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소개

2020년 9월 18일 순교자현양미사 강론
  • 작성일2020/09/21 07:14
  • 조회 1,167
+ 찬미예수님,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순교자 현양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직도 극성이어서 오늘 이곳 배론 성당 곳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방역지침을 따라서 최대한 많은 신자들이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이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이런 시기의 순교자 현양은 우리가 순교자들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더 잘 성찰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지금은 어려운 시기입니다. 순교자들이 살던 시대만큼은 아니겠지만 신앙생활이 어려운 시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감염된 사람, 방역에 밤낮 수고하는 사람, 사회적 격리로 경제생활이 마비되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서로의 불신과 고소 고발 등 사회적 불안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행동이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마치 범죄자처럼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주로 개신교 신자들입니다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천주교나 개신교의 구별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의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신앙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그리스도 신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신앙인이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첫째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이웃을 사랑하며, 셋째로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 가지 사랑에서 가장 어려운 사랑은 바로 하느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느님 사랑은“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다해서’라는 말마디만 없다면 그런대로 하느님 사랑할 만합니다. 바로 순교자들은‘목숨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순교자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박해시대 신자들을 4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 순교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신앙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순교는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순교는 최상의 은총으로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최고 표현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우리나라는 230년 역사에서 100년간의 박해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에 8000명에서 1만 명의 순교자가 있었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103위 성인이나, 124위 복자들은 그분들의 기록이 분명히 전해지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둘째 부류는 순교하지는 못했지만, 신앙을 성실히 지켜나간 교우들입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그 대표적입니다. 신부님은 13년 간 사목활동을 훌륭하게 해 내셨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도 순교의 영광을 바랬습니다. 스승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보낸 두 번째 편지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저는 우리 부모들과 형제들을 따라갈 공훈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저의 신세는 참으로 딱합니다. 그리스도의 용사들의 그처럼 장렬한 전쟁에 저는 참여하지 못하였으니 말입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하느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그분이 한국교회를 위해 할 일이 많았던 까닭입니다. 순교자들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해야 했습니다. 그분의 그런 수고로 오늘날 우리 교회가 103위 성인들이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 5도에 펼쳐져 있는 127개 교우촌을 방문하며 5,936명을 찾아 고해성사를 주고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우리는 최양업 신부님 같은 분들을 땀의 순교자라고 말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순교의 영광을 얻지는 못했지만, 고난과 두려움 속에서 신앙을 굳굳하게 지켜나갔습니다. 그들의 후손인 우리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해주었습니다.

셋째는 배교자들입니다. 포도청이 408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35%가 순교를 하였고, 51%가 배교하였다고 전합니다. 그러니까 순교한 사람들보다 배교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끔찍한 고문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순교한 사람들 가운데에도 고문에 못 이겨 배교했다가 다시 자수해서 순교한 복자, 성인들이 많습니다. 35%가 순교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입니다. 배교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 다음 신앙생활을 이어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배교를 후회하고 다시 자수한 신자들도 있고, 배교를 마음 아파하며 숨어서 신앙생활을 이어 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배교 후 냉담하여 신앙을 아예 저버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네 번째 부류는 밀고자입니다. 배교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다른 신자들을 밀고한 사람들입니다. 1801년 신유대박해 때 최창현 회장을 밀고한 김여상이 있습니다. 김순성이라고도 합니다. 그는 최창현 회장만이 아니라, 많은 신자들을 고발했습니다. 1839년 자기의 아내의 석방을 위해 53명의 천주교 신자 명단을 주며 밀고했던 익명의 예비교우도 있습니다. 주문모 신부님과 많은 신자들을 고발했던 한영익이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밀고자들도 더 있을 것입니다. 하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도 예수님을 은전 30냥에 팔아넘긴 유다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이 코로나 시대에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중단했을 때 일입니다. 어떤 신자는 저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순교자들은 목숨을 걸고 미사에 참여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사를 중단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 그런가 하면 공동체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들에게 코로나가 극성인데 미사를 왜 중단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신자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려 죽어도 좋으니 미사에 참여하겠다는 할머니들도 있었고, 미사를 중단하니 참 편한데,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는데 다시 미사를 시작하니 마음이 불편하다는 신자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되면 천주교가 신천지교회나 사랑제일교회처럼 언론이나 국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될 것 아니냐는 걱정을 앞세우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깊이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판단하실 일입니다.

내년은 성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 됩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편지 덕분에 박해시대의 우리 순교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우촌을 두루 순회하는 중에 지독한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비참하고 궁핍한 처지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들을 도와줄 능력이 도무지 없는 저의 초라한 꼴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들은 포악한 조정의 모진 학정 아래 온갖 종류의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얽히고 설켜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비참한 곤경에 빠져도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습니다. 동포로부터 오는 박해, 부모로부터 오는 박해, 배우자로부터 오는 박해뿐만 아니라, 친척들과 이웃들로부터도 박해를 받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험준한 산 속으로 들어가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초라한 움막을 짓고 2년이나 3년 동안만이라도 마음 놓고 편안히 살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자들이 사제를 보기 위해서나 미사 성체를 참여하려고 떼를 지어 한꺼번에 급히 몰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상 매우 엄격하게 다루지 않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명령을 위반하는 신자들에게 아무리 벌을 내려도 신자들은 이 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막무가내로 순명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한 공소에서 다른 공소로 가야 했습니다. 제가 지나가기로 예정되었던 길 근처에 사는 신자들이 와서 자기들 마을에 잠시 들러달라고 간절히 청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간청에 감동하여 소원을 들어주마고 약속했습니다. 그 마을에 도착하여 보니 그 근방에 사는 신자들이 모두 다 모여서 더할 수 없이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의 한 사람은 15리나 떨어진 곳에서 왔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그곳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기 집을 비워두고 아내와 열 살쯤 되는 아들을 데리고 집을 떠나 길도 없는 험한 산을 넘어서 저를 만나러 왔던 것입니다.”(일곱 번 째 편지에서)

박해시대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우리들과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고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제, 그리고 그 사제를 보기 위해,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관헌들에게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그러지 말라는 명령을 위반하며 몰려드는 신자들, 가난과 학정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누리는 신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신앙생활을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물려준 신앙의 모습이 200년 후에는 어떨까 염려됩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소수 신앙인들만 신앙을 지키는 것은 아닐까?

내년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이 됩니다. 이 기회를 맞이하여 우리 교구는 우리의 신앙을 쇄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울 예정입니다. 우리가 당면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름다운 산하와 더불어 신앙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모두 힘을 합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사랑에 목숨을 다해서 사랑한 순교자들의 신앙이 드높아 보이는 요즈음입니다. 성가 가사처럼 우리도 환난과 핍박 중에도 순교 믿음 지켜온 순교자들의 믿음을 본받아 형제를 사랑하고, 말과 행위로 이 믿음을 전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순교 복자들과 성인들이여! 저희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