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교구장 성탄메시지
- 작성일2020/03/1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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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원주 교구 교우 여러분들, 그리고 수도자, 사제 여러분!
또 다시 맞이하는 주님의 성탄축일을 맞이하여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주님이 태어나신지 2000여년이 훨씬 지났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빛이 필요하고, 평화가 절실합니다.
2000년이란 세월이 우리에겐 긴 시간이지만, 인류가 이 지상에 출현하고, 지구가 생성되고, 우주가 형성된 시간에 비교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는 어둠에서부터 아주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허다한 날을 굶주리며 수렵과 채취로 연명하다가 오늘날 지구의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그 분배는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노동의 노예로서의 삶에서부터 자유로운 시간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일요일만이 아니라 토요일도 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할 곳이 많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던 폭군들의 치하에서 민주주의 정치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을 위한 정치인들이 아쉬운 현실입니다.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수 없었던 여성들의 권리도 크게 신장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오히려 남성들이 불쌍하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역전의 세태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남녀평등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빛이 필요합니다. 죽음의 문화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경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실험으로 비롯해서 끊임없이 세계 곳곳에 전쟁의 위협과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좁은 한반도 이남 안에서도 동서가 분열되고, 좌우로 갈라져서 서로 자신만이 옳다고, 상대편을 서로 적폐라고 우기며 힘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의 자살율과 낙태시술 국가라는 통계적 수치가 우리나라의 생명 의식 수준과 문화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은 동물복제를 넘어 인간복제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하여 인간 생명이 희생되거나 실험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낙태죄에 관한 법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낙태는 분명 죄입니다. 인간은 임신 그 순간부터 한 인격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머니 태중에 있었을 때 그냥 살덩어리나 세포덩어리가 아니라 엄연한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나눔이 부족합니다. 곳곳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선포하시고, 또 교회의 사명으로 주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천국에서 완성되겠지만,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늘에서는 천사들과 성인들에 의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겠지만, 이 땅에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악의 세력인 사탄의 나라와 적대적입니다. 사탄의 나라가 물러가는 만큼 하느님 나라는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의 세력을 쫓아내야 합니다. 악의 세력은 바로 인간을 괴롭히는 것들입니다. 질병, 소외, 배고픔, 폭력 등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질병이 치유되고, 소외된 자가 친교를 맺고, 배고픈 사람이 배를 채우고, 불의와 불평등과 폭력이 사라지는 곳에 도래합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사건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느님처럼,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땅이 하늘에 오를 수 없기 때문에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어둠에 갇힌 백성에게 동방박사들을 인도하신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기 위해’오신 것입니다. 그 빛이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용기를 줍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의 표징입니다. 희망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기쁜 날일 수 있습니다. 가난하게 태어난 예수 때문에 이제 인간의 가난은 빈손이 아닙니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인간의 슬픔은 눈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억울한 희생자의 죽음은 더 이상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불의가 결코 희생된 억울한 죽음을 짓밟고 그 위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이신 그분이 그 희생된 죽음 한 복판에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은 가난한 자, 억울한 자, 희생된 모든 이에게 기쁨을 선포합니다. 세상의 진보를 믿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들, 어둠 속에서도 빛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희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선포합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의 탄생과 평화의 왕국을 예언하였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이사 11, 6-8). 시편 작가는 노래하였습니다.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께서는 그 길 위에 걸음을 내디디시리라.”(시편 85, 11-14)
기뻐합시다. 희망합시다. 성탄은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하느님 나라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성탄절에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조규만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