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 2020년 제37회 자선 주일 담화
- 작성일2020/12/04 00:45
- 조회 6,933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해마다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자선’(慈善)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길로서, 단순히 ‘물질적 베풂’에 그치는 것이 아닌, ‘회개의 표시이자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와 가족만을 생각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외면한 채 살아가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녀이면서도 하느님의 자녀답지 못한 삶의 모습입니다. 회개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뉘우치고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여 다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의 증표가 바로 이웃을 향한 자선입니다.
이웃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연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카 10,30-37)를 통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이냐?’고 묻는 어느 율법 교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길에서 ‘강도 당한 사람’을 보고서도 사제와 레위인은 그냥 외면하고 각각 길 반대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사마리아 사람은 길에 쓰러져 있는 그 사람을 가엾게 보고서는, 그에게 다가가 응급조치를 해 주고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게다가 이 착한 사마리아인은 다음날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그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고, 비용이 더 들면 자기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까지 말하였습니다.
처음에 ‘누가 이웃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던 그 율법 교사는 이제 반대로 이 비유에 나오는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강도 당한 사람의 이웃인지를 예수님께 대답해야 하였습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곤경에 빠진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그 사마리아 사람처럼, 가엾은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웃에게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개인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는 이웃에게 다가가기를 두려워합니다. 이웃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도 당한 사람을 ‘보고서도 못 본 체’ 그냥 지나쳐 버린 사제와 레위인도 있었지만, 열린 마음으로 보았던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길 위의 고통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도 당한 사람을 참으로 ‘자기 가족처럼, 자기 자신처럼 돌보아 주고 자비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오늘 자선 주일에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도 같은 말씀을 해 주고 계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라’고 말입니다.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우리 모두가 커다란 불편과 고통을 겪은 한 해였습니다. 세계은행이 올 10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때문에 극빈층은 1억 명이 더 늘었지만, 반대로 부자들의 재산은 8천조 원이나 더 증가했습니다.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 나라들 가운데 대한민국도 상위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도 빈부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한 해 동안,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내몰린 사람들이 유달리 많이 생겨났습니다.
전국의 무료 급식소들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조치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는 바람에, 무료 급식소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노숙인, 쪽방 주민, 고시원에 거주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몇 배로 더 혹독한 한 해를 보내야 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를 비롯하여, 장기간의 영업 중단으로 인해 생업을 포기한 자영업자, 경제적 파산으로 노숙인이 된 사람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이웃의 얼굴은 다양합니다. 엎친 데 덮쳐서 기후 파괴의 탓으로 유례없이 길었던 장마와 잦은 태풍, 홍수 등으로 이재민과 농사를 망친 농민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이 참으로 많이 늘어났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마스크를 늘 쓰고 살아야 하는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우리 모두가 사랑의 나눔인 자선을 실천하는 일상을 사는 일입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의 보람과 기쁨이 우리 삶과 내면에 가득 들어찰 것입니다. 그 보람과 기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적 행복이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사실 자선의 위력은 아주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자선이 우리의 ‘죄를 깨끗이 없애 주고 죽음에서 구해 주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토빗 12,9; 집회 3,30 참조).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자선을 하늘에 마련한 보물로 여깁니다(집회 29,12; 루카 12,33 참조). 오늘 자선 주일은 하늘에 썩지 않는 보화를 쌓도록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선을 실천하는 데 참된 식별의 기준이 되는 예수님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대로, 여러분도 자선을 숨겨 두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대열에 함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면 비록 춥고 힘든 가운데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훈훈한 2020년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게 될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해마다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자선’(慈善)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길로서, 단순히 ‘물질적 베풂’에 그치는 것이 아닌, ‘회개의 표시이자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와 가족만을 생각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외면한 채 살아가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녀이면서도 하느님의 자녀답지 못한 삶의 모습입니다. 회개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뉘우치고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여 다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의 증표가 바로 이웃을 향한 자선입니다.
이웃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연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카 10,30-37)를 통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이냐?’고 묻는 어느 율법 교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길에서 ‘강도 당한 사람’을 보고서도 사제와 레위인은 그냥 외면하고 각각 길 반대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사마리아 사람은 길에 쓰러져 있는 그 사람을 가엾게 보고서는, 그에게 다가가 응급조치를 해 주고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게다가 이 착한 사마리아인은 다음날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그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고, 비용이 더 들면 자기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까지 말하였습니다.
처음에 ‘누가 이웃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던 그 율법 교사는 이제 반대로 이 비유에 나오는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강도 당한 사람의 이웃인지를 예수님께 대답해야 하였습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곤경에 빠진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그 사마리아 사람처럼, 가엾은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웃에게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개인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는 이웃에게 다가가기를 두려워합니다. 이웃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도 당한 사람을 ‘보고서도 못 본 체’ 그냥 지나쳐 버린 사제와 레위인도 있었지만, 열린 마음으로 보았던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길 위의 고통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도 당한 사람을 참으로 ‘자기 가족처럼, 자기 자신처럼 돌보아 주고 자비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오늘 자선 주일에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도 같은 말씀을 해 주고 계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라’고 말입니다.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우리 모두가 커다란 불편과 고통을 겪은 한 해였습니다. 세계은행이 올 10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때문에 극빈층은 1억 명이 더 늘었지만, 반대로 부자들의 재산은 8천조 원이나 더 증가했습니다.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 나라들 가운데 대한민국도 상위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도 빈부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한 해 동안,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내몰린 사람들이 유달리 많이 생겨났습니다.
전국의 무료 급식소들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조치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는 바람에, 무료 급식소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노숙인, 쪽방 주민, 고시원에 거주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몇 배로 더 혹독한 한 해를 보내야 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를 비롯하여, 장기간의 영업 중단으로 인해 생업을 포기한 자영업자, 경제적 파산으로 노숙인이 된 사람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이웃의 얼굴은 다양합니다. 엎친 데 덮쳐서 기후 파괴의 탓으로 유례없이 길었던 장마와 잦은 태풍, 홍수 등으로 이재민과 농사를 망친 농민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이 참으로 많이 늘어났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마스크를 늘 쓰고 살아야 하는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우리 모두가 사랑의 나눔인 자선을 실천하는 일상을 사는 일입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의 보람과 기쁨이 우리 삶과 내면에 가득 들어찰 것입니다. 그 보람과 기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적 행복이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사실 자선의 위력은 아주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자선이 우리의 ‘죄를 깨끗이 없애 주고 죽음에서 구해 주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토빗 12,9; 집회 3,30 참조).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자선을 하늘에 마련한 보물로 여깁니다(집회 29,12; 루카 12,33 참조). 오늘 자선 주일은 하늘에 썩지 않는 보화를 쌓도록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선을 실천하는 데 참된 식별의 기준이 되는 예수님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대로, 여러분도 자선을 숨겨 두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대열에 함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면 비록 춥고 힘든 가운데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훈훈한 2020년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게 될 것입니다. 아멘.
2020년 12월 13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유 경 촌 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유 경 촌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