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신년 메시지
- 작성일2020/12/3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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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원주 교구의 모든 교우 여러분, 그리고 수도자들과 사제 여러분들에게 새해를 맞이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와 건강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신축년(辛丑年) 한해를 고통스럽게 시작합니다. 코로나-19사태가 종식되지 않고, 더 성화를 부리기 시작한 까닭입니다. 힘겨운 경자년(庚子年) 한 해였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절대적 희망이신 하느님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사노라면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고, 비와 눈이 내리는 날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기쁜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슬픈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100 여년의 기나긴 박해의 시대도 극복해 냈습니다. 항상 어려움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도 바오로는‘시련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낸다.’(로마 5.3-4)고 했습니다. 희망합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경자년과 더불어 가고, 다가오는 신축년은 희망의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시다.
지난 한 해 ‘서간충비’보다 미세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가 아주 작은 일에 소홀할 때, 겪을 수 있는 위험을 충분히 체험하였습니다. 작은 것을 무시하지 않고, 작은 일에 성실할 때, 의외로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일찍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잘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 21. 23) 당뇨병으로 27세에 선종한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성 마리아 라파엘 아르나이즈 아 바론 수사님은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평범하고 일상적인 매일 매일의 삶이 가져다주는 작은 일들을 이용하자. 위대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 위대한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일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다만 (하느님) 그분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 그분을 생각하는 것이다. 위치, 장소, 일 등은 아무래도 좋고 상관이 없다. 하느님은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와 마찬가지로 감자 껍질을 벗기는 일로 나를 거룩하게 만드실 수 있다.”([어느 한 트라피스트 수도자의 묵상]에서)
이미 대림 첫 주일로 시작된 교회력은 새해를 희년(稀年)으로 맞이하였습니다. 착한 목자로 신앙에 충실하였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덕분입니다. 200년 전에 태어나신 신부님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겪는 어려움보다 훨씬 힘든 상황 속에서 사목활동을 하며 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분들의 삶을 돌이켜 보며 우리도 신앙으로 새롭게 이 시련을 이겨냅시다. 신축년은 소의 해입니다. 소는 근면의 상징입니다. 소의 모습을 생각하면, 사래 긴 밭을 묵묵히 경작하는 장면이 우선 떠오릅니다. 제 주인을 위해서는 호랑이와도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충직한 동물이라 했습니다. 요한 묵시록에 따르면, 천상 예배가 이루어지는 어좌 둘레에는 네 생물 중에는 사자와 독수리와 사람의 모습과 더불어 황소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4 복음사가 중에 루카 복음사가를 소의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소는 여러 가지로 좋은 모습의 상징입니다. 그 상징만큼 좋은 날들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의 해인만큼 올해의 사자성어로 九牛一毛(구우일모)’를 선택합니다. 아홉 마리 소가 지니고 있는 수많은 터럭 가운데 하나의 터럭을 의미합니다. 한강 백사장에 수많은 모래 중에 한 알의 모래와도 같이 아주 작은 존재라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그렇고, 우리 존재가 그렇습니다. 이 우주 속에서 지구는 수천억의 별들로 구성된 은하의 한 별입니다. 은하 역시 수천억의 은하들이 펼쳐져 있는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있는 우리의 존재는 더욱 미미하기 짝이 없습니다. 78억의 현 인류 속에‘구우일모’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잊지 않고 세어두시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 하나를 소홀히 여기시지 않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참새 두 마리보다 훨씬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생활성가 가사처럼,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보잘것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한편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큰 사랑과 많은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는‘九牛一毛(구우일모)’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애인으로, 암과 투쟁하며 살았던 고(故) 장영희 마리아 교수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첫 번째로 감사했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기적을 꼽으라고 숙제를 받은 어느 주일학교 어린이는 자신이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이 볼 수 있다는 것, 자신이 들을 수 있다는 것, 걸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기적이고,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라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우리는 그동안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자유롭고 쉽게 대화할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여행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 소중하고 고마웠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도 바오로께서 일찍이 당부했던 말씀을 거듭 강조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 테살 5,16-18) 미사 감사송은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라고 노래합니다. 또한 우리의 감사와 찬미가 아버지께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지만, 우리의 구원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감사하며 사는 신축년 한해이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전구로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와 건강을 빕니다.
천주교 원주교구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