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 2017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 작성일2017/06/0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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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 이 나라 이 땅에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게 하소서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남북 분단 72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전범 국가로서의 책임 때문에 분단의 멍에를 받아들여야 했던 독일은 과거의 상처를 딛고 통일국가로서의 위상을 떨치며 유럽연합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없이, 아니 오히려 전쟁의 피해자로서 식민지배 상태에서 원치 않는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우리는 아직도 대결과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분단의 직접적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세력다툼 속에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우리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져 왔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격동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건국 이래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시위가 이어졌고, 결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들이 있었지만 큰 불상사 없이 보궐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여 안정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외신들에서는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에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지도자를 국민적 저항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권력 내부의 비정상적인 상황들이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준 것도 사실입니다. 비정상적 분단구조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은 제각각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사회적 양극화를 비롯해 환경, 인권, 종교, 그리고 최근에 두드러지게 대두되는 테러리즘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단순한 분단이 아니라 휴전선을 마주 대고 총부리를 겨누며 극도의 위기감 속에 정전체제를 유지한 체 64년이라는 긴 시간을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정전체제 속에 각종 위협과 도발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세계적으로 이미 사라진 냉전논리가 우리 사회 전반을 물들이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정상적 모습이 남과 북 모두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 신앙의 핵심인 사랑의 계명이 북한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을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저주와 증오의 대상으로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또한 사랑의 실천을 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매도하거나 심지어 성직자들에게도 ‘종북’ 딱지를 스스럼없이 붙이기도 합니다. 냉전논리가 신앙에 우선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이념의 우상화에 깊이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악에 대항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나 스스로 악해지는 것입니다. 악은 선으로 극복해나가야 합니다(마태 5,44 참조). 평화체제로의 전환 정전체제에서 비롯된 냉전 구도가 사회,정치,경제,문화,종교 등에 영향을 주면서 많은 폐단을 낳고 있습니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냉전논리를 악용하기도 하고, 안보위기를 부추기며 온갖 적폐들을 양산하기도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검열을 강화하고, 그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너무도 쉽게 적으로 규정하여 매도하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긴 냉전의 시간이 공동체와 개인의 삶을 병들게 만들었고, 짙은 어둠 속에서 우리 미래는 더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새로운 정부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데 힘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합니다. 확실한 안보는 평화가 항구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첨단무기나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하여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는 세상의 불안한 평화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주님의 평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일컫는 것입니다(요한 14,27 참조). 불완전한 정전체제 속에서 한반도는 늘 긴장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최근 북한의 핵과 미사일, 그리고 남한의 사드배치와 관련된 논쟁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 전쟁위기를 더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치열한 설전과 무력시위가 자칫 큰 충돌로 이어져 우리 삶의 터전에 큰 재앙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평화로 없어질 것은 아무 것도 없으나, 전쟁으로는 모든 것이 멸망할 것이다.”라는 교황 비오 12세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삶을 위하여, 나아가 자라나는 우리 미래세대를 위하여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체험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국민적 열망이 참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를 공멸로 밀어 넣는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전쟁종식을 선포하고,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통한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갈 때, 경제적 동반성장과 더불어 통일의 그날도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전해주신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4).” 평화로 향한 길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가운데 새 정부가 출범하였습니다. 소통과 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출범한 새 정부가 국민과의 활발한 소통을 바탕으로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참된 통합을 이룰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그리고 참 평화를 이루기 위한 외교적인 노력과 더불어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합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운 혈육이라 하더라도 만남이 없으면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고, 남남이라 하더라도 자주 만나면 혈육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남과 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적으로 종교와 민간차원에서 남과 북의 활발한 만남을 통해 서로가 한 형제임을 확인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을 당부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평화의 일꾼으로 불림 받은(마태 5,9 참조) 교우 여러분! 평화의 여정은 기도와 함께 이루어가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평화에 대한 간절함을 바탕으로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해봐야 소용없다는 냉소적인 생각은 무서운 유혹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에게는 불가능이란 없습니다(루카 1,37 참조). 인내와 용기를 갖고 기도 운동에 동참해주시길 청합니다. 매일 저녁 9시 어디에서든 잠시 시간을 내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참된 평화와 나아가 통일을 위해 주모경을 함께 봉헌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간절히 기도하시는 주님의 뜻을 기억하며 2016년 춘계 주교회의에서는 각 본당에 ‘민족화해분과’를 설치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화해와 일치, 평화와 통일이라는 시대적 소명은 분단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평화운동을 각 본당 단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야겠습니다. 냉전논리에 젖어 돌처럼 굳은 마음을 살처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에제 36,26 참조) 각종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남북 교류협력에 교회가 선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재원 마련에도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올해는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신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 목동을 통해 전해주신 성모님의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평화와 구원을 위해 회개하고 묵주기도를 봉헌하라는 말씀은 분단과 갈등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을 모시고 평화가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한반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17) 2017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