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우리 믿음의 기초이신 하느님: 선교의 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 작성일 : 2020-03-1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해, 우리는 ‘성사 안에서의 교회-성체성사와 함께하는 성화의 해’를 보내면서 성체성사를 삶의 중심에 놓고, 우리 자신이 바로 성사가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올해는 ‘우리 믿음의 기초이신 하느님’이라는 사목목표로 ‘선교의 해’를 보내고자 합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지난 10월 11일 발표된 자의교서 ‘믿음의 문’(Porta Fidei)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50주년이 되는 2012년 10월 11일부터 2013년 11월 24일까지를 '신앙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 ‘믿음’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선교’는 이러한 때에 더 없이 좋은 사목목표라고 여겨집니다.
‘선교’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는 활동입니다.
이천년 교회의 역사 안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기 위한 무수한 노력들이 있어왔고, 수많은 선조들의 목숨을 건 선교활동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러한 선교의 결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교의 해를 맞으면서, ‘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촉구합니다.
선교에 대해 가장 먼저 우리가 가져할 할 생각은 선교의 주체에 대한 자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선교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주체는 바로 ‘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한 산에서 승천을 앞두고 당신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8~19)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씀이요, 명령입니다.
누가 이 명령에서 자기는 제외된다고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곧 잘 이렇게 변명합니다.
“제 자신도 확실히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에게 믿으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성서는 전합니다.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지만, “더러는 의심하였다”(마태 28,17)고 말입니다.
이 사실은 그들이 지극히 하찮은 징후에도 덥석 달려들면서 무엇이나 믿으려드는 그런 광신적인 열성분자들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그들은 믿음이 탁월한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믿는데 어려움을 겪는 우리와 아주 비슷한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령을 온몸으로 체험하였고, 결국엔 확신을 갖고 믿어, 그 믿음으로 생명을 기꺼이 바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선교에 대한 당신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믿음이 확실한 이상적인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직도 의심이 많기에 믿음이 더 굳세어져야 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당신의 선교 명령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이상적인 공동체, 완전한 공동체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 존재하는 공동체, 현실에 존재하는 교회에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렇기에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내가 더 굳세어져야하는 동기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내가 예수님의 지상명령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선교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또 다른 생각은 선교의 대상에 대한 것입니다.
첫 번째 선교의 대상은 ‘나’ 자신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어릴 때 영세했는데, 교리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선교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많은 분들은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토로합니다. 자신은 너무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없기에 선교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그들의 고백대로 우리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선교 명령은 우리처럼 그렇게 부족한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 그들은 다만 이름 그대로 제자였을 뿐입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기에 배워야 하는 그런 제자였을 뿐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다만 배우는 사람인 제자들일 뿐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선교 명령은 바로 그런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실천해야 할 그런 명령인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은 아직 더 배워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지 선교를 회피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무지는 자랑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을 배우십시오!
예전보다 배움의 장이 많이 늘었습니다. 성서에 대한 배움을 접할 기회도 늘었고, 교리에 대한 배움을 접할 기회도 늘었습니다. 방송이나 통신을 통해서도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배움을 통해 나 자신을 선교하십시오!
두 번째 선교의 대상은 쉬는 교우입니다.
신앙을 가졌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쉬는 교우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단순한 게으름의 경우도 있겠지만 신앙의 열기가 식어버린 경우도 있고, 상처받은 경우도 있으며, 삶에 지쳐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상처받은 가슴을 보듬어 주고, 지친 삶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그들이 다시 하느님에게 가까이 올 수 있도록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면 그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세 번째 선교의 대상은 이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에게, 혹은 하느님을 잘 못 알고 있는 이에게, 내가 만나고 있는 하느님을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하느님을 ‘믿고, 듣고, 선포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이 직접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것, 그리고 우리와 똑같이 사람이신 그분은 참으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 그분을 따르면서 그분처럼 살면 우리도 그분처럼 부활할 수 있으리라는 것, 이것이 ‘하느님과 그분으로 인해 달라진 우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해 받은 이 기쁜 소식, 곧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이웃에 대한 선교를 생각할 때면, “홀리다”라는 우리말이 생각납니다.
옛이야기 속에서 여우에게 홀려버린 나그네처럼,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홀렸으면 합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첫 신자 공동체의 삶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사도 2,42~47). 첫 신자공동체의 삶의 모습이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어, 주님께서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우리 이웃들을 홀릴 수 있다면, 그 때 우리의 복음 선포는 참다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우리의 선교는 이웃을 홀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그러한 삶이 바탕이 된 기쁜 소식의 선포 그리고 그 위에 우리의 기도를 포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가 뿌리는 하느님 나라의 씨앗은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마태 13,23).
사랑하는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여러분,
2012년, 새로운 한해로 ‘ 선교의 해’를 맞으며 많은 걱정이 함께 합니다.
기후변화는 수많은 재해를 낳고 있고, 세계경제의 불안은 국내에도 그대로 이어져 물가폭등과 경기불황으로 서민경제에 시름을 안겨주고 있으며, 가정의 붕괴와 생명경시풍조는 날로 확장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사회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들과 생명을 향한 선택들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우리 그리스도교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참된 그리스도교적 가치관들을 더욱 필요로 하고, 우리는 그러한 가치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안한 우리의 이웃들에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삶과 어우러진 믿음의 선포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통해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에게 꼭 필요한 힘이 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2011년 11월 27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주교 김지석
천주교 원주교구장 주교 김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