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성탄 메시지
- 작성일2020/03/1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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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성탄 메시지]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0-1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탄의 기쁨과 은총이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천여 년 전의 한 아이의 탄생을 오늘 우리는 온 인류와 함께 기뻐합니다.
한 아이의 탄생일이 단순한 생일을 넘어 성탄인 이유는 이 아이가 자라나서 온 인류에게 하느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가 바로‘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곧‘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머무르신 하느님이 바로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런데 임마누엘이 이루어질 때,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실 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신앙의 신비가 발견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어 오실 때, 구름을 타고 번쩍이는 빛으로 뒤덮인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하다못해 백마를 타고 군대를 호령하는 왕의 모습으로 당신을 드러내지도 않으십니다.
조용한 시골 동네에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서 보다 철부지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께서는 처음, 당신께서 사람이 되어 오실 때부터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강함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약함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의 모습, 도움 없이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시기에 처음부터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생명으로 탄생하는 아기는 그 부모에게 신비롭고 희망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첫아기는 더욱 그러합니다. 부모에게 하느님의 위로가 전해집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1,30-31)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21)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나약한 아기의 모습을 택하신 하느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의 순종과 아버지 요셉의 협력으로 세상에 오십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보살핌 안에서 자라납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은 그렇게 처음부터 부모의 협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자라나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에 알려주고,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놓으십니다. 그리하여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세상에 오신 하느님은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도움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는 존재인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하느님으로부터 세상에 던져진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죽음조차도 이겨내는 참된 희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아기’라는 존재는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성경은 이 신앙의 신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0-11)
올해 우리 교구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이라는 주제로 ‘청소년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탄이 기념하는 한 아기의 탄생 이야기는 이 ‘희망’이라는 주제와 너무도 잘 어울리며, 희망이 무엇인지를 잘 표현해 줍니다.
아기는 나약합니다.
아기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기는 도움을 통하여 자라나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기는 부모로 하여금 모든 것을 감내하게 하는 힘입니다.
희망도 그러합니다.
나약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도움을 통해 자라나야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감내하게 하는 힘입니다.
지금은 비록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지만’, 그 희망을 어떻게 가꾸어가는가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지난주에는 대선이 이루어졌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 결과가 기쁨이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절망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도무지 그 결과에 관심 없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