복음화를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 요한 4,16)
인간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실존으로 부르신 유일한 창조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 없이 결코 그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낌없이 자기를 내어주는 자기 증여의 삶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도, 인간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랑의 중심이요 핵심인 가정 공동체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사랑 하시어 온전히 자기 증여의 삶을 실천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이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요한 1, 14)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필립 2, 7)의 삶으로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방식을 살아야 함을 말해 줍니다. 성자의 육화(肉化)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것을 모두 내려놓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죄 말고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사랑의 절정이며 우리와 함께, 우리 가운데 오신 ‘영원’이 유한한 시간 안에 머무르시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신앙과 사랑 안에서 죽음과 거짓과 미움의 세상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1 요한 5,4 참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인간의 삶을 다시 한 번 상기 시킵니다. 하느님 계획에 따라 ‘공동체성’(사목헌장 24항)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만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진정한 기쁨 안에 머무르며 복음화 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배우며, 그분이 우리에게 몸소 알려주신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게 한 죄에서 벗어나, 가정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근본적인 소외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 13,9-10; 1요한 4,20 참조)이며, 날로 더욱 서로 의존해 가는 사람들에게 또 날로 더욱 하나로 합쳐지는 세상에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사목헌장 24항)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의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움’을 통한 사랑의 삶을 살지 못하고 물질주의에 물든 소비와 소외를 통해 세속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물건이 아닙니다. 물질은 우리의 삶의 도구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받침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최고의 관심사는 인간이며, 인간의 최초의 공동체인 가정은 얼마나 위대하고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대의 많은 이들의 가정이 물질주의의 영향으로 세속화를 겪고 있고 더 이상 사랑의 공동체, 나눔의 공동체가 되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정안에서의 공동선의 결여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가정교서」를 통해 ‘인간 자신이 가정의 공동선’임을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가정이 하느님의 영광을 살며,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신 성자의 사랑의 삶을 기초로 하는, 그 무엇으로 대체 될 수 없는 공동체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 없는 자유는 우리의 가슴을 고통스럽게 하고 상처를 나게 합니다. 현재 많은 가정들이 이런 상처와 고통으로 아파합니다. 불행한 혼인은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그 고통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인한 기쁨으로 전수된 신앙이 아닌 세속적이며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은 고통을 통해 신앙이 전수되기에 현대의 가정은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으며, 복음적 기쁨과는 거리가 멀고, 자녀들은 쉽게 신앙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가 만나야 하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 자체이신 그 분께서 ‘어떤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는지 기억해야’합니다(1고린 6,20). 예수 그리스도를 배움은 우리의 삶이 빠르고 극변하는 변질의 시대에서 우리 자신을 알아가고 우리 가정의 소중함을 배우며,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사랑과 효를 중심으로 한 전통문화 또한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현대의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해야합니다.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첫 단초는 우리들의 회개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돌리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계명, 즉 사랑을 살고 그대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판결되고 동시에 계속해서 예측할 수 없는 기적으로 머뭅니다. 이 사랑의 내적 논리와 아름다움은 자신을 사랑케 하고 신앙하는 자에게만 열어 보입니다. 사랑을 위한 전제조건 또한 회개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데, 이 회개는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회개는 인격주체로서의 회개만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당신의 의지는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한 해방이며, 죄와 그것의 근원에서 벗어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회개는 공동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벗어난 인간의 근본적인 소외는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메시지에 반대하며, 그분의 사랑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요구는 다시 공동체 안에서 사랑하기를 원하는 신호입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인류와 역사를 수놓았던 심각한 소외현상들을 극복하고 모두가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더라”하신 태초 창조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징벌하는 사랑이 아니라 오직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가정교서 18).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5년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부터 2016년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를 ‘자비의 희년’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에페 2,4)의 신적인 생명에 참여하는 사랑의 삶은, 돌아온 탕자(루카 15,11-32))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신발을 신지도 않고 달려가 아들을 안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신적인 삶에 함께 하자는 초대이자 그 같은 사랑의 표징입니다.
모든 가정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갑니다. 그것은 가정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을 배우고 얻기 위함이며, 은총의 체험을 통한 가정의 성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하고 상처 받은 가정과 가족 구성원들에게 이 십자가는 더욱 고통스럽고 힘들어 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지고 걸었듯이, 현대의 어려운 가정들과 함께 걸어가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힘과 희망을 북돋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불행한 혼인으로 가정 공동체가 와해된 가정을 위해 돕고, 그들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올바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이 그 활동의 시작이며, 교구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많은 곳에서는 본당이 그 역할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각 본당의 역할은 복음화를 위해 힘쓰며,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신 주님의 일을 지역의 환경과 상황을 고려하여 실행하는 것입니다. 자비와 사랑의 실천을 통해 고통 받으며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공동선을 실현하며,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실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그리고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
올해는 우리 원주 교구 설정 50년을 마치고, 100주년을 향해 출발하는 첫 해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사는 가정 공동체’라는 사목목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교구가 더욱 복음화 될 수 있도록 우리 삶의 공동체의 기초인 가정을 통한 내적 성숙을 이루어 복음화의 기초를 쌓도록 노력합시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 (Gaudium et Spes)’(사목헌장 1항)의 복음화의 삶으로 초대합니다. ‘기쁨과 희망’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핵심적으로 요청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이며,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교회가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기쁨과 희망’의 삶은 우리와 ‘슬픔과 번뇌’에 있는 사람들의 연대감을 형성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5,4)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기쁨과 희망의 삶이 그리스도께서 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이고 위로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압니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이민자 가정과 난민 그리고 다문화 가정을 위한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며, 교황으로 선출되신 후 첫 삼종기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것을 바꾸는 하느님의 자비를 느끼도록’(2013년 3월 17일 삼종기도 말씀) 한다면 하느님의 자비는 나약한 가정을 튼튼하게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희생과 극기를 행하는 데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희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선물한 사랑을 완성하는 한 방법이며, 극기는 성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듯이 이기주의를 넘어서 공동선을 향한 영성적 삶의 초대입니다. 신앙 안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우리의 교회는 서로를 성장하도록 도와주며, 서로 위로하고 사랑을 통해 믿음을 선포하는 공동체, 사랑 안에서 가장 위대한 덕행을 실행하는 공동체,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가정의 성화를 위해 기도하며, 사랑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진정한 신앙인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또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충실히 섬기며 살 수 있도록 천상 은총의 어머니 마리아께 간구하며, 우리나라의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의 전구를 청합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2코린 5,14).
2015년 11월 29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주교 김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