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성탄 메시지
- 작성일2020/03/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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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성탄 메시지]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기쁨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믿음의 기초이신 하느님’이라는 주제로 “선교의 해”를 시작하는 때에,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성탄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그 사실에 기뻐하는 축제의 때입니다. 그렇기에 그 축제를 참으로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신 ‘임마누엘’을 체험할 때 참다운 성탄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요한 1,14)라고 고백하는 성경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로만 머물러 있다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내가 만날 수 없다면, 우리가 성탄이라 부르는 이 기쁜 날은 그저 세상에 태어나는 수많은 아기 중에 한 아기의 생일에 불과 할 뿐 어찌 성탄이라 부르겠습니까?
우리 믿음을 전하는 ‘선교’를 위해서라도 그 믿음의 기초이신 하느님을 내가 먼저 만나야 합니다.
세상 많은 곳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기적’이라는 이름의 신기한 현상으로 유혹하는가 하면, ‘영적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신비한 황홀체험을 부추기며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권유합니다.
또한 혼자만의 고고한 은둔으로 이끌기도 하고 세상사에 대한 무관심이나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에 하느님과의 만남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재물과 번영을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인한 축복의 증거로 제시하고, 고난과 시련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증표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성탄을 맞아 다시 한 번 구원의 역사를 되뇌어 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심을 기념하는 이 때에, 그 하느님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었던가를 말입니다.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신 아기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사람들은 목자들과 동방의 박사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고 있었고 그 밤에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들은 유다인이었고, 당연히 유다인이면 누구나 행하는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하고 순례기간 중에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성전에 머무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에 아기 예수님을 만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듣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뵌 것은 그들이 목자로서 양을 돌보는 본래의 일을 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루가 2,8-20).
동방의 박사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늘을 관측하는 본연의 연구에 몰두해 있을 때,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깨닫고(마태 2,2), 먼 길을 떠나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늘 성전에 머무르며 기도하던 시메온과 한나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가던 본연의 일에 성실했을 때,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립니다(루카 2,25-39)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중에(요한 1,29-39) 그리고 세례자로서 세례를 주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고(마태 3,13-17),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일상 속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중에 예수님을 만납니다(마태 4,18-22).
이 모든 것이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 우리가 맞닥뜨리는 일상의 상황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기적을 찾아 헤매거나 황홀한 체험 속으로 도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사에 무관심해야 하거나 세상과 단절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로 인해 따르는 고난과 시련이 있다 해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고난과 시련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때가 되면 하느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만난 때는, 민족이 번성하여 나라를 세우고 떵떵 소리치며 살 때가 아니라 이집트 민족 아래 노예로 살며 고통 중에 아우성 칠 때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실은 고난과 시련보다도 재물과 번영을 경계해야 합니다.
재물이 가난한 이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부자의 탐욕으로 이어질 때, 번영이 모두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버릴 때, 하느님의 손길은 따사로운 구원의 손길이 아닌 매서운 회초리가 되었음을 구원의 역사 안에서 배워야 합니다.
경제가 제일의 화두가 되어버린 요즘, 그 이름 아래 잃어버린 것이 없는지 돌아봅시다. 오로지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 정말로 잘 사는 삶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를 말입니다.
고 물가 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민 경제에 밀어닥친 한파는 물러갈 줄 모릅니다. 어려운 살림살이를 반영하듯이 가계 빚이 늘어나고 생계형 범죄가 증가하고 인생 한 방을 위한 로또 열풍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위대하고 화려한 것만 찾는 시선에 초라한 구유에 아기 예수님으로 다가오신 하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은 초라한 구유에 사람이 되어 누워계십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이에게 아기 예수님은 다가오십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현실이 힘겨울 때 한 번 더 힘을 내자고 당부드립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며 내 주위를 돌아봅시다.
그 가운데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이 계십니다.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오늘의 이 성탄이 여러분 모두에게 따뜻한 희망과 기쁨이 되기를 기도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