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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가정성화주간 담화
  • 작성일2016/12/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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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가정성화주간(2016년 12월 30일-2017년 1월 5일) 담화문



가정과 기도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마태 2,21-23)

 

   성탄축제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교회는 가정성화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나자렛의 성가정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고 그대로 따릅니다. 그는 천사가 일러준 대로 아기 예수님과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가 살다가, 헤로데가 죽은 후 다시 천사의 말을 따라 이스라엘로 돌아와 나자렛에서 지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님의 아버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 예수님과 마리아를 위한 거처를 손수 마련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 가정을 위협하는 온갖 위험으로부터 가정을 수호하도록 그리스도인 부부와 그 가정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데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가정의 가장인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가정 안에 예수님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정 안에 머무실 때, 비로소 우리도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물면서 그분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주한 일상생활에서 잠시 물러나 주님 안에 머물면서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모든 일을 비추어주고 유지시켜주며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요한 6,68 참조).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과 대화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각자와 가정을 위해 꼭 필요한 몫입니다(루카 10,42 참조). 이러한 대화의 노력과 시간은, 가정이 겪는 갈등과 위기에 평화의 씨앗을 뿌려줍니다. 기도하는 남편은 자기 아내와도 대화할 것이며, 기도하는 아내 역시 남편에게 귀를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기도하는 부모는 자녀와도 대화하며, 기도하는 자녀는 부모에게 귀 기울일 줄 압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일들에 매달리게 하고, 우리의 일상은 늘 바쁘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싶지만 할일이 많아 늘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고 치부해 버립니다. 그렇지만 기도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요 생각의 문제입니다. 어떤 대상에 할애하는 시간은 우리가 그 값어치를 얼마로 매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사고가 시간의 활용을 결정짓는 것이지, 시간이 사고를 지배하진 않습니다. 더구나 기도가 없으면 우리의 모든 활동은 보잘 것 없는 열매를 맺을 뿐입니다(「복음의 기쁨」 259항 참조). 기도는 우리 신앙인이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의 요청에 귀 기울여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불가능도 가능케 하시는 분입니다(루카 1,37 참조).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도록 해줍니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그분도 함께 계십니다(마태 18,20 참조).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 머물며 그분께 헌신하는 가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비에 참여하면서 혼인생활을 통해 그 거룩함에 도달합니다(「세계주교대의원총회 최종보고서」(2015) 87항 참조). 왜냐하면 가정이 겪는 고통과 위기에서 십자가의 주님을 체험하는 가운데, 죽음을 뛰어넘는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기도는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희망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절대적인 도움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은, 자신이 가난한 자임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원의와 희망은 기도 속에서 더 깊어지고 더 강렬해집니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기도를 배웁니다. 기도하는 부부는 기도하는 가정을 만들고, 그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기도함으로써 그들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상을 남겨줍니다(「가정 공동체」 60항, 152항 참조).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그 가정은 주님 안에 머뭅니다. 기도하는 가족은 하느님을 알게 되고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되며, 더 큰 가정인 교회 구성원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기도 안에서 사랑과 용서를 배우며, 배려와 개방의 자세를 익힙니다. 그래서 자신의 바람과 원의에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을 향해 자신의 시간과 삶을 기꺼이 나누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는 인간의 내적 진실의 첫째가는 표현이요, 진정한 자유를 위한 첫째 조건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이 기도에 충실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와 더욱 일치하게 되며, 교회생활과 사명에 참여하게 됩니다(「가정 공동체」 62항 참조).  

 

   물론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또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하도록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가정 공동체」 150항 참조). 가정에서부터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배우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하느님의 뜻에 개방된 자세를 가지도록 하고, 그분의 선물과 부르심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특히 부모의 구체적인 모범과 생생한 증거는,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공동체적 여정은 주일 성찬례에 함께 참여하는 가운데 그 정점에 도달합니다(「가정 공동체」 57항 참조). 가정기도는 성체성사를 통해 더욱 활기를 얻습니다. 성체가 바로 그리스도인 혼인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교회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 가정은 사랑의 선물인 성체에서 일치의 참된 기초를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영성체는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지향하게 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류의 미래는 가정을 통해 나아갑니다(「가정 공동체」 65항 참조). 따라서 우리는 가정을 수호하기 위해 그 무엇보다도 가정기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정기도를 통해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고, 다른 이들에게 성가정의 행복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인 가정은 인간 사회의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세포로서, 스스로의 책임을 완수하게 하는 강력한 지지대가 됩니다(「가정 공동체」 62항 참조). 올해 가정성화주간을 보내면서 모든 그리스도교 가정이 아기 예수님을 위한 거처를 마련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 우리 가정에 머무르시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정은 생명력이 넘치고,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미래는 신앙의 빛으로 찬란하게 열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또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를 나자렛 성가정을 통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6년 12월 30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조환길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