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소개

2013년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 - 청소년의 해
  • 작성일 : 2020-03-12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3-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해, 우리는 ‘우리 믿음의 기초이신 하느님’이란 주제로 ‘선교의 해’를 보냈습니다. 마침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지난 해 10월 11일 발표된 자의교서 「믿음의 문」(Porta Fidei)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이요, 『가톨릭교회 교리서』(이하 ‘교리서’)를 반포한 지 20주년이 되는 올해 10월 11일부터 2013년 11월 24일까지를 '신앙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신앙의 해를 통해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핵심을 이루는 두 사건, 곧 공의회 개막과 교리서 반포를 기념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공의회는 오늘의 시대에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확실한 나침판(5항)이며, 교리서는 일상생활의 중요한 주제들에 이르기까지 신앙이 전개되는 모습을 보여준다(11항).”
 
‘신앙의 해’는 세계 교회가 2천 년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구세주 예수님께 새롭게 돌아섬으로써 현대 세계의 사람들을 ‘믿음의 문’으로 인도하고 새롭게 복음화하기 위한 것이기에 이러한 시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과 공의회의 소중한 결실이라 할 수 있는 교리서를 연구하고 생활에 적용시키기 위한 노력은 참으로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구는, 지난 해에 믿음에 기초한 ‘선교의 해’를 지내며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았으며, 올해는 전 세계 가톨릭이 지내는 ‘신앙의 해’라는 바탕 위에서 ‘희망의 해’로 맞이하고자 하며, 이어서 내년에는 사랑의 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과 희망, 사랑은 서로 떨어질 수 없이 긴밀히 연결되어 나타나기에, 우리 교구는 교구설정 50주년이 되는 축제의 2015년을 준비하는 3년을 믿음, 희망, 사랑의 해로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 백성이 어려움에 처한 시기마다 희망의 메시지는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희망의 근거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것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서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로마 5,1-2)
 
이어서 바오로 사도는 희망이 어떻게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3-5)
희망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첫째, 희망은 긍정적인 힘입니다.
어려운 현실은 우리를 좌절시키고 반복되는 좌절은 우리를 절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은 이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절망을 이겨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상실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에 처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절망에 처할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가시어 희망을 건네어 주십니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절망에 울부짖을 때, 하느님께서는 해방의 하느님이라는 희망의 모습으로 다가가셨고, 유배시절 나라를 빼앗긴 설움에 눈물지을 때, 하느님은 귀환의 희망을 안겨주시고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절망의 총체인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고, 절망의 상징인 닫힌 무덤을 열고 나오시어 희망의 상징이 되셨습니다.
초대교회가 박해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도 희망은 그것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수양을, 그리고 수양은 희망을 자아내고 그 희망을 간직한 이에게 주님은 성령을 주시어 절망을 넘어서게 하십니다. 희망은 절망조차도 덮지 못하는 그런 긍정적인 힘입니다.
 
둘째, 희망은 잘못된 나와 우리를 바로 세우는 힘입니다.
희망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현실과 유리된 희망은 망상일 뿐입니다. 미래에 대해 망상은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현실을 망상과 유리된 채 그냥 그렇게 흘러갈 뿐입니다.
희망은 실현을 위한 노력을 품고 있어야 참다운 희망이 됩니다.
희망은 미래에 존재하지만 현실에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관계해야 합니다.
그러한 희망은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을 통해 내 자신을 들여다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처럼, 희망은 바라는 모습을 통해 현재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고쳐나가도록 나를, 우리를 채찍질하고 격려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 희망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 사이에 존재합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사이에 희망이 존재합니다.
현실의 부족함이 희망을 존재하게 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희망하는 사람은 지금 이대로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 나라에 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가는 곳’이 아니라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임을 누누이 선포하십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고 하시며 복음선포를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태 6,9-10)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렇게도 지금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되도록 그렇게 노력하셨습니다.
‘가는 곳’과 ‘오는 것’의 차이는 대단히 크게 나타납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는 곳이라면 주변과 상관없이 나 혼자만 잘 살아 그곳에 가면 되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안하게도, 하느님 나라는 오는 것이기에 지금 이곳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도록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가진 이는 아직 완성되지는 않을지라도 내가 머물고 있는 지금 이곳에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도록 공동체와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희망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가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이라는 주제로 ‘청소년의 해’를 보내면서 청소년에 대한 교회의 배려와 관심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를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청소년은 사회의 미래요, 교회의 미래”라고 이야기합니다.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청소년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결손가정의 청소년이 우리 주변에는 수없이 존재합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하고 자라난 청소년이 어른을 공경하지 않습니다. 청소년의 폭력성과 자살하는 학생들 이야기가 뉴스의 주요소재가 되었습니다. 모두의 관심이 쏠려있지만 날로 문제는 심각해져만 갑니다. 청소년은 희망의 대명사처럼 이야기되지만, 오늘의 청소년들은 절망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청소년에 대한 고민과 배려는 바로 오늘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청소년은 교회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청소년은 교회의 오늘’이어야 합니다. 청소년이 사회에서, 교회에서 오늘 자리한 모습이 바로 내일 사회의 교회의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경기불황으로 서민경제는 시름에 잠겨있고, 가정의 붕괴와 생명경시풍조는 날로 확장되어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정말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어려움이라는 현실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나 똑같이 덮칩니다. 마치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 어려움들을 절망으로 맞이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희망은 절망을 이겨냅니다.
 
 
“희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로마 15,13)

 

2012년 12월 2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주교 김 지 석
지난사목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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