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우리를 구원하는 희망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로마 8, 24)
- 작성일 : 2020-03-12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원주교구 교우 여러분, 수도자, 그리고 사제 여러분!
지난 해 우리는 ‘믿음의 해’를 보냈습니다. 저는 올해를 ‘희망의 해’로 선포합니다. ‘희망’은 ‘믿음’과 ‘사랑’과 더불어 하느님을 향한 삼덕(三德)을 이룹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희망을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며, 우리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성령의 은총의 도움으로, 우리의 행복인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 향주덕”(1817항)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였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고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왜 성당에 다니냐고 물으면, 예전에 할머님들은 ‘천당’ 가기 위해서라고 답을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여러 가지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 ‘천국’, ‘천당’, ‘영원한 생명’, ‘영생’ 등입니다. 모두 같은 뜻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하느님 나라’의 또 다른 표현인 ‘하느님 대전’을 희망하며 신자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셨습니다. “부디 서러워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 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옥중서한]에서) 최양업 신부님은 ‘사향가(思鄕歌)’를 지어 신자들이 우리의 본 고향인 ‘하느님 나라’를 그리워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외친 첫 마디는 바로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설교의 핵심이었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이 희망을 의식주나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찾도록 가르치셨습니다(마태 6,33 참조). 예수님은 이 희망의 기쁨을 마치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기쁨에 비유하셨습니다(마태 13,44 참조). 무엇보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 4,43) 그 뿐만 아니라, 12사도들에게도 선교 사명으로 주셨습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마태 10,7) 72명의 제자들에게도 같은 사명을 주셨습니다(루카 10,9 참조). 오늘날 우리 교회의 사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 라는 희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어느 추기경님이 발언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이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위해 고통을 받아내야 합니다. 바로 이 일이 전부입니다.”(토마섹 추기경, 1985년 세계주교대위원회 임시 총회 연설에서)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마태 6,9-13; 루카 11,1-4)가 얼마나 훌륭한 기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기도’는 바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기도이며,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려주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빛나는 곳입니다. ‘하늘’에서는 천사들과 성인들에 의해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 땅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느님이 영광을 받도록 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땅에서 하루하루 양식이 모두에게 나누어지고, 우리의 죄가 용서되듯이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고, 날마다 수 없이 다가오는 많은 유혹에 빠지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닥쳐오는 악에서 보호된다면, 바로 거기에서부터 ‘하느님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악의 세력인 ‘사탄의 나라’가 한걸음 물러가는 만큼, ‘하느님 나라’가 한걸음 다가온다는 것(마태 12,28 참조)도 가르쳐 줍니다. 주님은 이 땅의 ‘하느님 나라’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희망을 ‘종말론’이라는 교리를 통해 표현합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종말’을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것으로 변질시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희망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한 세상’을 이야기하는 교리라고 하면,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한 세상을 보시기에 좋게 완성하신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미래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들의 부활’, ‘심판’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미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희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신비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미사경문] 중에서) 무엇보다 믿기 어려운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주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되고, 우리는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라’(1코린 15,14-19)했습니다. 우리가 불쌍한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희망하며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사도신경])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개인적 차원에서 희망으로서의 ‘죽음’, ‘심판’, ‘천당’, ‘지옥’, 곧 사말(四末)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죽음’을 넘어서 희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옳게 판단하시며,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떠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천당’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과 결별을 뜻하는 ‘지옥’은 모든 것을 잃지 않도록, 하느님을 잃지 않도록 우리에게 당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희망한다는 것을 바로 ‘하느님’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우리의 희망을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창조의 마지막입니다. 하느님을 얻는 것이 천국이요, 하느님을 잃는 것이 지옥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심사하는 것이 심판이요, 하느님이 우리를 정화하는 것이 연옥입니다.”(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의 [종말론]에서) 하느님 없이 ‘하느님 나라’는 없습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요, 절대적 희망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베네딕토 교황님은 이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절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위대하고 참된 희망은 오로지 하느님, 우리를 ‘끝까지’ ‘다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사랑하시는 하느님 뿐이십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물론 하느님이 우리의 마지막이요, 절대적인 희망이지만, 우리에게는 이 참된 희망 이외에 우리들의 삶을 조금씩 조금씩 진전시키는 희망들이 필요합니다. 부부들이 백년해로하고, 자녀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그래서 손자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희망, 세상 끝 날까지 그래도 신뢰할 수 있는 교회에 대한 희망, 한반도의 평화와 대한민국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성장이라는 희망 등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희망의 토대는 여전히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원주교구 교우 여러분! 그리고 수도자와 사제 여러분!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희망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합시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악의 세력을 쫓아냅시다. 이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하느님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믿음이요, 자신을 참고 견디는 것은 희망이며, 다른 이들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사랑이다.’(아델 베스타프로스)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참고 기다립시다. 하느님을, 자신을 그리고 이웃을.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를 위해 수고하시는 여러분들에게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어 평화와 기쁨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울러 성모님의 도우심을 기도합니다.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주교 조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