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에 주교들에게 보내는 교황 서한
- 작성일2017/01/1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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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에 주교들에게 보내는 교황 서한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인 오늘,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해준 말이 여전히 우리 마음에 울려 퍼집니다.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다”(루카 2,10-11 참조). 이날을 맞이하여 저는 여러분에게 서한을 쓰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선포에 새롭게 귀를 기울이는 것, 곧 우리 백성 가운데에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에 다시금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새롭게 다짐하는 이 확신은 우리의 기쁨과 희망의 원천입니다. 이즈음 우리는 전례가 어떻게 우리를 성탄의 핵심으로 이끄는지. 곧 어떻게 우리를 성탄의 신비로 이끌어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근원에 서서히 이르도록 하는지를 체험합니다. 그 목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기쁨이 우리 백성들 가운데에서 자라나도록 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쁨을 보살피라는 요청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러한 기쁨을 빼앗기지 말자는 다짐을 새롭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현실이나 교회, 또는 우리 자신에게도 환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희망 없는 감상적인 슬픔에 잠기는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83항 참조).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성탄에는 또한 눈물도 따릅니다. 복음사가들은 현실을 더 그럴듯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그리려고 사실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에게 성탄은 당시의 도전과 불의 앞에서 등을 돌려 숨어드는 상상의 도피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하느님 아드님의 탄생을 고통스러운 비극에 휩싸인 사건으로 선포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를 매우 신랄하게 묘사합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마태 2,18). 이는 헤로데의 폭정과 무절제한 권력욕 앞에서 무고한 자기 자녀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어머니들의 통곡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누워 계시던] 구유를 바라보는 것은 또한 이러한 울음소리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귀 기울이는 것을 배우고, 우리 이웃의 고통, 특히 어린이들의 고통에 민감하고 열린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오늘날에도 역사의 이러한 비극적인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구유를 바라보면서도 그 구유를 우리 주변의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면 성탄 사건에서 그저 하나의 아름다운 동화를 지어내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따스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으나 사람이 되신 말씀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기쁜 소식의 창조적인 힘을 앗아가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구원의 기쁨을 수호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첫째 인물이 요셉 성인입니다. 순종과 충실의 모범인 요셉 성인은 [당시에] 자행되던 악랄한 범죄에 당면해서도 하느님의 목소리와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요셉 성인은 하느님 목소리를 알아듣고 하느님 뜻을 따를 수 있었기에 자신의 주변을 더 잘 이해하고 [눈앞에] 전개되는 일들을 현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목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것이 요구됩니다. 다시 말해서 귀를 막지 않고 하느님 목소리를 경청하여 우리 주변의 현실을 더 잘 파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요셉 성인을 모범으로 삼아 기쁨을 빼앗기지 말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우리 시대의 헤로데와 같은 인물로부터 이러한 기쁨을 지켜 내라는 요청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요셉 성인처럼 이러한 현실에 맞서 일어나 이를 장악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마태 2,20 참조). 바로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악용하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헤로데로부터 이러한 기쁨을 지켜 내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순수함은 불법 노동과 노예 노동의 무게, 매춘과 착취의 무게로 무너져 버립니다. 그 순수함은 전쟁과 강제 이주와 이에 파생되는 모든 손실의 무게로 파괴됩니다. 우리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폭력 집단, 마피아, 죽음의 상인들의 손아귀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은 어린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악용하여 착취할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오늘날 7천 5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위기 상황과 만성적인 위험으로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2015년 성매매 피해자의 68%가 어린이였습니다. 또한 조국을 떠나 살아야만 하는 어린이들 가운데 3분의 1은 강제 이주 때문에 그리되었습니다. 5세 이전에 사망하는 어린이들의 거의 절반이 영양실조로 그리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2016년 아동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어린이들이 1억 5천만 명에 이르렀고, 그 대부분은 노예살이의 처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제 연합 아동 기금(UNICEF)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인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2030년에는 1억 6천 7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극빈 상태에서 살고, 2016년부터 2030년까지는 5세 이하의 어린이 6천 9백만 명이 사망하게 되며, 6천만 명의 어린이들이 초등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린이들의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를 듣습니다. 또한 우리의 어머니인 교회의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를 듣습니다. 교회는 교회의 가장 어린 자녀들에게 가해진 고통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이 저지른 죄를 알기에 울고 있습니다. 바로 성직자들에게 성추행을 당한 미성년자들의 아픔과 사연과 고통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죄입니다. 이 어린이들을 돌볼 책임이 있는 이들이 그들의 존엄을 짓밟아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를 깊이 반성하며 용서를 청합니다.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에 함께하며 우리의 죄에 대하여 통곡합니다. 벌어진 일에 대한 죄, 도움을 주지 않은 죄, 기만하고 부인한 죄, 권력을 남용한 죄에 대하여 통곡합니다. 또한 교회는 교회 구성원이 저지른 이러한 죄에 대하여 비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청합니다. 오늘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을 기념하며 저는 이러한 악랄한 일들이 우리 가운데에서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노력을 더욱 기울일 것을 촉구합니다. 이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촉진하고 우리 어린이들의 생명을 최대한 수호하는 데에 필요한 용기를 내어 그러한 범죄가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합시다. 이 문제에 관하여 무관용의 원칙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지키도록 합시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우리가 현실을 무시하거나 마치 현실이 없는 듯이 처신하며 현실을 벗어나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요셉 성인이 받은 것과 같은 소명, 곧 인간 생명, 특히 우리 시대의 고귀하고 무고한 아이들의 생명을 받아들이고 보호하라는 소명에서 생겨납니다. 성탄은 우리가 생명을 수호하고 그 생명이 태어나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하는 때입니다. 성탄은 우리가 용감한 목자로 거듭날 것을 요청하는 때입니다. 이러한 용기는 우리가 오늘날 많은 어린이들이 놓여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여건을 마련해 주도록 노력할 힘을 북돋워 줍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하느님 자녀인 어린이들의 존엄을 존중하고 무엇보다도 수호하게 됩니다. 어린이들이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도 기쁨을 빼앗기지 말고, 지키며, 증진시키도록 합시다. 요셉 성인과 같은 아버지로서의 충실로 온유하신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손길에 따라 이를 실천하여 우리 마음이 완고하여지지 않도록 합시다. 형제애를 담아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원문: Letter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to Bishops on the Feast of the Holy Innocents, 2016.12.28.,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판도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