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 총회 의안집: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
- 작성일2018/09/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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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 총회 의안집 2018.10.3-28.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
교황 성하께서는 2016년 10월 6일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 총회의 주제로 선포하셨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 총회 예비 문서는 곧바로 그 초안 작업이 시작되었고, 교황 성하께서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서한”과 함께, 2017년 1월 13일에 발표되었다. 예비 문서에는 주로 주교회의들과 동방 가톨릭 교회 시노드, 그 밖의 교회 기구들에 보내는 설문이 첨부되었다. 설문은 대상 모두를 위한 15개의 문항들과 각 지역별 3개의 특정 질문들, ‘가장 훌륭한 실천’ 활동 세 가지를 공유하여 달라는 요청으로 구성되었다. 2017년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세계 젊은이들의 상황에 관한 국제 세미나’에는 많은 전문가와 젊은이들이 참여하여 학문적 견지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도록 도움을 주었다. 교회 전체의 참여를 목표로 한 이러한 계획들 외에도,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시초부터 바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수차례의 기회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다국어로 된 온라인 설문이 마련되고 여러 주교회의가 이를 번역하였으며 십만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이에 답변하였다. 놀랄 만큼 풍성한 자료들이 수집될 수 있었다. 이어 2018년 3월 19-24일 로마에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 총회 준비 모임’을 개최하고, 3월 2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폐막하며 그 최종 문서를 교황 성하께 제출하였다. 준비 모임에는 오대주에서 모인 3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참석하였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15,0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참여하였다. 예외 없이 모든 젊은이에게 귀 기울이고자 하는 교회의 바람을 표현한 이 행사에 커다란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러한 주요 원천 네 곳에서 취합된 자료는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에 직접 보내준 몇 가지 ‘의견들’이 더해져- 매우 광범한 것임에 분명했다. 여러 전문가의 도움으로 이 자료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세밀히 종합한 ‘의안집’이 집대성되었고, 교황 성하께서 함께하신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의 제14차 평의회’에서 이를 승인하였다. 의안집의 결론에서는 성덕을 주제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 총회가 성덕을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9항)로 인식하고 이를 현대의 모든 젊은이에게 전해 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바티칸에서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서문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목적 1. 젊은이들을 돌보는 것은 교회의 선택적 임무가 아니라 교회의 소명과 사명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곧 이것은 다가오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다룰 구체적인 분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던 바로 그대로(루카 24,13-35 참조), 교회 또한 예외 없이 모든 젊은이와 동행하여 사랑의 기쁨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요청받는다. 젊은이들의 존재와 그들이 하는 말은 교회의 모습을 젊게 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폐막 메시지 가운데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1965년 12월 8일)와 젊은이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2018년 10월 3-28일)는 같은 주제로 연결된다. 준비 모임을 소개하면서 교황 성하께서는 그 주제를 이렇게 강조하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젊은이들에게 보낸 아름다운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 이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성령께 마음을 열어 교회의 모습을 젊게 하고자 새로운 길을 찾고, 용기와 신뢰로 그 여정을 함께 나아가라는 초대입니다.” 이처럼 ‘시대 변화’ 안에서 우리는 젊은이들의 성소 식별 여정에 동행하는 것이다. 식별 방법 2. 우리는 식별을 통해 삶의 길과 방식과 근본 태도 그리고 활동 방법도 인식한다. 이는 함께 걸어가는 길이며, 그 길을 통해 우리는 제자의 눈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문화의 역동성을 바라본다. 식별을 통해 우리는 인식에 이르고 참다운 영적 순종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럼으로써 새로움에 마음을 열고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으며, 새로운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진부한 것으로 환원하려는 유혹에 저항하게 된다. 식별은 참으로 영적인 태도이다. 식별은 성령께 순종하는 것이기에 경청이며, 무엇보다도 우리 행동의 원동력이 되고 언제나 교회에 맡겨진 유일하고 단일한 사명에 새롭게 충실할 수 있는 역량이 된다. 따라서 식별은 하나의 사목 도구가 되어, 오늘날 젊은이들이 따를 수 있는 훌륭한 삶의 길을 구별하고 그 사명을 위해 기존의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르도록 해 주는 우리 여정의 결실인 지침과 제안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조성되는 길은 우리 마음이 닫혀 있지 않고 열리게 해 주며, 정해진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제기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또한 대안을 바라보고 기회를 찾으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이러한 전망에서 분명한 것은, 식별 과정을 위한 올바른 자세를 지니고 오는 10월에 있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 구성 3. 의안집은 준비 모임 과정에서 취합된 도움들을 하나의 문서로 모으고 종합하였으며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각 부분은 「복음의 기쁨」 51항에서 설명하는 식별 과정, 곧 인식하기, 해석하기, 선택하기의 구조를 명확히 반영한다. 인식하기. 첫 번째 단계는 보고 듣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환경과 맥락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실제 상황에 대한 관심을 요구한다. 또한 겸손과 친밀함과 공감을 요구한다. 젊은이들과 일치를 이루고 그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파악하기 위함이다(사목 헌장 1항 참조).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교회 공동체의 체험에 배려와 관심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한다. 이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구체적 현실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사회 과학이 중대한 기여를 한다는 점은 활용한 원천들에서 잘 드러나지만, 반드시 신앙과 교회 체험에 비추어 이를 살펴보고 재해석해야 할 것이다. 선택하기. 성소의 빛으로 바라보아야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나아가라고 부르시는 구체적인 단계가 무엇인지, 그 부르심에 응답하려면 어떤 방향을 따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식별의 이 세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사목적 접근법과 실천들을 검토하고, 우리의 목표 달성을 더욱 가능하게 해 주는 선택을 하도록 내적 자유를 북돋워야 한다. 또한 덜 효율적인 것들은 폐기해야 한다. 이는 기능적 평가와 비판적 분석으로, 다른 때나 상황에는 걸맞은 접근법일 수 있는 가치나 의미에 관한 판단은 아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고착화의 위험이 있는 교회 관행과 사목 관행에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부분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제1부 4. “실재는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복음의 기쁨」, 231-233항 참조). 제1부에서 우리는 실생활 안의 젊은이들 삶과 그들을 향한 교회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귀담아듣도록 초대받는다. 이는 자료를 취합하고 사회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생겨나는 도전과 기회에 신앙의 빛으로 대응하고 우리 마음 깊이 받아들여, 뒤따르는 모든 여정을 위한 구체적 기초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찬미받으소서」, 15항 참조). 지면의 한계로, 광범위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간략히 논의하게 될 것이다. 시노드 교부들은 이러한 문제들 안에서 성령의 부르심을 깨달아야 한다. 제1장 5.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젊은이들과의 공식적인 첫 만남에서 불어넣어 주신 그 활력을 우리는 한껏 누리고 있다. “이 첫 번째 여정은 젊은이들과의 만남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과 분리된 만남이 아니라 오히려 저는 사회 안에서, 그들의 사회적 맥락 안에서 그들을 만나려 합니다. 젊은이들을 고립시킬 때 우리는 그들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고 그들의 ‘소속’을 박탈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소속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가족, 조국, 문화, 신앙에 소속되어야 합니다”(프란치스코, 제28차 세계 청년 대회를 맞아 리우데자네이루 사도 방문, “브라질행 기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언론인의 만남”, 2013.7.11.). 다면적이고 다양한 상황 6. 비록 총인구에서 젊은이 비율이 점진적으로 감소하리라고 예견되지만, 16세에서 29세 사이의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약 18억 명으로 인류의 사분의 일 정도를 차지한다. 주교회의들의 응답에서 강조되었듯이 젊은이들의 구체적인 상황은 나라마다 큰 차이가 있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젊은이가 인구의 상당수(30퍼센트 이상)를 차지하는 반면, 다른 나라들에서는 훨씬 적은 비율(15퍼센트 내외 또는 그 이하)을 차지한다. 평균 기대 수명이 60세에 이르지 못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80세를 초과하는 나라도 있다. 교육, 보건, 환경 자원, 문화,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또는 시민, 사회, 정치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실제로 지역에 따라 다르다. 같은 나라에서조차 때로는 도시와 농촌 사이의 상당한 격차를 발견하게 된다. 7. 준비 모임의 논의 과정은 젊은 세대가 지닌 잠재력과 그들 안에 자리한 희망과 바람을 강조하였다. 젊은이들은 의미를 찾는 주체들로,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려 하는 탐구에 부합하는 모든 것에서 행동을 위한 동기와 흥미를 얻는다. 아울러 세계 각지에서 정도는 서로 다르지만, 젊은이들의 온전하고 조화로운 발전을 가로막고 약화시키며 자존감을 잃도록 몰아가는 어떤 사회적 정치적 동력이 존재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두려움 또한 생겨난다. 폭력이 만연하는 풍조를 일으키고 일부 젊은이들을 조직범죄와 마약 밀매로 끌고 가는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제도에 대한 신뢰를 좀먹고 체념과 방관을 정당화하는 부정부패가 판치는 정치 체계, 더 나은 미래를 찾아 이민을 떠나게 내모는 전쟁과 극빈 상황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일부 지역의 젊은이들은 국가가 종교 자유를 포함하여 근본적 자유와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한편 다른 지역에서는 사회적 배척과 무대 공포증이 일부 젊은이들을 중독의 고리(특히 약물과 음주)와 사회적 고립으로 몰아간다. 수많은 장소에서 가난, 실업, 소외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물질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세계화 앞에서 8. 지역적 차이는 있지만 세계화 과정이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명백하다. 이에 젊은이들은 다양한 수준에서(지역적 국가적 국제적으로 또 교회 안팎으로) 사회적 문화적 참여를 실천해야 한다. 몇몇 주교회의의 보고에 따르면, 아마도 소셜 미디어를 통하여 서양 사회의 체험을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일반적으로 자유와 자율과 표현에 대한 욕구가 자라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주교회의들은 젊은이들의 깊은 갈망과 무관하게 결국 개인주의, 소비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에 자극받은 문화가 만연하고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할 것을 두려워한다. 10. 이러한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거듭 밝히셨던 관점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준거점이 된다. “다면화된 세계화가 있다. 일치를 이루지만, 모든 사람, 모든 인종, 모든 나라, 모든 문화가 언제나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한다. 그것이 세계화가 추구해야 할 다양성 안의 일치이다”(프란치스코, 로마 제3대학교 젊은이들과의 만남에서 한 연설, 2017.2.17., gina.uniroma3.it/download/1491300733.pdf). 이는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다양성을 보물로, 다원주의를 기회로 여기는 젊은이들의 말에 이렇게 반영되어 있다. “다문화주의는 대화와 관용의 환경을 증진할 잠재력을 지닌다. 세계화된 세상 안에서 우리는 사고의 다양성, 다른 이들의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데에 높은 가치를 둔다. …… 우리의 다양성을 두려워 말고 우리의 차이와 우리 각자를 독특하게 만들어 주는 모든 것에 기뻐해야 한다”(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 총회 준비 모임 최종 문서[이후 준비 모임], 2항). 여전히 젊은이들은 “(그들) 문화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획일화와 쓰고 버리는 문화를 막으려고”(준비 모임 2항) 노력한다. 11. 이러한 변화의 맥락에서도 여전히 가정은 개인의 전인적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준거점이다. 논의에 참여한 모든 이가 이에 동의하였다. 그러므로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와 그 직전에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들 사이의 깊은 연관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정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중대한 차이들이 있다. 젊은이들은 일부 주교회의가 이야기한 것과 비슷하게 말한다. “세계 여러 곳에서 연장자의 역할과 조상 공경은 젊은이들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을 주는 요소다. 그러나 이는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사실은 아니다. 또 다른 지역들에서는 전통 가정 모델이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준비 모임 1항). 또한 젊은이들은 가정이 겪는 어려움과 불화와 그 취약성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고통을 야기하는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12.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이후 온라인 설문)에 대한 답변은 젊은이들에게 어머니가 얼마나 우선적인 준거가 되는 인물인지 보여 준다. 한편 아버지상에 관한 성찰이 필요하다. 특정 맥락, 특히 서양 국가들에서 아버지의 부재 또는 소실은 영적 부성의 실천에도 영향을 주는 [아버지상의] 불확실성과 결여를 자아낸다. 몇몇 주교회의는 미래의 사회 진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신앙과 가치를 전수하는 데에 조부모가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지적한다. 한부모 가정의 증가도 거론된다. 세대 간 관계 14. 여러 사회 분석들뿐 아니라 많은 주교회의들 그리고 ‘세계 젊은이들의 상황에 관한 국제 세미나’(이후 국제 세미나)를 통해 확인된 우리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일종의 세대 간 관계 역전이다. 오늘날 자기중심의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지구촌 문화 안에서 어른들은 흔히 그들 생활양식의 롤 모델로 젊은이들을 꼽는다. 한 교황청 부서의 확언대로, “문제의 요점은 어른의 삶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 문화계의 진정한 특징으로, 비단 신앙 안의 어른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어른 자체가 부족하다.” 오늘날 젊은이와 어른 사이에 세대 갈등은 많지 않은 대신에 ‘상호 소외’가 일어난다고 여러 주교회의들이 말한다. 어른은 우리 존재의 형성 가치들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는 데에 관심이 없고, 젊은 세대는 어른 세대를 잠재적 동맹이 아닌 경쟁자로 여긴다. 이런 식으로 젊은이와 어른의 관계는 교육적 문화적 차원이 포함되지 않은 온전히 감정적인 차원만 남을 위험이 있다. 교회는 젊은이들을 시노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세대 간 대화의 중요한 징표라고 보았다. “우리는 교계가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에 감동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젊은 교회와 오래 전에 설립된 교회 간의 이 대화가 활기차고 열매 맺는 경청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준비 모임 15항). 15. 세대 간 관계와 함께 또래 관계도 잊어서는 안 된다. 또래 관계는 다른 이들과 나누는 상호작용을 근본적으로 체험하는 것이고 가족 환경에서 점진적으로 독립하는 것이다. 일부 주교회의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특징인 환대, 우정, 상호 부조의 근본 가치를 강조한다. 어느 정도 조직화된 단체에서 경험한 또래 관계는 젊은이들이 평가와 판단의 잣대에서 자유로운 상황에서 사회적 관계적 역량을 강화할 계기를 제공한다. 삶의 선택들 16. 젊음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과정을 결정짓는 선택을 하는 특별한 시기로 여겨진다. 준비 모임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 발전의 결정적 시기에는 학업 과정 결정, 직업 선택, 종교 선택, 성 정체성 발견, 삶을 바꾸는 헌신 등이 포함된다”(준비 모임 1항).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이유 때문에 출신 가정에서 독립하는 시기 또는 근본적인 선택을 내리는 시기가 크게 달라진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18세에 이르기 전에도 결혼하거나 부모가 되거나 수도 생활을 선택한다. 반면에 다른 곳에서는 청년기가 실질적으로 끝난 때인 30세 이후에 그렇게 한다. 여러 상황들에서, 성인기로의 전환이 오래 걸리고 복잡해졌으며 연속선상에 있는 과정이 아니게 되었다. 발전되기도 지체되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구직 활동이 애정 문제보다 우선한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더더욱 최종 선택을 내리기 힘들어지고, 어느 아프리카 주교회의의 지적대로, “개인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공식적인 틀을 만들 필요가 강조된다.” 17.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발생시키며 꾸준히 변화하는 사회 상황에서 비롯된 기회와 제약들 사이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삶의 단계에서는 젊음의 전형적인 가능성과 심리적 어려움이 모두 나타난다(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 총회 예비 문서[이후 예비 문서], 제1장 3항; 제3장 1항 참조). 필요하다면 적절한 도움을 받아 이러한 가능성과 어려움을 성장 과정 안에서 모두 인식하고 대응하며 해결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젊은이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으로 경직, 충동적 행동, 끈기 부족, 냉담과 공감 부족, 정서적 통찰 감소, 관계를 맺는 데에서 무능함이나 과도한 두려움 등을 언급한다. 또한 더욱 일반적으로는, 정서적 의존, 열등감, 위험 상황에서 용기와 힘의 부족, 자기중심적인 성적 만족 추구, 공격성, 과시욕, 언제나 주목받으려는 욕구처럼 정화와 해방이 필요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태도가 나타난다. 그와 반대로, 소중히 여기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귀중한 자원들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 죄책감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 친지들과의 교류, 기꺼이 다른 이들을 도와 함께 일하려는 마음,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우리의 필요와 책임에 대한 식별력, 혼자 있을 때라도 선택한 바를 굳게 지키기, 어려움과 실패를 견디고 맞서 싸우기, 맡은 소임을 다하려는 책임감 등이 있다. 학교와 대학교 교육 19. 교육과 훈련 기관은 단지 젊은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기관은 사회가 젊은이들의 지성과 인성 육성과 직업 지도를 위해 노력하는 삶의 자리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이는 주로 학교와 대학교 체계가 양성이 아닌 정보만을 제공하는 데에 그쳐, 비판적 사고의 증진과 직업 측면을 포함하여 학습의 의미를 심화하도록 북돋우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한 문제들이다. 많은 나라들에서 학교 체계와 관련하여 불공평한 접근성, 도시와 시골 지역 간 훈련 기회의 차등과 경악할 만한 학업 중퇴율 등이 드러난다. 이 모두가 젊은이와 사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다. 일부 나라들에서는, 학업도 취업도 하지 않고 있는 이들(이른바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걱정스럽고 사목적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20. 교회의 교육 기관들이 어떤 나라에서는 국가 자격 표준을 따라잡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반면, 적합한 교육 체계를 갖추지 못한 많은 나라들에서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민감한 직업 훈련 영역에서 가톨릭 학교 기관은 많은 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곧, 가톨릭 학교 기관은 기술 기능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어떤 능력을 얼마만큼 가졌든 자기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법을 찾도록 돕고 있다. 극심한 가난과 박탈감이 큰 환경에서 원거리 학습이나 비공식 교육 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학교 교육에 대한 접근성의 간극을 메울 기회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일과 직업 23. 청년 실업률이 특히 높은 곳에서 일과 직업에 기울이는 관심이 더욱 크다. 더 가난한 환경에서는 일자리가 사회 구제의 가치를 지니며, 반면 실직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게 만드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 특히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성공, 사회적 명성, 직업윤리의 문화에 부응해야 하며, 그 문화가 부모의 기대에 투영되고 학교 교육을 규정하며 고도의 경쟁 풍토, 편향된 선택, 매우 강도 높고 스트레스 가득한 업무의 부담을 낳는다. 준비 모임에서 확인되었듯, 젊은이들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해야”(준비 모임 3항) 할 필요성을 여전히 믿는다. 또한 그들은 두려움을 자아내는 극도로 척박한 경제 상황에서 희망과 꿈을 간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지적한다(준비 모임 3항 참조). 몇몇 주교회의들은 성소와 직업 간의 관계뿐 아니라 직업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성소 의식의 수준’을 더욱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이, 신앙과 종교 24. 다양성과 차이는 젊은이들이 자라나는 종교적 맥락에도 적용된다. 어떤 나라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다수를 차지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차별이나 순교에 이르는 박해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일부 환경에서 그리스도교는 그 신뢰성을 저하시켰던 정치적인 선택처럼 과거 자신의 선택이 만든 결과와 맞서야만 한다.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종교 전통이나 전통 문화의 문화적, 영적 풍요로움과 상호작용하는 환경도 있다. 또한 어떤 환경은 세속화되어 종교를 순전히 사적인 사안으로만 여기고 또 어떤 환경에서는 신흥 종교나 유사 영성(뉴에이지 등)의 영향력이 극적으로 커져 나간다. 그리스도교와 종교들은 어떤 지역에서는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사회생활을 지탱하는 근간을 이룬다. 어떤 나라에서 가톨릭 공동체는 단일 공동체가 아니며 인종적 문화적 소수(토착 공동체)뿐 아니라 종교적 소수(다양한 예법)로 이해된다. 또 다른 나라에서 가톨릭 공동체는 이민해 온 신자들에게 문을 열 것을 요청받는다. 제2장 26. 준비 모임에서 효과적으로 강조했듯이, 젊은 세대는 현실에 대한 특별한 접근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자산이자 독창성의 원천이지만 어른들에게 혼란과 당혹스러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급한 판단을 피해야 한다. 젊은이들의 접근법은 이론적 분석보다는 구체성과 행동이 우선한다는 데에 바탕을 둔다. 이는 지적 차원에 대한 등한시나 맹목적 행동주의는 아니다. 이는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행동 방식으로, 그들은 일을 실천하면서 이해하고 문제가 제기되는 그 순간에 그 문제를 풀고 있다.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은 비록 급진적인 형태일지라도 서로의 차이에서 오는 다원성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정체성 인정을 상대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활양식의 존재와 이를 포용하려는 노력에 대한 기본적 인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동 노력의 결실에서 그것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모든 이가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사회 참여와 투신 영성과 신심 29. 다양성이야말로 젊은이들이 신앙과 종교적 실천과 맺는 관계를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준비 모임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은 비록 일상생활에서 거룩함과 꽤 유리되어 있음에도 자신들이 영성에 열려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종교는 사적인 문제라고 믿으며 자신이 영성적이기는 하되 (종파에 소속된다는 의미의) 종교인은 아니라고 여긴다(준비 모임 7항 참조). 종교는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는 우선적 길로 여겨지지 않는다. 종교는 흔히 이데올로기와 다른 사조들과 동등하거나 때로는 대체 가능하고, 심지어 개인적 직업적 성공으로도 대체된다(준비 모임 5항 참조). 30. 이와 같은 다양성은 젊은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이루는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구세주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여기고, 흔히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통해 그분께 다가간다고 느낀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지는 않지만 그분을 훌륭한 인간이며 윤리적 준거점으로 여긴다. 또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은 실존적 관련성이 없는 과거의 인물 또는 (그들이 교회에 느끼는 거리감만큼) 인간의 경험에서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다.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가 젊은이들의 눈에 그분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든다. 젊은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완덕이 인간 능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저 너머에 있다는 생각에 이끌려 그리스도교를 달성 불가능한 기준으로 보게 된다(준비 모임 6항 참조). 여러 맥락을 보면, 젊은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에 강렬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도와 성사의 기회를 찾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기대가 지닌 세대적 특수성에 사목자들이 언제나 부응하고 있지는 못한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31.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자신을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라고 느끼며, 활발한 교회 참여를 통해 이를 강력히 표현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의 지역과 여러 국제 운동 안에서 교회가 자신들과 매우 가까이 있음을 체험하며, 심지어 복음에 따라 살아가지 않을지언정 자신들이 교회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준비 모임 7항) 젊은이들이 있다. 몇몇 주교회의는 젊은이들이 교회에 꼭 필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고 -또 그렇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젊은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사목의 근본적 차원이라고 강조한다. 청년 단체들, 운동이나 연합회에 소속된 청년 단체들조차 정작 교회 공동체의 삶에는 온전히 참여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본다. 일부 주교회의들에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목표는 이러한 분리의 역학을 극복하는 것이다. 32. 많은 젊은이들이 주변인이 될 위험을 언급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핵심 일꾼이 되기도 하는 여러 교회 활동들이 존재한다. 젊은 세대의 특징인 여러 형태의 자원봉사 활동이 두드러진다. 어린이 사목과 마찬가지로 교리교육과 전례의 활성화도 또 다른 활동 영역으로, 이는 분명 오라토리움회나 다른 비슷한 사목 조직에서 특히 결실을 맺는다. 운동, 연합회, 수도회도 젊은이들에게 참여와 공동 책임의 기회를 제공한다. 여러 상황들에서, 자신을 표현할 중요한 통로를 신체와 정서 활동, 음악과 노래 안에서 찾는 젊은이들을 위한 신앙 접근법으로 대중 신심은 여전히 중요하다. 또 다른 전국, 국제, 대륙 차원의 모임과 함께 세계 청년 대회는 많은 젊은이들의 삶에서 탁월한 역할을 한다. 한 주교회의가 말하듯, 세계 청년 대회는 “젊은이들이 삶의 주요 도전들에 맞서고, 사회와 교회 공동체에서 책임감 있게 자기 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신앙과 친교의 생생한 체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33. 젊은이들은 팀워크를 두드러지게 좋아하고 잘 한다. 이는 많은 상황에서 자산이 된다. 때로 이러한 열린 자세가 어른과 직무 봉사자들의 지나친 권위주의와 충돌한다. “많은 경우 젊은이들은 교회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이들은 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교회 경험을 통해, 교회가 자신들을 아무 실수가 없어도 지도력을 발휘하거나 결정을 내리기에 너무 어리고 경험이 적다고 여긴다고 해석한다”(준비 모임 7항). 마찬가지로 분명한 사실은, 젊은이들이 참여하고 인정받는 곳 어디서나 교회의 방식과 역동성은 강력한 생명력을 얻어 사람들의 관심을 주목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대륙의 편재성(遍在性) 34. 젊은이 세계에 대한 디지털과 소셜 미디어의 침투성이 증명된다. 준비 모임에 참석한 젊은이들은 이렇게 피력했다. “젊은이들의 삶에서 소셜 미디어의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소셜 미디어는 젊은이들의 정체성과 생활 방식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디지털 환경은 유례없이 지리적 거리를 넘어 사람들을 일치시킬 수 있는 커다란 잠재력을 지닌다. 이제 정보, 사상, 가치, 공동 관심의 교환이 더욱더 가능해졌다. 온라인 학습 도구에 대한 접근이 먼 곳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활짝 열고, 온 세상의 지식을 저마다의 손끝에 가져다주었다”(준비 모임 4항). 35. 웹은 고독, 조종, 착취, 폭력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 ‘다크 웹(dark web)’과 같은 극단적 사례까지 있다. 젊은이들은 그 위험성을 알고 있다. “특정한 악행들의 발전을 도울 때 기술의 이중성이 분명해진다. 이러한 위험은 고립, 나태, 황폐, 권태 등을 통해 증명된다. 온 세상 젊은이들이 강박적으로 미디어 제품을 소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초연결 세계에서 살고 있음에도 젊은이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동류의 사람들과만 한정적으로 이루어진다. …… 소셜 미디어의 출현과 함께, 이는 뉴 미디어 회사들이 젊은이들의 삶에 권력을 행사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도전을 불러왔다”(준비 모임 4항). 이러한 상황은 다양성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능력의 개발을 가로막기에, 그러한 능력을 개발하는 일은 젊은이들을 위한 실제적 교육 과제가 된다. 주교회의들은 비판적 평가에 더욱 역점을 두면서도, 이러한 이중성에 동의한다. 무지나 부적절한 교육 때문에도 사목자들과 보통 어른들은 이러한 새로운 언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때로는 악마가 되게 하는 ‘보이지 않고 어디에나 있는 원수’ 앞에 서 있다고 느끼며 두려워하곤 한다. 36. 매우 많은 주교회의들이 음악은 젊은이들의 기본 언어라고 말한다. 음악은 그 안에 끊임없이 빠져드는 젊은이들 삶의 배경음악으로서, 일반적으로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함에도 교회의 탐구가 미치지 못하는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을 준다. 음악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신체적으로도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 음악은 내면세계를 열게 하여 의사소통을 돕는다. 또한 음악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 외에도 다른 형태의 교육으로 증진된 생활양식과 가치들에 맞갖은, 또는 그것을 대체하는 생활양식과 가치들을 전달한다. 일부 청년 문화 안에서 음악의 세계는 어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일종의 피난처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음악의 힘 때문에 음악계는 사업적, 심지어 투기적 이해관계에도 쉽게 영향받고 조종될 수 있다. 37. 음악과 음악의 공유는 사회화 과정의 도화선이 된다. 콘서트는 수천 명의 젊은이들을 한데 모은다. 왠지 모르게 개인적 차이들은 뒷전에 미뤄 놓고 함께 모여야 할 필요를 느낀다. 주요 음악 행사는 사람들이 자신을 벗어 던지고 낯선 이들과 융화됨을 느끼는 볼거리와 들을거리, 무용, 동작, 친밀감과 신체 접촉 등 총체적 체험이다. 때로는 이러한 행사들이 수동적 경청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때로는 약물의 사용으로 증폭된 음악의 영향이 비인격화의 결과로 이어진다. 음악 연주는 개인적 사회적 가치를 모두 지닌다. 많은 젊은 작곡가들과 음악인들이 자기 세대의 삶의 경험을 해석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사회적 연관성이 있는 주제들, 곧 성 관련 주제부터 대인관계, 전통 문화의 고양 등에 관한 메시지를 또래들에게 전달하고자 힘쓴다. 38. 음악보다 덜 광범위하지만 많은 다른 형태의 예술적 표현, 곧 회화, 조각, 영화 제작, 시각 미술, 무용, 연극, 사진, 만화, 그래픽 디자인, 웹 아트, 글, 시, 문학 작품 등의 향유는 젊은이들의 개인적 사회적 정체성 형성에 근본적 역할을 한다. 젊은이들은 그러한 예술적 표현들이 활발히 실천될 때에, 특히 더욱더 많은 신기술을 사용하는 실험적 기획을 통해, 개인 창의성을 훈련하고 문화 표현에 참여할 수 있다. 민족과 지역 전통과 결합된, 특히 소수 인종과 관련된 예술적 표현의 형태들은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표현들이 젊은이들을 교육 수준이나 과학 기술 수단의 사용 능력과 무관하게 과거의 유산과 연결시켜 주고 문화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세계 39. 스포츠는 젊은이들의 성장과 대화에서 또 다른 중요한 영역이다. 교회는 세계 각지에서 스포츠를 통한 노력을 기울인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스포츠를 비공식적 교육의 일환으로 여기고, 공식 교육의 지적 빈곤을 메우고자 스포츠 분야에서 더욱 활발히 활동할 것을 요청하신다(가톨릭교육성이 주관한 국제 대회 “교육의 현재와 미래: 쇄신의 열정” 참가자들과 나눈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대담, 2015.11.21.).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스포츠화’ 되어 왔다고 믿고 이를 특히 젊은이 세계에 적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그럴듯한 말을 넘어서,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 활동을 통해 어떠한 가치와 모델이 증진되는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너무도 흔히 스포츠 활동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심지어 속임수를 써서라도 이루는 성공에 연연하며, 패배한 선수들의 노고와 헌신을 잊어버리곤 한다. 40. 대형 콘서트와 마찬가지로, 대중 스포츠 행사들은 지극히 의전적인 특성을 지니고 우리의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스포츠계에도 기업과 투기적 조작이 있고 인간의 존엄에 반하며 (금지 약물 복용처럼 젊은 아마추어 선수들 사이에 만연한 모든 행위와 부정부패 등) 페어플레이와 같은 가치에 역행하는 관행에도 물들어 있다. 스포츠와 하등 상관이 없는 불만과 사회 긴장으로 부추겨진 폭력의 형태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한편, 패럴림픽 운동과 같은 예에서 볼 수 있듯, 스포츠는 여러 형태의 배척과 소외로 고통받는 이들을 통합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제3장 41.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끊임없이 질책하시듯이, 쓰고 버리는 문화는 현대 사고방식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젊은이들이 얼마나 빈번히 그 희생자가 되는지를 주교회의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경고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젊은이들 또한 이러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무책임한 소비를 선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쓰고 버려지게’ 만들거나 환경을 훼손하는 그러한 행동에 빠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우리는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이러한 행동과 사고를 돕고 부추기고 있으며 결국 무관심과 배척을 조장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42. 교회는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통해서도 근본적 인식 활동을 함으로써 불의와 착취의 젊은 희생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부름받는다. 젊은이들이 자기표현을 하는, 특히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들을 마련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모든 부정적 주장에 맞서서 개인의 존엄을 되찾게 하는 길이다. 그리하여 너무도 자주 역사에서 잊힌 이들에게 이름과 얼굴을 찾아 준다. 이는 ‘버려진’ 젊은이들이 지닌 잠재력을 표현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젊은이들은 그들 스스로 발전의 주체가 되고, 그들의 시각은 지속적 성장과 희망의 역동성 안에서 공동선을 이룩하는 데에 생생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구체적 체험에서 시작되며 바로 그럼으로써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시편 118[117],22; 루카 20,17; 사도 4,11 1베드 2,4 참조). 직업 문제 43. 주교회의들이 강조하였듯, 여러 나라에서 청년 실업은 과장이 아니라 비극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결과는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흔히 가정, 복지 체계, 자선 단체들이 뛰어들어 실업자들의 물질적 필요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실직 젊은이들이 박제된 이상향에 취해 있거나 그것조차 잃을 지경에 내몰리는” 것이다(프란치스코, 교황청 라틴아메리카 위원회 위원들에게 한 연설, 2014.2.28.). 준비 모임에 참가한 젊은이들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이러한 시각이 반영된다. “때때로 우리는 결국 우리 꿈을 버리게 된다. 우리는 특히 젊은이들의 희망감을 무참히 앗아가는 수많은 사회-경제적 압력 때문에 너무나도 두려움에 빠져 있고, 그중 일부는 꿈꾸기를 그만둔다. 가끔은 꿈꾸기를 계속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다”(준비 모임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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