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소개

2014년 부활 메시지
  • 작성일2020/03/12 14:17
  • 조회 1,072
[2014 부활 메시지]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마태 28,7)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얼마 전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뉴스로 들었습니다  
처음 뉴스를 접하고는 젊은 어머니와 어린 두 딸의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60대 어머니와 30대 젊은 두
의 이야기였습니다
. 

처음에는 경제활동이 가능한 사람이 셋이나 되는데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들었었지만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 내용을 알게 될수록 가슴이 먹먹해져 오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

 

두 딸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암투병 때의 병원비와 생활고에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이후 큰딸은 고혈압과 당뇨
라는 지병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고 오히려 병원비를 지속적으로 지출해야만 하는 상태였고 작은 딸은 만화가의 꿈마저 접고 아르바이트를 하였지만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에 지쳐 결국 아르바이트마저 그만둡니다
.

설상가상으로 가족의 유일한 경제활동으로 식당일을 하던 어머니마저 얼마 전에 팔이 부러져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방값마저 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세 모녀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뉴스는 전해주었습니다.

세 모녀가 남기고 간 70만원이 들어있던 봉투 위에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것은 그녀들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언론들은 앞 다투어 세 모녀의 자살 사건을 전하였고 정부와 국회는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며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에도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라는 참으로 안타깝고도 비극적인 상황들은 끊이지 않고 뉴스를 장식합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에서 부동의 1위로 현재는 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1년에 15천여명이, 하루에 42~45명이 자살로 죽음에 이릅니다.

지난 41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3년 자살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의 자살시도율도 우리나라의 종교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이기는 하지만 3.5%(개신교 16.0%, 불교 9.4%, 무종교 65.5%)나 되었습니다.

 

숫자로 나열된 메마른 통계수치들이지만, 사실은 참으로 놀랍고도 비극적인 수치들입니다. 이 수치 하나하나에, 세 모녀 자살 사건과 같은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상황들을 담아 놓는다면 그 안타까움과 슬픔은 더욱 절실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고로 인한 절망으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행복한 개인들도 우리들 안에는 존재하겠지만, 절망으로 끝나버리는 불행한 개인들이 이렇게나 많다면 이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속속들이 그 사연을 전하는 유명인에서부터 조그만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잊혀져버리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살을 통한 죽음들을 바라볼 때, 우리사회에서 자살은 마치 문제 해결의 수단 중에 하나요, 선택의 문제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저는 교구민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너무나 분명하게도, ‘자살은 선택이 아니라 포기입니다.

자살은 개개인의 앞에 놓여 있는 선택 가능한 다양한 삶의 방법 중에 하나가 아니라 다만 삶의 포기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 자살은 내 삶의 포기일 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가족과 친지들에게까지 죄책감을 던져주고 희망을 빼앗아 남은 삶을 절망과 싸우도록 만듭니다.

 

그렇기에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 앞에 있는 놓여있는 생명은 살아내야 하는 것이지 포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라()’명령()’이 바로 생명(生命)’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그분께서 필요한 때에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그 때가 올 때까지 생명에 대하여 포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절망적이라는 상황들이 우리로 하여금 포기하도록 유혹합니다.

아무리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삶, 빛 한 점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자살의 유혹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희망을 간직하는 한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절망은 희망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방안에서 타오르는 작은 촛불 하나를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어둠이 짙어 지더라도 어둠이 촛불을 끌 수는 없습니다. 촛불이 꺼져 그 빛을 잃어버려야 비로소 어둠이 온 방안에 자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스스로 그 빛을 간직하는 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아주 작은, 그야말로 겨자씨 한 알만한 희망이라도 간직되어 있다면 절망은 나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빛이 어둠 속에 묻혀 있다 하더라도 어둠 스스로가 빛을 덮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다면 마침내 그 빛은 온 세상을 밝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집트의 노예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울부짖을지언정 포기하지 않았기에 탈출과 해방을 경험할 수 있었고, 바빌론 유배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날마다 눈물지을지언정 포기하지 않았기에 귀환과 회복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여정 속에서도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고 마침내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마태 28,7)

 

부활을 믿는 우리는 빛을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빛을 간직한 우리에게 자살이라는 절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들이 우리를 둘러싼다고 하여도 희망을 놓지 마십시오.
희망을 놓는 그 순간 절망적인 상황들은 절망이 되어버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그분이 그리고 그분의 부활이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교구설정 50주년을 준비하는 올해의 사목교서의 주제인 우리를 사랑으로 완성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주제로 우리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봅시다.

내 주변에 존재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울고 있는 세 모녀를 향해 우리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의 손길이 그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 줄 것입니다.

빛이 비추어지는 세상에 어둠의 절망은 자리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4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김지석 야고보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