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부활 메시지
- 작성일2020/03/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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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부활 메시지]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7)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허무함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부활은 삶이 절망에 이를지라도 그 절망이 끝이 아님을, 그 절망 너머에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망의 근원이 하느님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부활은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바꾸어 버린 사건입니다.
성경은 안식일 다음 날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존경하며 따랐던 예수님을 죽음과 함께 떠나보내고 슬픔을 닦고자 향유를 들고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시신의 주인과 쌓아온 지나간 추억을 나눌 수는 있지만 그와 함께 하는 더 이상의 미래는 담지 못하는 닫혀 있는 무덤, 그곳은 ‘절망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그 무덤이 열려 있습니다.
‘닫혀 있는’ 무덤이 아니라 ‘열려 있는’ 무덤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흰 옷의 젊은이가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마르 16,6)
무덤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있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통해 절망으로 들어갔던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전하여 줍니다. 그분은 죽음에서 되살아나셨다고, 그래서 닫힌 무덤 속에 계시지 않다고, 보라고, 그분의 시신을 모셨던 무덤이 열려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절망 속에서 머무르지 않는 그분이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이십니다.
희망은 절망 속에 갇힐 수 없는 법입니다. 부활은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희망은 때로는 절망의 틈새에 갇히기도 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수난과 죽음을 거쳐 무덤에 머무르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절망의 늪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절망의 늪을 통과하여 나타납니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닫혔던 무덤이 다시 열린 것처럼 말입니다. 만일 희망이 절망 속에 영원히 갇혀버린다면, 그것은 거짓 희망일 뿐입니다. 참된 희망은 어떠한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빛입니다.
우리는 부활성야의 예식에서, 어두운 밤에 촛불을 밝혀 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심을 고백합니다. 세례 받을 때 받아들었던 촛불도 떠올려 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빛으로 살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니,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을 좇아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밝혀 들은 촛불이 속삭이듯이, 우리는 바람이 불면 곧 꺼질 듯한 나약한 인간이기에 지상에 살고 있는 나약한 인간 조건을 하나도 외면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울고 웃으며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손에 나약하더라도 분명히 빛을 밝히는 촛불 한 자루가 들려 있듯이, 울고 웃더라도 그리스도의 빛을 우리의 삶 안에 밝히고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참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어섰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갈수록 각박하게 느껴집니다. 물가는 오르고, 자녀들 교육비는 등을 짓누르고, 자영업자들은 열심히 일해보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고, 실업자에게 일자리 찾기는 너무 힘듭니다. 빈익빈부익부의 사회양극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못살겠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모습을 볼 때, 사목자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삶이 비틀거린다 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시 중심을 잡으면 됩니다.
아니, 넘어져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닫혀 있는 무덤이 열리고 죽었던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절망의 틈새를 헤치고 희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십자가의 슬픔 뒤에 부활의 기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를 거쳐 마침내 부활시기에 이른 것처럼 슬픔과 절망 뒤에 기쁨과 희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희망과 기쁨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덤을 열어젖히고 갈릴래아로 가야합니다.
천사는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7)
갈릴래아,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먹고 뒹굴며, 삶의 체취를 남기셨던 곳, 당신과 제자들의 삶의 자리였던 곳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이루어질 참된 기쁨의 만남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갈릴래아, 그곳이 바로 우리가 부활한 주님을 만나는 자리요, 우리의 삶이 부활하는 자리입니다. 주님을 만난다고 일과 사람을 피해 심산유곡의 피정센터에 내내 머무를 필요는 없습니다. 부활한 주님과의 만남은 우리들 모두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 가정, 직장 그리고 이웃 공동체는 부활한 주님을 만나는 삶의 현장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희망을 갖고 돌아가는 삶의 자리 갈릴래아,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여러분에게 전해진 희망의 빛으로 주위를 밝히십시오.
아울러, 곧 이루어질 선거에 참가하여 올바른 선택을 권고합니다.
감정과 편견으로 인한 선택은 늘 국민들에게 아픔이었음을 기억하고, 과거에 대한 판단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바른 전망을 가지고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봉사할 보다 나은 지도자들을 일꾼들로 선출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2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김지석 야고보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