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차 세계 이민의 날 교황 담화
- 작성일2016/04/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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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16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
이민과 난민이라는 도전에 대한 응답인 자비의 복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는 칙서에서 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주님의 자비에 주의를 기울여 우리 자신이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뚜렷한 표지가 되도록 부름 받을 때가 있습니다”(칙서 「자비의 얼굴」, 3항). 실제로 하느님의 사랑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이르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버지의 품에 기꺼이 안긴 사람들이 스스로 팔을 벌려 다른 이들을 감싸는 팔이 되게 하여, 모든 이가 어린이처럼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인 인류 가정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렇듯이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자기 양떼와 함께하는 목자처럼 모든 이를 돌보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다치거나 지치거나 병든 양들을 특히 더 세심하게 돌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굽어보시면서 그들의 처지가 비참하면 할수록 당신의 자비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신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시대에 세계 모든 지역에서 이주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난민들과 고향을 떠나는 이들은 다른 개인과 공동체를 마주하여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에 도전이 되고 때로는 자신이 접하는 문화적 사회적 지평을 흔들어 놓습니다. 폭력과 빈곤의 희생자들은 자기의 고향을 떠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여정에서 인신매매범들의 비인간적 만행에 점점 더 자주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학대와 역경을 이겨낸다고 하여도 의심과 두려움이 깃든 상황을 마주해야 합니다. 결국 그들은, 모든 이의 권리와 의무를 존중하는 가운데 그들의 수용을 관리하고 장단기적 통합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투명하고 현실적인 규정의 부족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자비의 복음은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 타인의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게 합니다. 자비의 복음은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대신덕을 바탕으로 한 응답 방식을 알려줍니다. 이는 자비의 육체적 영적 활동으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성찰을 통하여 저는 2016년 세계 이민의 날 주제를 이민과 난민의 도전에 대한 자비의 복음의 응답으로 정하였습니다. 이주의 흐름은 이제 구조적인 현실이기에 계획을 세워 현재의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계획으로 이주의 원인, 이주에 따른 변화, 그리고 사회와 민족들의 변화를 일으키는 이주의 영향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국제 사회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용납할 수 없는 인도주의적 위기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의 비극적 사연들을 날마다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억압, 기아, 폭력, 난파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바라만 보고 무관심하게 침묵한다면 우리는 공범이 되고 맙니다.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단 한 사람이라도 목숨을 잃게 된다면 이는 언제나 비극입니다.
이민들은 가난, 기아, 착취에서 벗어나고,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하는 이 지구 자원의 불공정한 분배에서 벗어나 보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나서는 우리의 형제자매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눌 올바르고 떳떳한 행복을 얻고자 하지 않습니까?
인류의 역사에서 이주가 매우 활발해진 이 시점에서 정체성은 부차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이민들은 자신들의 인격을 이루는 일부 측면을 바꾸라는 강요를 받습니다. 또한 이민들도 자신들을 환대해 주는 이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변화를 강요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변화들을 참된 발전의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인간적, 사회적, 영적 성장의 기회로 삼아 하느님, 타인, 피조물과 올바로 맺은 관계 안에서 우리가 더욱 인간다운 인간이 되도록 해 주는 가치들을 존중하고 증진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사실, 이민과 난민의 존재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사회들에 심각한 도전이 됩니다. 이러한 사회들이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적절한 조절과 관리와 통제를 받지 못하면 그 앞날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통합으로 서로를 풍요롭게 하고 공동체에 긍정적인 길을 열어주며, 또한 차별, 인종 차별주의, 극단적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증이라는 위험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의 계시는 우리에게 이방인을 환대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환대를 통하여 하느님을 향한 문을 열고 다른 이들의 얼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보게 된다는 확신을 그 근거로 삼습니다. 많은 기관, 협회, 운동, 사회단체, 교구, 국내 기구, 국제기구는 만남과 나눔과 연대의 잔치의 놀라움과 기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묵시 3,20)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 정책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누려온 평온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여기는 일부 본당 공동체에서도 이민들의 수용과 한계에 대한 논의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직면한 교회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 말씀에서 영감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복음에서 주는 답은 자비입니다.
무엇보다도 자비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드러내신 선물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주신 자비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의 신비를 우리에게 열어준 희망에 대한 기쁜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렇게 하여 자비는 다른 이들과의 연대를 촉진하고 강화합니다. 이 연대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진”(로마 5,5 참조) 하느님께서 거저주시는 사랑에 맞갖은 응답입니다. 사실, 우리 저마다는 우리 이웃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 살든지 우리의 형제자매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꾸는 것과 편견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능력은 만남의 문화의 촉진에 본질적인 요소들입니다. 그러한 문화에서 우리는 줄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받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사실, 환대는 주고받기를 통하여 힘을 얻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민들의 지위가 합법적인지 불법적인지만을 따지지 말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인격적 존재로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민들의 존엄이 보장되면 그들은 모든 이의 행복과 진보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들에 대한 의무를 책임 있게 수행하고, 수용국의 물질적 정신적 유산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존중하며, 그 국가의 법을 준수하고, 그 나라에 필요한 도움을 줄 때에 그러합니다. 이주는 그 정치와 입법의 측면이나 경제적 영향, 또는 한 지역 안의 다양한 문화들의 단순한 공존의 문제로만 축소해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수호와 증진, 만남의 문화, 민족들의 일치를 도모하는 데에 서로 보완이 됩니다. 여기에서 자비의 복음이 인류 전체의 쇄신과 변화의 길에 힘과 용기를 줍니다.
교회는, 그 무엇보다도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이주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며 모든 인간의 존엄한 삶의 권리의 수호를 위하여 노력하는 모든 이의 편에 섭니다. 이 과정에는 처음부터 이민과 난민의 출신 국가에 대한 도움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는 연대, 협력, 국제적인 상호 의존, 지구 자원의 공평한 분배가 특히 이주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지역에서 좀 더 확실한 노력이 이루어지는 데에 핵심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 지역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자연 환경과 문화 환경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불균형을 종식시키기 위한 좀 더 확실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빈곤과 폭력과 박해에 따른 난민들의 탈출을 가능하다면 그 초기 단계부터 막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민들에게 해가 되는 근거 없는 두려움과 추측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론 또한 올바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건축과 농업과 어업, 그리고 그 밖의 시장에서 어른들과 어린이들을 강제 노역자로 매매하는 범죄 조직이 조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예살이에 대하여 그 누구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미성년자들이 여전히 어린이 병사로 군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장기 매매, 강제 구걸, 성적 착취에 희생되고 있습니까! 오늘날의 난민들은 이러한 끔찍한 범죄로부터 도망치며 그들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내민 손길에서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2코린 1,3)이신 주님의 얼굴을 알아챌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교회와 인간 공동체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이민과 난민 여러분! 자비의 복음의 뿌리에서, 다른 이들을 만나고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고 받아들이는 것과 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환대하는 것은 하느님을 직접 환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하느님 자비의 경험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희망과 기쁨을 빼앗기지 말기바랍니다! 저는 이민과 난민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와 이집트를 향한 고통스러운 이주를 체험하신 요셉 성인께 여러분을 맡겨드립니다. 또한 저는 이민들을 사목적으로 사회적으로 돌보는 데에 많은 힘과 시간과 자원을 투여하는 이들을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전구에 맡겨드립니다. 모든 이에게 저의 진심어린 교황 강복을 전해드립니다.
바티칸에서
2015년 9월 12일
동정 마리아 성명 기념일
프란치스코
<원문: Message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for the World Day of Migrants and Refugees 2016, “Migrants and Refugees Challenges Us. The Response of the Gospel of Mercy”, 2015.9.12.,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판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