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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가정성화주간 담화
  • 작성일2015/12/1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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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가정성화주간 담화문

 가정과 혼인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의 사랑이 절정에 이르러 마침내 외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탄의 기쁨과 사랑을 함께 나누며 여러분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기원합니다. 가톨릭교회는 1921년 주님공현대축일 다음 주일을 ‘성가정축일’로 제정하였으며, 1969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성탄팔일축제 내 주일로 옮겨서 지내오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2001년부터 성가정축일로 시작하는 한 주간을 ‘가정성화주간’으로 정해, 가정과 가족 구성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가정의 의미를 특별히 되새기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가정사목과 복음화’라는 주제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가 열린 데 이어, 올해 10월에는 ‘교회와 현대세계에서의 가정의 소명과 사명’을 주제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교회역사상 연이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같은 주제를 다룬 적이 없었던 만큼, 가톨릭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정의 중요성과 위기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사실상 오늘날 우리는 혼인과 관련하여 중대하고도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곧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종교적 윤리와 도덕적 가치에 대한 회의감, 개인주의와 쾌락주의의 확산, 그리고 그에 따른 성의 상품화와 생명 경시 현상의 가속화 등으로 불륜과 피임과 낙태를 거리낌 없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경쟁과 고용시장의 불안으로 젊은이들은 혼인을 주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미혼 남녀의 과반수 이상은 결혼을 선택 사항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동거를 선호하는 개방적 태도 역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혼인 연령은 높아지고 출산율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정의 붕괴와 해체를 가져오는 이혼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혼인에서 이혼에 이르는 기간도 점차 짧아지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삶을 선전하며 이혼을 부추기는 대중매체, 이혼과 관련한 법률제도의 홍보, 그리고 합리적인 재산분할제도의 발달 등에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인마저도 교회 가르침에 무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가 직면한 혼인과 가정의 위기는 한 개인이나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개인과 가정의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며, 사회에 노출되는 그러한 부정적 현상은 다시금 개인과 가정으로 고스란히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따라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심으로써(창세 1,27 참조)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살도록 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습을 취하실 때에도 가정의 일원이 되시어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원하셨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며 자라심으로써 성가정의 모범을 남기셨고(루카 2,51 참조), 첫 기적을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으키셨으며(요한 2,1-12 참조), 신자들 간의 혼인을 성사로 제정하셨습니다(마르 10,1-12 참조). 바오로 사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시어 거룩하게 하신 부부의 사랑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드러내는 큰 신비(에페 5,21-33 참조)이므로, 가정은 사람에게 지워진 굴레가 아니라 그를 고양하고 완성하는 은총의 보금자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이 믿음의 보화는 등경 위에 놓인 등불처럼(마태 5,15 참조) 세상을 비춤으로써 기쁨과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부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너무나도 다른 우리 인간을 존중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인 부부 역시 배우자의 차이와 다름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느님의 유일한 계획인 ‘사랑의 친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름과 차이를 수용할 때 인격과 인격 사이에 깊은 친교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도출되는 문제의 핵심은, 참된 대화에 이르지 못하는 가운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은 내가 사랑해야 할 인격이며, 이 인격의 존엄성이 갖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모든 사회적 행위의 미덕입니다. 가정은 이러한 사회적 행위의 미덕을 근원적으로 수호하고 지키는 파수꾼과도 같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이번 가정성화주간을 통해 참된 사람이 누구이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숙고해 봅시다. 참된 사람은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그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이십니다. 바로 그 사랑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결코 계산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기적인 욕심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이러한 사랑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곧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이야말로 부부와 가정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아 항구히 사랑의 소명을 수행해 나갑시다. 그래서 성탄의 거룩한 빛이 모든 부부와 가정공동체에 밝게 비쳐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조 환 길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