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소개

2003년 성탄 메시지
  • 작성일2020/03/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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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성탄 메시지]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아기 예수님의 평화가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고요한 밤에 세상은 잠들어 있고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며 깨어 있던 목자들에게 영광의 빛과 함께 주님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천사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목동들은 그만 겁에 질려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목동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면서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탄생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 때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며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 2,14) 목동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벌판을 달려가 구유에 누어 계신 아기 예수님을 뵙고 경배합니다.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지만"(요한 1,10) 순박한 목동들은 큰 기쁨과 함께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밖에도 목동들처럼 아기 예수님을 만난 이들이 또 있습니다. 큰 별을 따라 동방에서 온 박사들입니다. 먼 길을 떠나 예루살렘까지 도착한 그들은 헤로데 왕에게 유다의 왕으로 나실 분에 대해서 질문을 합니다. 예루살렘이 술렁거렸고 헤로데도 당황하여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모읍니다. 그들은 미가 예언서 5,1의 기록을 보면서 베들레헴이라는 장소까지 알아냅니다. 그러나 헤로데 왕도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도 아기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예루살렘에서 하루 길에 있는 베들레헴까지 가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거리보다는 그들의 마음이 교만과 욕심으로 닫혀 있었기에 동방의 박사들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일보다는 정치적이며 인간적인 일들에 더 마음을 두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성서에 정통했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해될 수 없는 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오히려 성서와 거리가 먼 동방에서 온 박사들과 들판에서 밤을 지새우던 목동들이 주님을 만나 뵈었다는 사실은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만이 아기 예수님을 뵈었다는 사실을 복음서를 통해 우리는 배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어느 것 하나 우쭐대며 내세울 것도 없는 목동들과 나그네였습니다. 그들은 재물이나 어떤 지위를 누리며 거들먹거리던 사람들이 아니고 가난하고 순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별 빛의 자연순리를 따르며 천사의 지시를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순박함과 겸손함이 영광의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과학의 발달로 물질의 풍요와 전자장치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이 좋은 점이 있으면서도, 편한 것에 길들여지면 질수록 우리는 조금의 불편도 참기 어려워하고 쉽게 이기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누리는 권리는 쉽게 주장하면서도 이행해야 할 사랑의 의무는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웃의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내 중심의 세계를 만들고 이웃과 허물 수 없는 담을 높게 쌓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가난하신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가장 낮은 자리인 외양간 구유 위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가난한 모습으로 주님을 맞으며 소외된 이웃과의 담을 헐고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목동들과 동방의 박사들처럼 먼저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과 진리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3)라는 말씀을 실현하며 전쟁과 미움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 아기 예수님의 참다운 평화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2003년 성탄절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주교 김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