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병인 순교 150주년 기념 사목교서 발표
- 작성일2016/03/3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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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병인 순교 150주년 기념 사목교서 발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병인 순교 150주년 기념 사목교서”를 2016년 3월 30일자로 발표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병인박해(1866년)의 순교 역사를 기억하며 한국 천주교회와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며 살아가도록 권고하고자 마련된 사목교서다. 발표일인 3월 30일은 병인 순교 성인 5위(다블뤼 주교, 황석두 루카,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장주기 요셉)의 순교일이다.
사목교서에서 주교회의는 한국 교회가 100여 년간 겪은 박해의 역사, 특히 1866년부터 10년 가까이 지속된 병인박해에 대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의 십자가가 얼마나 큰 은총과 영광으로 이어지는지를 깨닫게 하는 순례의 시간들”이라고 했다. 이어 주교회의는 이벽 세례자 요한, 김범우 토마스 등 박해로 희생된 신앙 선조들을 언급하며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과 존경이 하느님의 종 133위의 시복으로 이어지고 한국 교회 안에 순교의 신앙이 흐르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주교회의는 또한 한국 천주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선교, 수도회의 헌신, 한국 전쟁 시기에 순교한 선교사들, 평양교구의 순교자들, 근.현대 순교자와 증거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70년간 지속되어 온 침묵의 북녘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하루 빨리 되찾고, 헤어지고 갈라진 형제들이 서로 용서하고 진정한 일치가 이루어지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갈구한다”고 했다.
이어 주교회의는 순교 정신의 열매를 맺기 위한 실천으로 ▲사랑의 증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애덕 실천 ▲자비로운 공동체 형성을 제안했다. 주교회의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셨다. 암울한 박해시기에 순교자들은 한 알의 밀알로 자신을 희생했다. 우리도 또 다른 밀알이 되어 인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또한 주교회의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이 신앙 선조들의 애덕 실천을 물려받은 결과임을 환기하며,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선의와 경험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러한 자세가 없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셈이 된다”고 했다.
끝으로 주교회의는 2016년이 병인 순교 150주년인 동시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개막하신 자비의 특별 희년 기간임을 환기하며, “올 한 해 동안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들의 삶을 비추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로 이끄시도록 의탁하며,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용서와 만남의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봉사하는 역할에 성실할 것을 다짐하자”고 신자들에게 권고했다.
* 병인박해
조선 말기인 1866년에 시작되어 약 10년간 계속된 천주교 박해. 5년 만에 8천여 명에 이르는 신자들이 처형되거나 희생됐다. 고종의 후견인으로 정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이 유교적 국가 체제를 강화하고자 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박해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서 선교하던 프랑스 선교사 12명 가운데 베르뇌 주교, 다블뤼 주교 등 9명이 순교했고, 이는 병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병인 순교자들의 시복을 위한 자료 조사는 1876년경 시작됐으며, 시복 심사를 거쳐 24위 순교자가 1968년 복자품에 올랐다. 병인 순교 100주년이었던 1966년에는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가 “병인년 순교 100주년 교서”를 발표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 병인 순교 복자 24위와 먼저 시복된 기해, 병오 박해 순교자 79위(1925년)를 함해 모두 103위를 성인품에 올렸다.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사목교서
박해시대 교회에 대한 반추
올해는 병인순교 15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살아온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현재의 교회를 이해하고 미래의 교회를 미리 전망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신해박해(1791),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를 거치며 백여 년 동안 모진 시련을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이 기간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의 십자가가 얼마나 큰 은총과 영광으로 이어지는지를 깨닫게 하는 순례의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1베드 5,10 참조).
특히 십년 가까이 지속된 병인박해는 한국 천주교회의 근간을 뿌리째 흔든 혹독한 시련기였습니다. 병인박해가 시작된 지 5년 만에 8천여 명에 이르는 신자들이 처형되거나 희생되었으며, 살아남은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전국의 각지로 흩어져 정처 없이 떠돌며 가난과 질병,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병인순교 150주년을 맞이하여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분들 특히 무명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오늘날에도 묵묵히 신앙을 증거하는 분들을 보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병인순교 백주년(1966)에 병인박해 순교자 26위의 시복을 고대하면서 교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교서에서 초창기 교회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한국 교회사는 이승훈이 갑진년(1784) 초에 북경에서 영세하고 돌아와 평신도 교회를 창설한 이래 불과 2백 년이 못되는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순교자의 용기 가득한 신앙 증거는 신앙인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초기의 교회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박해로 희생된 신앙의 선조들을 기억합니다. 신앙의 선조들 중 이벽 세례자 요한의 순교는 신앙 때문에 가족들이 서로 갈라지고 맞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루카 12,52-53 참조). 또한 유배지에서 많은 이들이 신앙을 증거하며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 중에 대표적인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를 기억합니다.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들에 대한 이러한 기억과 존경이 이미 추진 중에 있는 하느님의 종 133위의 시복으로 이어지고 한국 교회 안에 순교의 신앙이 면면히 흐르기를 희망합니다.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
한국 천주교회는 병인순교 백주년(1966) 교서를 통해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와 두 번째 사제 최양업 토마스의 양성을 포함하여, 그 외의 방인 신학생 양성에 힘쓴 파리 외방 전교회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 병인순교 15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는 한국 천주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메리놀 외방 선교회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등의 선교사들,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 수도자들과 그 밖의 여러 수도회의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서 한국 전쟁 시기에 순교한 선교사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의 시복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평양교구의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 순교자들을 비롯하여 근·현대 시기의 순교자와 증거자들의 신앙 증거에 경의를 표하며 그분들의 신앙과 삶을 본받고자 합니다.
우리 곁에는 침묵하고 있는 북녘 교회가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사제와 수도자도 남아 있지 않은 북녘 땅에는 57개의 본당과 80여 명의 사제, 180여 명의 수도자, 5만 2천여 명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70년간 지속되어 온 침묵의 북녘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하루 빨리 되찾고, 헤어지고 갈라진 형제들이 서로 용서하고 진정한 일치가 이루어지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갈구합니다.
사랑의 최고 증거인 순교 열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면서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입니다.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그리고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제자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죽음을 자유로이 받아들이신 스승을 본받고 피를 흘려 스승과 동화되는 순교는 교회에서 최상의 은혜로 또 사랑의 최고 증거로 여겨집니다.”(교회 헌장, 42항).
우리는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라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호교론」 50, 13)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암울한 박해시기에 신자들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지금의 교회가 있을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하였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약 만여 명 순교자들이 밀알이 되어 백 배, 오백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도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라 또 다른 밀알이 되어 인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처럼 작지만 하느님께서는 더욱 크게 만들어 당신의 구원 사업의 도구로 쓰실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애덕 실천
박해 시기의 한국 천주교회는 주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비록 제한적이지만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이를 돌보는 활동에 동참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각 교구마다 사회복지 시설과 단체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가난한 이웃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우리 신앙 선조들의 애덕 실천을 물려받은 결과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복음의 아름다움을 적절히 드러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결코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표지가 있습니다. 곧 가장 작은이들을 위한 선택, 사회가 저버린 이들을 위한 선택입니다.”(「복음의 기쁨」, 195항) 우리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선의와 경험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없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셈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으며(루카 4,18 참조), ‘하느님 나라는 그들의 것이다’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6,20 참조).
자비로운 공동체 형성
2015년 12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개막하셨습니다. 2016년 한국 천주교회가 병인순교 150주년을 맞이하면서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고 있는 것은 그 의미가 깊습니다. 순교자들은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용서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섭리를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우리는 순교자들을 본받아 하느님의 선하심과 온유하심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자비의 도구로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하겠습니다. 올 한 해 동안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들의 삶을 비추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로 이끄시도록 의탁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주님의 자비에 주의를 기울여 우리 자신이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뚜렷한 표지가 되도록 부름”(「자비의 얼굴」, 3항)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마르 5,1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비로운 사랑의 눈길로 보고 계십니다. 연민과 자비로 끝까지 용서하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본받아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 원수까지도 용서할 것을 다짐합시다. 우리는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용서와 만남의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봉사하는 역할에 성실할 것을 다짐합시다.
“자비는 교회활동의 토대입니다. 교회의 모든 사목 활동은 온유함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온유함을 신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자비의 얼굴」, 10항) 신앙인들은 자비로운 삶을 통해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모 마리아와 그 배필이신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2016년 3월 30일
성 다블뤼 주교와 성 황석두 루카 외 3인의 순교일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